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뉴스 이상명 기자] 1분기 주요 대기업들은 역대급 실적을 쏟아내며 글로벌 경기 침체 속에서도 놀라운 저력을 과시했다. 현대자동차와 SK하이닉스는 각각 1분기 기준 사상 최대 매출을 기록했고, 삼성전자와 LG전자 역시 매출과 영업이익에서 선방했다.
그러나 이 같은 성과 뒤에는 ‘관세의 역설’이 숨어 있다는 분석이다. 미국의 고강도 관세 부과가 2분기부터 본격화되면서, 기업들은 실적 둔화와 수익성 악화라는 도전에 직면해 있다. 이에 따라 현지 생산 확대, 생산지 조정, 가격 인상 등 다각도의 생존 전략이 가속화되고 있다.
28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와 기아는 1분기 각각 44조 4078억 원, 28조 175억 원의 매출을 기록하며 합산 72조 4253억 원으로 전년 대비 8.3% 성장했다. 하지만 영업이익은 6조 6421억 원으로 4.9% 감소해 수익성 악화의 신호를 보였다. 특히 환율 상승이 매출 증가에 큰 역할을 했다. 1분기 말 달러·원 환율은 전년 동기 대비 9.4% 오른 1453원으로, 현대차 매출에 약 2조 590억 원, 기아 영업이익에 3640억 원의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
SK하이닉스는 1분기 매출 17조 6391억 원, 영업이익 7조 4405억 원으로 전년 대비 각각 41.9%, 157.8% 증가하며 역대 최고 실적을 냈다. 고대역폭메모리(HBM) 수요가 실적을 견인했다. LG전자도 22조 7398억 원 매출을 기록했으나 영업이익은 5.7% 감소했다. 삼성전자는 잠정 실적 기준 매출 79조 원, 영업이익 6조 6000억 원으로 시장 기대를 웃돌았다.
이처럼 1분기 호실적은 환율 효과와 미국 내 선주문, 재고 축적 수요가 맞물리며 ‘관세 부과 전 효과’가 반영된 결과다. 그러나 2분기부터는 관세 부과가 현실화되면서 실적에 부정적 영향이 본격화할 전망이다.
미국은 3월 철강·알루미늄에 이어 4월부터 수입 자동차에 25% 관세를 부과했다. 5월 3일부터는 엔진, 변속기, 타이어 등 자동차 부품에도 동일한 관세가 적용된다. 이로 인해 4월 한국의 대미 수출은 14% 이상 급락하며 관세 충격이 현실화됐다. 철강업계도 중국산 저가 철강재와 미국 관세의 이중고에 시달리며 실적이 악화되고 있다. 포스코홀딩스는 1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2.6% 감소했고, 현대제철은 적자로 전환했다.
석유화학산업 역시 공급 과잉과 글로벌 경기 둔화로 6분기 연속 적자가 예상된다. 롯데케미칼과 LG화학은 1분기 각각 1300억 원대, 900억 원대 손실을 기록한 것으로 추정된다. 글로벌 침체가 심화되면 산업 전반에 걸쳐 실적 악화가 불가피하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현대차와 기아는 관세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미국 현지 생산 확대와 생산지 조정을 적극 추진 중이다. 현대차는 멕시코 공장에서 생산하던 미국 판매용 투싼 SUV 물량을 앨라배마 공장(HMMA)으로 전환하고, 신공장(HMGMA)의 생산량을 연산 30만 대에서 50만 대로 늘리는 등 현지화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또한, 미국 내 부품업체 신규 발굴로 부품 관세 부담도 줄이려 한다.
LG전자도 미국 테네시 공장의 세탁기, 건조기 생산을 확대하며 현지 생산 비중을 높이고 있다. 관세 부과에 따른 원가 상승 박에 대응해 주요 가전제품과 TV 가격 인상도 검토 중이다. LG전자 관자는 “미국, 멕시코 등 최적의 생산지를 활용해 다양한 시나리오별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밝혔다.
삼성전자 역시 아직 세부 사업부별 실적을 발표하지 않았지만, 관세 영향에 대비해 생산지 다변화와 가격 정책 조정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1분기 역대급 실적은 환율 효과와 관세 부과 전 선주문 수요가 맞물린 ‘관세의 역설’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2분기부터는 관세 부과가 본격화되면서 실적 둔화와 수익성 악화가 현실화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자동차, 가전, 철강, 석유화학 등 주요 산업이 동반 침체에 빠질 경우, 한국 경제 전반에 미치는 충격은 상당할 전망이다.
한국신용평가는 현대차·기아의 올해 연간 영업이익률이 1.8%포인트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고, LG전자의 2분기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17.2%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글로벌 경기 침체가 가시화되면 ‘대한민국에 살아남을 산업이 없다’는 극단적 우려도 나온다.
주요 기업들은 1분기 역대급 실적을 바탕으로 2분기 관세 폭풍에 맞서 현지 생산 확대, 생산지 조정, 가격 인상 등 다각도의 생존 전략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관세의 장기적 영향과 글로벌 경제 불확실성 속에서 이 전략들이 얼마나 효과를 발휘할지는 미지수다.
2분기 실적은 단순한 숫자를 넘어, 한국 산업계가 글로벌 무역 환경 변화에 얼마나 유연하고 강인하게 대응할 수 있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 기업들이 관세 폭풍을 이겨내고 지속 가능한 성장 궤도에 오를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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