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고사리철 절정…"누구에게나 공평하고 풍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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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고사리철 절정…"누구에게나 공평하고 풍성하다"

연합뉴스 2025-04-26 08:00:03 신고

제사·명절 차례상 빠지지 않는 음식…자손의 번성 의미 담겨

하루 2.5건 꼴로 고사리 길 잃음 사고 발생

제주의 고사리 제주의 고사리

[제주관광공사 비짓제주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제주=연합뉴스) 변지철 기자 = 봄이 되면 한라산 자락 어디서든 쉽게 만날 수 있는 게 고사리다.

4월에서 5월 중순에 이르는 한 달 남짓한 기간 제주 토박이는 물론 이주민들도 고사리를 꺾으러 산과 들판으로 향한다.

고사리 꺾는 재미에 취해 땅만 보며 가다 길 잃음 사고로 이어져 제주에선 이들 고사리 채취객의 안전을 위해 해마다 '봄철 길 잃음 안전사고 주의보'를 발령한다.

제주 사람들에게 고사리는 어떤 의미일까.

26일 개막한 한라산 청정 고사리 축제를 맞아 고사리와 관련한 제주의 풍속을 알아본다.

◇ 제주의 고사리철…"욕심부리진 않았다"

4월 들어 제주 한라산과 중산간 지역에 짧게 반복되는 비 날씨.

고사리 장마라 불리는 짧은 봄장마 기간 비가 그치면 제주 곳곳에서 싹을 틔운 고사리들이 경쟁하듯 솟아오른다.

적당히 햇빛을 가려주는 제주의 숲 '곶자왈'의 나무와 덩굴들.

제주의 모든 환경이 고사리가 자라나는 데 안성맞춤이다.

조그만 얼굴 들고 솟아 오르는 고사리 조그만 얼굴 들고 솟아 오르는 고사리

[제주관광공사 비짓제주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비가 그치면 제주 토박이는 물론 제주에 이주한 사람들까지 너나 할 것 없이 고사리를 채취하러 산과 들판으로 향한다.

모두가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 커다란 앞치마를 두르고 앉아 덤불 숲을 헤치며 고사리 꺾기에만 열중한다.

이주민들에게 고사리를 채취하는 일은 서서히 제주에 녹아들어가는 과정이다.

'고사리 많은 곳은 며느리에게도 가르쳐주지 않는다'고 하는 제주 사람들을 서운해 하면서도, "고사린 세어지민(채소 따위가 억세게 굳다) 튿지(뜯지) 말라!"고 퉁명스레 가르쳐주는 이웃 삼춘들의 말에 서운함은 눈 녹듯 사그라든다.

이른 봄의 고사리는 독성이 거의 없지만 시간이 지나 잎이 피고, 줄기가 단단해지면 독성이 배가 돼 먹을 수 없게 된다. 들판에 방목하는 말과 소도 독성이 있는 고사리를 먹지 않는다.

경험이 없는 이주민들이 혹여나 탈이 날까 걱정하는 제주 토박이들의 마음이 이심전심으로 전해지는 것이다.

고사리를 꺾으러 다니다 보면 어느새 한 자루 가득한 고사리를 얻어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

가진 땅 한 뼘 없는 사람들에게도 골고루 아낌없이 주는 자연의 소중한 선물이다.

흔하게 얻을 수 있는 봄나물이지만 옛 제주 사람들은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제주에 '고사리 한 웅큼이믄 식게(제사), 멩질(명절) 다 헌다(한다)'는 말이 있다.

연중 제사, 명절에 쓸 고사리만 정도껏 채집해 푹 삶고 봄볕에 말려뒀다가 필요할 때 요긴하게 쓰는 게 제주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모습이었다.

제주의 고사리 제주의 고사리

[제주관광공사 비짓제주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꺾어도 꺾어도 다시 자라나는 고사리

"고사리는 산 자의 음식이 아니다."

양용진 제주향토음식보전연구원장은 제주의 음식을 소개한 책 '제주식탁'에서 고사리는 제주의 제사상과 명절 차례상에 "빠지지 않고 올라가는 음식"이라며 이같이 설명한다.

제사상에 올리는 나물을 제주어로 '탕쉬'라고 하는데 보통 고사리와 콩나물 등을 삶아 참깨 등 양념을 넣고 버무려 만든다.

고사리, 콩나물 외에도 미나리, 양하, 무, 호박 등을 계절에 따라 골라 탕쉬로 만들어 쓴다.

제주 사람들은 또 고사리로 '느르미전' 또는 '고사리전'을 만들어 제사상에 올린다.

느르미전은 일정한 길이로 자른 쪽파와 고사리를 가지런히 늘어놓고 달걀물에 부친 전(煎)이다.

고사리만 넣으면 고사리전이 된다.

옛날 살림이 어려워 계란조차 구하지 못할 때는 메밀가루로 묽은 반죽을 만들고 고사리 한두가닥이라도 넣어 전으로 부쳐 제사상에 올렸다고도 한다.

