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나애의 녹색 미술관] 예술로 말하는 환경이야기② 지구의 끝을 기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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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나애의 녹색 미술관] 예술로 말하는 환경이야기② 지구의 끝을 기억하라

문화매거진 2025-04-23 12:38:42 신고

▲ 한스 홀바인(Hans Holbein), '대사들(The Ambassadors)', 1533
▲ 한스 홀바인(Hans Holbein), '대사들(The Ambassadors)', 1533


[문화매거진=윤나애 작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우린 원하는 TV 프로그램을 보기 위해 ‘본방사수’를 해야만 했다. 하지만 수많은 OTT 서비스가 등장한 지금은 어릴 적 보았던 영화부터 최근작까지 언제 어디서든 편하게 시청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콘텐츠를 검색하다 보면 추억의 영화도 만날 수 있는데, 나에겐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메멘토(Memento, 2001)’가 그중 하나다.

단기 기억상실증에 걸린 주인공이 몸에 문신을 새기면서까지 잊지 않으려 했던 진실이 무엇인지 사건을 역순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드러나는 결말은 이 영화가 명작으로 꼽히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이 영화의 제목이면서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잊으면 안 되었던 주제인 메멘토는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라는 라틴어에서 왔다. ‘죽음을 기억하라’라는 뜻을 가진 메멘토 모리는 고대 로마 공화정 시절, 화려한 개선식에서 유래했다고 전해진다. 승리를 거둔 장군이 마차를 타고 영광의 행진을 벌일 때 그의 곁에는 가장 비천한 노예가 따라붙어 “메멘토 모리”를 반복해서 속삭인다. 이는 승리에 도취된 장군이 신 앞에 겸손을 잃지 않도록 “우리 모두는 언젠가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함이었다.

이러한 메멘토 모리의 정신은 후대의 바니타스화에도 영향을 미쳤다. 바니타스(Vanitas)는 라틴어로 공허, 헛됨을 의미하는데, 특히 독립전쟁과 종교개혁, 흑사병, 전쟁 등으로 신념과 인생의 덧없음을 깨달은 16~17세기 네덜란드에서 유행했다. 바니타스화는 인생의 부유함, 쾌락, 지식, 음악 등의 세속적인 것들이 얼마나 유한한지를 나타내기 위해 모래시계, 썩어가는 과일, 책, 악기와 같은 정물들로 표현되었으며 그중 가장 직접적인 상징은 바로 ‘해골’이었다. 죽음을 직관적으로 나타내는 해골은 관람자로 하여금 죽음과 삶을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게 만드는 장치였다.

바니타스를 표현한 작품 중 특히 해골 이미지가 유명한 한스 홀바인(Hans Holbein)의 ‘대사들(The Ambassadors, 1533)’이 있다. 이 작품은 인물들의 화려한 옷과 세밀한 정물로 가득하지만 무엇보다 그림 하단에 길게 늘어진, 알아볼 수 없는 하얀색 물체가 꽤 많은 자리를 차지한다. 이건 정면에서 보면 알아보기 힘들지만 우측의 특정한 어느 위치에서 관람할때에 정확하게 보이는 해골 이미지다. 이러한 장치는 두 등장인물의 의상, 배경의 정물들, 화려하고 정교한 이미지 사이 가장 시선을 끄는 것이 해골임을 유도한다. 결국 모든 것은 죽음과 끝이 있다는 것을 상기시키며 해골 이미지로 강력한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다.

우리는 지구 역시 유한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인류의 삶을 지탱해 온 화석연료인 석유는 이미 세계 곳곳에서 매장량이 고갈되고 있으며 리튬과 희토류 같은 자원들도 급증하는 첨단 기술 수요를 따라잡기 위해 무리한 채굴이 이루어지고 있다. 멸종된 생물종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고 어류의 급감은 당연하게도 바다 생태계 붕괴를 초래하고 있다. 아마존의 열대우림과 전 세계 지하수 자원도 급격히 줄고 있다. 자원의 고갈은 곧 인간의 삶에 위협으로 다가온다.

“언젠가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메멘토 모리의 메시지는 결코 부정적인 의미만 가지고 있는 게 아니다. 우리의 유한한 삶을 가치 있고 의미 있게 마무리하라는 긍정적인 교훈 또한 담겨있다. 나는 그런 의미에서 알라스카주 나바호족의 메멘토 모리를 좋아한다. 나바호족은 이렇게 말한다. “네가 태어났을 때 너는 울었고 세상은 기뻐했다. 네가 죽을 때 세상은 울겠지만 너는 기뻐할 수 있는 삶을 살아라.”

메멘토 모리는 단지 ‘겸손하라’는 뜻에 그치지 않는다. 허무주의에 빠져 삶을 포기하는 우울한 메시지 또한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동안 얼마나 가치 있고 긍정적으로 살아갈지를 고민하는 적극적인 지침이 될 수 있다. 

‘대사들’ 그림 속에 숨겨져 있는 또 한 가지 도상은 왼쪽 상단에 감추어져 살짝 모습을 보이는 커튼 속 십자가다. 관람객이 그림에서 해골을 볼 수 있는 그 특정 위치를 중심으로 해골과 대칭되어있다. 대놓고 그려놓은 해골과 대비되듯 숨겨놓은 십자가는 부활을 기억하며 죽음으로 가는 여정을 결정 해야함을 말해 주는 듯하다. 

이제 우리는 지구의 끝을 기억해야 한다. 지구의 마지막을 어떻게 맞이할지는 전적으로 우리에게 달렸다. 16세기 네덜란드 사람들이 죽음을 직면하며 삶을 성찰했듯 오늘날의 예술도 지구의 유한성을 직시하고 우리가 놓친 가치들을 회복하는 데 기여하기를 바란다. 마지막까지 지구가 건강하고 아름답게 존재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행동을 일으킬 때에 예술은 진정한 메멘토 모리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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