‘먹는 존재’인 인류에게 식기는 생활필수품이다. 그런데 세상에는 소재와 디자인, 컬러, 형태가 천차만별인 온갖 그릇이 존재한다. 그렇다면 어떤 그릇에 음식을 담을 것인가. 일상적인 식탁 풍경에서 누군가의 삶의 태도와 취향을 짐작할 수 있는 법이다. ‘코페니’라는 애칭으로도 불리는 로얄코펜하겐은 든든한 마니아층을 갖춘 테이블웨어 브랜드다. 250년 역사와 전통, 질리지 않는 디자인, 장인 정신 등의 미덕으로 사랑받고 있다. <하루의 끝, 위스키>, <여행의 끝 위스키>를 집필한 위스키 칼럼니스트 정보연 역시 로얄코펜하겐 마니아다. 특별한 점은 어머니와 함께 컬렉션을 채워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소장품을 소개해달라는 제안에 모녀는 고민 끝에 자택 문을 열어주었다. 식탁 위 로얄코펜하겐 와인 쿨러에는 어머니가 직접 준비했다는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1 매일 아침 커피를 내리는 블루 메가 모던 저그와 황동 드리퍼. 2 자신의 이니셜인 B가 새겨진 머그를 든 정보연 작가.
먼저 컬렉션의 전체 구성을 소개해주세요. 이번에 처음 세어봤는데, 70점 정도 모았더라고요. 대단한 규모는 아니지만 엄마에게 한 선물, 여행지에서 구매한 것, 커리어에 관해 고민하며 모은 것 등 아이템마다 다채로운 이야기가 담겨 있어요. 가장 많은 종류는 식기인데, 매일 로얄코펜하겐을 사용해서 플레이트가 주를 이뤄요. 어머니 세대만 해도 귀한 물건은 찬장에 모셔두는 문화가 있었잖아요. 그래서 보관만 하고 사용을 안 하셨어요. 제가 먼저 매일 꺼내 쓰면 좋겠다고 제안했고, 식사 후 바로 정리하면 생활에서 더 밀접하게 사용할 수 있다는 걸 보여드렸죠. 이제는 어머니도 평소 밥그릇, 국그릇으로 사용하고, 요거트 하나를 먹을 때도 로얄코펜하겐에 담아요.
촬영팀을 맞이할 때도 로얄코펜하겐 저그에 커피를 내리고 있었죠. 매일 아침 원두를 갈아 로얄코펜하겐 저그에 핸드드립 커피를 내린 뒤 이니셜 머그에 커피를 담고 하루를 시작해요. 커피를 마시며 뉴스를 읽거나 메일을 확인하며 워밍업하는 시간을 보내는 거죠. 이 제품은 음료를 담는 블루 메가 모던 저그인데, 어떤 매장에서 저그 위에 하리오 드리퍼를 올려둔 걸 보았어요. 커피를 바로 내릴 수 있으니 편리할 것 같아서 구매했죠. 다만 플라스틱 대신 저그의 품격에 걸맞게 황동 드리퍼를 조합했어요.
1 빙앤그뢴달의 빈티지 애쉬트레이와 시가. 2 차곡차곡 정리해둔 다양한 형태의 플레이트. 3 데일리로 활용하는 블루 라인 식기. 4 손잡이가 깨진 커피잔을 킨츠키로 수선해 사용한다.
처음 장만한 로얄코펜하겐은 무엇인가요? 2014년 홍차 문화에 심취해 있을 당시 차 선생님에게 구매한 커피잔이에요. 에스프레소를 담는 데미타스 잔인데, 이 작은 잔이 향기를 모아주고 금세 식지 않도록 온도를 유지해 테이스팅하기 훨씬 좋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1940~50년대 출시된 빈티지 잔을 두 점 들였어요. 그때 100년 된 잔을 함께 구입했는데 잔은 깨졌어요. 소서만 보관해두고 티 푸드를 담는 플레이트로 활용해요.
일본 가루이자와에서 어머니 선물로 로얄코펜하겐을 구매했다고요. 이커머스 마케터로 일하며 브랜드를 접했지만 사회 초년생이 선뜻 구매하기는 쉽지 않았어요. 그러다 2019년 친구들과 가루이자와로 여행을 떠났어요. 골프와 쇼핑, 온천으로 유명한 여름 휴양지인데, 막상 가보니 특별히 할 일이 없더라고요. 하루는 프리미엄 아웃렛을 쇼핑하다 로얄코펜하겐 매장을 발견했어요. 그런데 가격이 한국의 3분의 1 정도더라고요. 나중에 알고 보니 여러 등급 중 세컨드 그레이드를 아웃렛에서 많이 취급한다더군요. 과감하게 찻잔과 그릇을 사서 엄마에게 선물한 게 수집의 시작이었어요.
어머니는 어떤 계기로 컬렉팅에 동참하셨나요? 찻잔과 작은 그릇을 사용하다 보니 더 큰 플레이트를 사야겠다고 생각하셨나 봐요. 저렴하게 구매할 방법이 없을지 알아보라고 하셨죠(웃음). 어느 날 푸드 스타일리스트가 크게 벼룩시장을 열어서 어머니와 같이 방문했어요. 제가 ‘로얄코펜하겐 플레이트 2개만 사드리겠다’고 하자 한 바퀴 돌고 난 뒤 갑자기 ‘4개 주세요’ 하시더라고요. 그렇게 파스타 볼이나 샐러드 볼, 밥이나 국그릇을 서너 점씩 구매하다 보니 지금에 이르렀어요.
리큐어 브랜드 히어링과 협업한 보틀은 위스키 디캔터로 활용한다.