제주의 고사리 제주의 고사리

[제주관광공사 비짓제주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고사리는 제사의 시작과 끝을 담당하는 나물이다.

제주의 제사는 제일 먼저 고사리 한두가닥 정도를 앞 그릇에 놓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는데 이는 무덤에 있는 조상을 집 안으로 모시는 의미라고 한다.

제사가 끝난 뒤에는 조상이 넓적한 느르미전 또는 고사리전에 제사음식을 싸고, 기다란 고사리 탕쉬로 묶어 어깨에 짊어지고 가도록 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

무언가 애틋하면서도 조상을 섬기는 데 정성을 다한 제주 사람들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

그런데 왜 하필 고사리일까.

다른 재료로도 전과 탕쉬를 만들 수 있을 텐데 굳이 고사리를 쓰는 이유는 뭘까.

제주의 세시풍속을 다시 되새긴 책 '그리운 제주 풍경 100'(김순이 글·김동연 그림)은 손녀와 할머니의 대화를 통해 이 물음에 답을 한다.

"할머니, 고사릴 제사상에 꼭 올리는 이유가 뭐우꽈?"

"고사린 아홉 손(筍, 순)이렌 헌다. 보통 낭(나무)이나 풀덜은 손이 세 개이고. 싹이 나민 꺾어불곡 꺾어불곡 허민 세 번 이상은 나질 못헤여. 힘이 다 헌 거주. 고사린 꺾어도 꺾어도 아홉 번 열 번을 악착같이 싹이 도나거든(돋아나거든). 그치룩(그렇게) 자손이 악착같이 끊어지질 말게 해줍센(해달라고) 조상님께 올리는 거."

척박한 자연환경과 왜적의 침입, 태풍과 같은 각종 자연재난, 4·3사건과 같은 굴곡진 역사 속에도 자손의 번성을 바라는 마음이 담겼다.

꺾어도 꺾어도 새로 자라나는 고사리의 왕성한 생명력 덕분에 제주의 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고 풍성하다.

119구급대에 의해 구조된 고사리 채취객 119구급대에 의해 구조된 고사리 채취객

[제주도소방안전본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하루에 2.5건 꼴로 길 잃음 사고 발생

"앗! 여기가 어디지?"

'고사리 삼매경'에 빠져 땅만 보고 돌아다니다 보면 길을 잃고 당황하기 십상이다.

제주도소방안전본부에 따르면 이달 들어 길 잃음 사고 또는 뱀에 물려 다치는 사고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 1일 오후 6시께 서귀포시 표선면 하천리 일대에서 고사리 채취를 위해 길을 나섰던 A(85)가 귀가하지 않고 있다는 실종 신고가 접수됐다.

소방구조대원 10명이 휴대전화 위치정보시스템(GPS) 신호를 통해 수색에 나선 끝에 A씨를 발견해 무사히 귀가시켰다.

지난 12일에는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 따개비오름, 서귀포시 표선면 영주산 일대, 제주시 구좌읍 행원리 행원목장 일대 등에서 실종 신고가 이어졌다.

토요일을 맞아 아침 일찍부터 저녁까지 제주 곳곳에서 고사리를 채취하러 나간 사람들이 길을 잃고 직접 119에 신고하거나 함께 온 일행이 안 보인다며 119에 신고한 것이다.

이날 하루에만 11건의 신고가 접수됐다.

최근 5년간 길 잃음 사고 통계 최근 5년간 길 잃음 사고 통계

[제주도소방안전본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이들 모두 건강이 양호한 상태로 발견돼 안전하게 귀가했다.

고사리를 꺾다가 뱀에 물리는 사고도 발생했다.

지난 10일에는 제주시 노형동에서 70대 남성 B씨가 고사리를 꺾다가 뱀에 물리는 사고를 당해 병원으로 이송됐고, 16일 서귀포시 색달동에서 50대 여성 C씨가 뱀에 물려 응급처치 안내를 받았다.

지난 23일 기준 이달 들어 총 65건의 길 잃음 사고가 발생했다.

이 중 58건이 고사리 채취 중에 일어난 것으로 하루 평균 2.5건의 길 잃음 신고가 발생한 것이다.

구조객은 대부분 60∼70대였다.

2020년부터 2024년까지 최근 5년간 도내에서 발생한 길 잃음 안전사고는 총 511건으로, 이 가운데 고사리 채취 중에 발생한 사고가 전체의 41.5%(212건)로 가장 많다.

전체 사고(511건) 중 59% 이상이 봄철(3∼5월)에 집중되었고, 특히 4월에만 전체의 37.8%(193건)가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제주소방안전본부 관계자는 "고사리 채취할 때는 자주 주위를 살펴 본인의 위치를 확인하고 너무 깊은 곳으로 들어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며 "길을 잃었을 때는 바로 119로 신고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bjc@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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