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이 되면 시장 과일 가판대 옆으로 호두, 아몬드, 캐슈넛 같은 견과류 봉지가 다시 보이기 시작한다. 겨울철엔 군고구마나 귤이 주목받는다면, 봄철부터는 아침 대용이나 간식으로 견과류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진다.
포만감도 좋고 보관도 편해서 도시락에 넣기에도 좋다. 그 중에서도 호두는 오랫동안 한국 식탁에 익숙한 재료다. 밑반찬이나 볶음 재료로 자주 쓰이고 명절 음식에서도 빠지지 않는 호두. 익숙한 식재료였지만, 이번엔 대장암 예방과 관련된 이야기로 눈길을 끌고 있다.
호두 속에 숨겨진 ‘우롤리틴 A’… 장까지 바뀌었다
3일 동아일보 보도에 따르면, 미국 암 연구협회(AACR)가 발간하는 학술지 ‘암 예방 연구(Cancer Prevention Research)’ 4월호에 실린 논문에서, 미국 코네티컷 대학교(UConn) 의과대학 연구진은 호두에 포함된 '엘라지타닌'이라는 성분이 대장암 억제에 효과를 보일 수 있다고 밝혔다.
이 물질은 장 속 미생물에 의해 ‘우롤리틴 A’라는 물질로 바뀐다. 우롤리틴 A는 평소 식단에서 얻기 어려운 물질로, 항염증 효과가 강해 대장 용종 내 단백질 수치를 낮추는 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40세에서 65세 사이 성인 39명을 대상으로 직접 임상 시험을 진행했다. 참가자들은 하루 56g, 손바닥 한 줌 정도의 호두를 3주간 꾸준히 섭취했다. 그동안 엘라지타닌이 포함된 다른 음식은 피하도록 식단을 통제했다. 이후 진행한 대장 내시경 검사 결과, 우롤리틴 A 수치가 높아진 참가자들은 대장암 발생과 관련 있는 주요 단백질 수치가 줄어든 것으로 확인됐다.
이 수치는 혈액, 대변, 소변 모두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났다. 또 일부 참가자에선 면역세포 반응이 활발해지는 변화도 있었다. 대장 용종은 대장암 전 단계에서 발견되는 대표적인 변화다. 이 부위에서 발견되는 단백질 수치가 떨어졌다는 점은 단순한 염증 완화 수준이 아니라, 직접적인 예방 효과를 말해주는 부분이다.
비만·음주자에서 뚜렷한 변화… 연구진 “호두 하루 한 줌이면 충분”
이번 연구에서 의미 있는 결과는 또 있다. 참가자 중에는 음주자가 절반이었고, 3명 중 1명은 체질량지수(BMI)가 30을 넘는 비만 상태였다. 이들은 대장암 발생 위험이 일반인보다 높은 그룹이다. 그런데 이 그룹에서 우롤리틴 A 수치가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났고, 그만큼 단백질 수치 변화도 확연했다. 특히 ‘펩타이드 YY’라는 단백질이 증가했는데, 이는 대장암 억제와 관련 있는 성분이다.
연구를 이끈 다니엘 로젠버그 교수는 10년 넘게 호두의 항염 효과를 연구해 왔다. 그는 “호두를 매일 한 줌씩 먹는 것만으로도 여러 이점을 얻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위험은 거의 없는데, 잠재적인 이점은 분명하다는 설명이다.
호두가 주목받은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월, 국제 학술지
그냥 먹기엔 아까운 호두… 이렇게 먹으면 대장 건강에 도움
호두는 어떻게 먹는 게 좋을까. 연구에선 가공되지 않은 생호두를 기준으로 했다. 열을 가하거나 기름에 볶는 방식은 엘라지타닌의 항염증 작용을 떨어뜨릴 수 있기 때문에 피하는 것이 좋다.
가염 처리되거나 설탕이 더해진 제품 역시 염증 억제와 관련된 효과를 낮출 수 있어, 가능하면 무가공 제품을 선택하는 것이 기본이다. 하지만 매일 같은 방식으로 호두를 먹는 건 쉽지 않다. 이를 보완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한 방법이 샐러드다.
호두는 로메인, 치커리, 루콜라 같은 채소와 잘 어울린다. 방울토마토나 삶은 닭가슴살, 삶은 달걀 등을 함께 넣고 발사믹 드레싱이나 올리브오일·레몬즙을 활용하면 기름기를 줄이면서도 고소한 풍미를 살릴 수 있다. 특히 간편식으로 챙기기 쉬운 구성이라는 점에서 지속성 확보에도 유리하다.
요거트와 함께 먹는 방식도 있다. 플레인 요거트에 바나나, 블루베리, 꿀을 약간 넣고 으깬 호두를 뿌리면 출근 전 간단하게 챙겨 먹기 좋다. 설탕이 적은 재료를 함께 쓰는 것이 핵심이다.
잡곡밥에 넣거나, 조림으로 만들어 밥반찬으로 활용하는 방법도 있다. 간장, 물엿, 참기름을 섞은 양념에 호두를 살짝 졸이면 오래 두고 먹을 수 있는 기본 반찬이 된다. 이때도 가공 호두보다는 생호두를 활용하는 것이 낫다.
하루 권장량은 약 56g, 손바닥 위에 놓을 수 있는 한 줌 정도다. 이를 넘어 과하게 섭취할 필요는 없다. 연구팀 역시 "양보다 꾸준함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무심코 먹던 호두 한 줌, 간식 이상의 역할
견과류는 원래 간편식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출출할 때 한 줌, 운동 전후로 한 줌. 오래 두고 먹을 수 있어서 직장 책상 서랍이나 가방 속에 하나쯤 챙겨두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이제는 그저 출출함을 달래는 용도가 아니라, 식생활 전체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선택이 됐다.
호두 한 줌은 대략 7~8알 정도다. 과하게 먹지 않아도 충분하다. 매일 챙기기 어렵다면 2~3일에 한 번이라도 꾸준히 섭취하면 몸속 엘라지타닌 수치를 유지할 수 있다. 삶의 리듬에 맞춰 천천히, 습관처럼 섭취하는 것이 중요하다.
과거엔 슈퍼푸드라는 말로 불렸던 견과류지만, 이제는 ‘음식’ 그 자체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매일 먹는 음식 안에도 예상하지 못한 변화가 숨겨져 있다는 점이 이번 연구로 다시 한 번 드러났다. 호두는 간식 이상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Copyright ⓒ 위키푸디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