다양한 식기 브랜드를 경험했을 텐데 그중 로얄코펜하겐을 가장 선호하시나요? 제가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는 로얄코펜하겐을 갖고 싶다고 이야기하셨어요. 당시는 결혼할 때 그릇을 세트로 장만하는 문화라 오랫동안 사용하신 그릇 세트가 있었어요. 그런데 15년 전 집을 리모델링하면서 모든 가구와 식기를 다 바꾸겠다고 결심하신 거예요. 그때 코렐 같은 국민 그릇부터 패션 하우스의 테이블웨어, 국내 브랜드 그릇을 모두 정리하고 이딸라, 아라비아핀란드로 교체했어요. 다음 단계가 로얄코펜하겐이었고요. 자연스럽게 북유럽 디자인으로 이동하게 된 거죠.
그린, 퍼플, 블랙, 코랄 등 다양한 컬러 라인 가운데 블루만 눈에 띄어요. 저희 집에는 블루 컬러만 있어요. 제 눈에는 아직 블루가 가장 예뻐요. 여기저기 매칭하기 좋은 데다,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눈처럼 하얀 인상이 어울려서요. 그런데 어머니는 몰라서 그런 거라며 선을 긋더라고요(웃음). 블루를 갖췄다면 다른 컬러도 필요하다고 이야기하세요.
두 분이 각각 가장 아끼는 아이템은 무엇인가요? 어머니는 다 소중해서 못 고르겠다고 하다 결국 제가 처음 선물한 찻잔과 플레이트를 말씀하셨어요. 제가 가장 아끼는 건 애쉬트레이와 최근 구매한 아이스 버킷이에요. 애쉬트레이를 7년 정도 수집했는데 영국 식기 브랜드의 빈티지 트레이를 주로 모았어요. 로얄코펜하겐을 탐색하던 중 혹시 애쉬트레이가 있나 검색해보니 로얄코펜하겐 산하 빙앤그뢴달의 빈티지 제품이 존재하더라고요. 우연찮게 중고 마켓에서 구했어요. 아이스 버킷은 최근 와인 쿨러를 사고 싶어서 여러 디자인을 찾던 차에 로얄코펜하겐 광고 사진에서 발견했어요. 화이트 와인이나 위스키를 칠링하는 용도로 사용하기도 하고, 평소에는 꽃을 꽂아 화병으로 활용해요.
추가로 들이고 싶은 위시리스트도 궁금하군요. 뚜껑 있는 덮밥 볼이 보온도 되고 반찬통처럼 쌓을 수도 있어 활용도가 높아요. 지금은 2개뿐이라 짝을 맞춰 더 들이고 싶다고 하세요. 저는 오래된 빈티지를 좋아하고, 어머니는 현대적인 아이템에 관심이 맞아 이후에는 컬러 시리즈를 모을 것 같아요.
로얄코펜하겐과 어울리는 블루 위스키 보틀을 모았다. 왼쪽부터 발렌타인 21년 올드 보틀, 브룩라디 18년, 글렌모렌지 캐드볼 에스테이트, 마르스 몰트 갤러리 8년.
로얄코펜하겐은 매해 스페셜 에디션을 출시하죠. 크리스마스를 좋아해서 1979년도 컵, 2000년과 2005년 그릇, 제 탄생 연도 접시 등을 갖고 있어요. 마음에 드는 삽화로 골랐고요. 특정 연도 에디션이나 이니셜 머그는 의미가 커서 친한 친구들에게 선물하곤 해요. 실패하는 법이 없는 선물입니다.
단일 브랜드로 식탁을 차리는 스타일링 팁이 있을까요? 저는 잔잔한 패턴에 여백 있는 디자인을 선호하는데, 어머니는 크고 작은 패턴을 두루두루 섞어서 활용해요. 한 종류만 놓으면 오히려 상이 단조로워 보이고, 여러 패턴이 섞여야 상차림에 적당한 여백과 복잡함이 어우러진다고요. 또 어머니는 주로 한식을 요리하니 샐러드 볼에 잡채를 담거나 타원형 볼에 카레를 가득 담는 등 제가 생각하지 못한 방식으로 양식기를 접목하곤 해요.
어렵게 구한 아이템이 있다면요? 예전에 덴마크의 체리 리큐어 브랜드 히어링과 협업해 한정판 보틀을 출시한 적이 있어요. 덴마크 성이 그려진 디자인이 예뻐 보여 여기저기 검색하다 과거의 협업 제품임을 알고 병만 구매해 디캔터로 사용 중이에요. 과거에는 손님을 대접할 때 술병의 레이블이 보이도록 테이블에 올리는 건 예의 없는 행동이었다고 해요. 그래서 예전 영화를 보면 귀족의 테이블에는 술병 대신 화려한 디캔터가 등장해요. 불투명한 디캔터에 위스키를 담아 블라인드 테이스팅 이벤트를 진행하는 것도 재미있고요.
여러 아이템을 모으지만 어머니와 함께 수집하는 경험은 남다를 것 같아요. 수집은 이야기를 쌓는 행위라고 생각해요. 당장 물건을 소유하는 만족감도 크겠지만 모으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을 추억하면서 새로운 의미가 생겨나죠. 특히 어머니와 함께 수집하는 일은 우리만의 기억을 쌓는 의식과도 같아요. 바쁘게 지내다 보니 서로의 시간을 공유하기 쉽지 않잖아요. 그런데 수집품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함께 시간을 보내고 후대에 전할 유산을 남길 수 있어요. 또 컬렉션을 들여다보며 서로 취향을 발견하고 미적 감각을 나누다 보면 대화의 소재가 더 풍성해지죠. 마지막으로 수집은 여행이나 어버이날, 크리스마스 등 특별한 순간을 기념하는 의식으로 자리 잡았어요. 수집품이 저희 모녀의 기록을 담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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