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 한혜경씨는 3년 전 물리치료를 받으러 동네의 한 병원을 찾았다가 문전박대를 당했다. 장애인 보조견과 함께 있다는 게 그 이유였다. 한씨가 법을 근거로 항의하자 결국 출입이 허용됐지만, 병원 측에선 간호사들만 다닐 수 있는 직원용 통로를 통해 들어오라며 끝까지 눈치를 줬다.
뉴시스 보도에 따르면, 한씨는 "손님도 많지 않은 병원이었는데 제가 굉장한 불청객이 된 것 같았다"고 떠올렸다.
이처럼 그동안 공공장소에서 심심찮게 벌어졌던 장애인 보조견 출입 거부 사례가 앞으로는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지난 23일부터 장애인 보조견 동반출입과 관련한 '장애인복지법 시행령 및 시행규칙' 개정안이 시행됐기 때문이다.
현재 장애인복지법 제40조제3항에서는 대중교통이나 공공장소, 숙박시설·식당 등에서 정당한 사유 없이 장애인 보조견을 동반한 장애인 등의 출입을 거부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거부할 경우엔 3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이번에 개정된 시행규칙은 여기에서 언급된 '정당한 사유'를 구체화했다. ▲의료기관의 무균실·수술실 등 감염관리를 위해 필요한 경우와 ▲식품접객업 영업소의 조리장·보관시설(창고) 등의 위생관리를 위해 필요한 경우 등 크게 2가지로 보조견 출입이 제한될 수 있는 이유를 명확히 한 것이다.
장애계에선 이러한 변화에 대체로 반가움을 표하고 있다. 모호했던 기준이 분명해지면서 부당하게 출입이 막히는 일이 줄어들 것이란 기대다.
시각장애인이자 삼성화재안내견학교에서 안내견 훈련 일을 하는 유석종 프로는 "(보조견을) 무서워하거나 싫어하는 손님들이 있다는 걸 나름의 정당한 사유로 드는 업주들이 있는데, 이번에 개정된 법령은 2가지를 제외한 어떤 것도 정당한 사유가 될 수 없다고 명시한 것이라 굉장히 진일보한 법"이라고 평가했다.
한혜경씨도 "모호했던 규정이 일정 부분 해소되면서 장애인들과 보조견의 이동권이 증대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했다.
다만 개정안에 '무균실·수술실 등', '식품접객업 영업소의 조리장·보관시설 등'과 같이 '등'이라는 표현이 포함돼 다툼의 여지가 남아있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
한씨는 "혹여나 병원 대기실, 물리치료실 등 무균실이나 수술실이 아닌 의료기관에서 거부를 당할까 우려된다"고 했다. 또 "오마카세나 모던바 같이 조리하는 공간과 테이블이 붙어 있는 경우엔 법이 보조견을 어떻게 지킬 수 있을지 궁금하다"고 했다.
장애인 보조견 인식 개선을 위해선 대중교통 종사자와 자영업자 등을 대상으로 한 교육도 중요하다고 장애인 당사자들은 입을 모은다. 차별을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장애인들의 입장이나 현행법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출입을 거절하는 경우가 많다고 보기 때문이다.
유 프로는 "(장애인 보조견의 필요성에 대해) 알면서도 막는 분들은 별로 없다고 본다"며 "어디서 본 적도 없고 배운 적도 없는데 뭐라고 하면 그것도 억울한 일이지 않나. 그 분들이 자연스럽게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씨는 초·중·고 교육과정에도 보조견에 대한 내용이 포함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는 "특히 보조견과 함께하는 시각장애인 강사의 강의는 학생들의 이해와 공감 형성에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장애인 보조견은 전문훈련기관에서 훈련과정을 거치며 훈련 중이거나 훈련을 이수한 보조견에겐 표지가 발급된다. 하네스나 보조견 손잡이 등에 부착된 표지를 통해 보조견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보조견 중엔 시각장애인 안내견 외에 청각장애인 보조견, 지체장애인 보조견도 있다. 레브라도 리트리버, 보더콜리, 골든두들, 푸들 등 다양한 견종이 활동하고 있다.
보조견이 귀엽다고 쓰다듬거나 부르는 행위, 먹을 것을 주는 행위는 보조견이 임무를 수행하는 데 방해가 된다. 순간적으로 가던 방향을 바꿔 위험한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허락 없이 보조견의 사진을 찍는 것도 스트레스를 줄 수 있으므로 자제해야 한다. 도움이 필요해 보이는 경우엔 보조견과 동행 중인 장애인에게 먼저 물어보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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