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린 칼럼] 이유가 되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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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린 칼럼] 이유가 되는 것들

문화매거진 2025-04-29 13:58:59 신고

▲ 진행 중인 한 세트 / 사진: 김세린 제공
▲ 진행 중인 한 세트 / 사진: 김세린 제공


[문화매거진=김세린 작가] 갓 성인이 되고 돈을 벌며 소소하게 작은 장난감을 사거나 책을 수집하는 취미를 가졌었다. 아주 많이 모으는 것도 아니었고, 썩 비싸고 희귀한 걸 사지도 않았다. 빈티지 소품이나 어릴 때 일던 동화책들. 오래된 서점이나 소품샵을 오가며 기념품 사듯 아주 작은 한 가지들을 가져오는 수준이었다. 때론 버려진 것들을 주워 오기도 했다. 그때는 그렇게 모은 물건이 하나둘 쌓여가는 방 한구석이 뿌듯했지만, 언젠가 그것들을 정리하고 처분해야 할 날도 있다는 생각은 별로 하지 않았던 것 같다.

나는 물건을 잘 버리지 못한다. 이건 언젠가 필요할 것 같아서, 저건 추억이 있어서, 없으면 허전할 것 같아서. 당연히 시간이 지날수록 물건은 쌓인다. 그리고 당연히 시간이 지날수록 나도 변해서 이제는 이따금씩 옷이든 물건이든 한꺼번에 정리하게 되었다. 그래도 많이씩은 못 버리고, 버리려고 모아 둔 무더기에서 다시 구조해 원상 복귀시키는 경우도 있다. 

작품이 쌓이는 건 기쁜 일이다. 그게 곧 작업하는 사람의 자산이지만, 이제는 보관할 곳에 대한 걱정도 함께 쌓인다. 그 부피감, 무게, 면적이 나를 곤경에 빠트린다. 큰 작업을 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는 왠지 난처하고, 난처해하는 스스로를 보며 너 이것밖에 안 되는 사람이니. 맞아, 난 고작 이만큼이야. 일인극을 하며 캔버스 크기를 타협 보는 처지에 이르렀다. 어차피 내 지갑 사정에도 한계가 있기에 그 부분에서라도 타협은 어느새 필수 코스가 되었다. 이런 생각을 계속하다 보면 뇌가 매슥거린다.

최근에는 100호(162cm 높이) 두 점이 세트인 그림을 그렸다. 구상한 대로라면 각각 가로로 눕혀 한 점은 위에, 한 점은 아래에 약 50cm에서 1미터 사이의 간격을 두고 걸고 싶었는데, 그렇게 걸 만한 공간이 없다. 하다못해 지금의 작업실에서도 그렇게까지는 걸 수가 없어서 가까스로 위, 아래로만 걸어둔다. 그 상태마저도 위태로워서 잠시 잠깐 진행 상태만 확인한 후 황급한 마음으로, 하지만 천천히 조심스럽게 떼어낸다. 걸고 내릴 때마다 힘겹게 바탕을 칠하고 힘겹게 올려 벽에 걸어둔 내 캔버스가 커다란 간판처럼 떨어져 내려 나를 덮치고 기스가 나고 천에 늘어난 자국이 생기는 아찔한 상상을 한다. 끔찍한 악몽이다.

사실 이 정도 크기의 그림을 구상하고 시도해 본 건 처음이다. 다른 사람들은 더 큰 걸 잘만 하지만, 나는 왜인지 마땅한 보관 장소와 어디서든 전시가 가능한 작품의 효율성 같은 걸 따지며 꽤나 고심하고 핑계를 대며 미뤄왔던 것이다. 퍼뜩 그런 스스로가 꼴 보기 싫어서 나름 사소한 도전을 해 봤다. 도전이라기에도 민망하지만, 그래도 역시나 이걸 어디에 어떻게 보관할지는 도통 모르겠다. 

그리는 시간은 작품을 이고 지고 함께 지낼 앞으로의 시간에 비해 턱없이 짧다. 팔리면 되지만 팔리지 않을지도 모른다. 작업은 과감하게 쭉 쭉 뻗어 해나가야 하는데, 그게 그림에 고스란히 담기는 걸 아는데 자꾸만 쓸데없는 방향으로 신중해진다. 바탕칠을 하고 남은 물감 찌꺼기도 아깝다. 그래도 완성도 되지 않은 두 캔버스를 보고 있으면 그저 계속 영원히 보고 있고 싶다. 예전에는 그리는 순간이 제일 좋았는데 언젠가부터는 그리다가 뒤로 물러나 내 그림을 바라보고 있는 순간이 좋다. 더 좋은 건 다 그린 그림을 걸어두고 커피도 마시고 다른 일을 하다가 순간 눈길이 가 하염없이 바라보게 되는 때다. 그 만족감은 나만 아는 것일 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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