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여민의 뮤지엄 노트] 손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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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여민의 뮤지엄 노트] 손 들어!

문화매거진 2025-04-17 18:23:06 신고

▲ 클레(Klee, Paul/독일, 스위스/1879~1940) 손 들어!(마분지에 채색/36 x 22.5 x 3.5cm/1938년)
▲ 클레(Klee, Paul/독일, 스위스/1879~1940) 손 들어!(마분지에 채색/36 x 22.5 x 3.5cm/1938년)


[문화매거진=최여민 작가] 나는 두 손을 자주 든다. 예고 없는 업무가 들이닥칠 때도, 밤길을 가로지르는 고양이나 한낮의 비둘기 앞에서도 올라간다. 겉으론 태연한 척하지만, 속으로는 두 손은 물론 두 발까지 내보이며 완전한 항복을 선언한다.

파울 클레의 작품 속 인물 또한 순순히 항복의 몸짓을 취한다. 파리 퐁피두센터에 전시된 ‘손 들어!’ 앞에 서면 어디선가 “꼼짝 마!”라는 외침이 들려올 듯하다. 손바닥만 한 작은 캔버스에 단순한 선과 기호적 형상만으로 그려낸 이 모습은 얼핏 보더라도 항복의 순간임을 외치고 있다. 

작품이 만들어질 당시에 유럽은 불안과 긴장이 가득했다. 독일에서는 히틀러가 이끄는 나치 정권이 문화예술을 철저히 통제했고, 자신들의 이념에 맞지 않는 표현은 철저히 배제했다. 특히 추상적이거나 개인의 감정을 중시하는 예술은 공격 대상이 되었고, 클레의 작업도 퇴폐 미술이라는 낙인을 피하지 못했다. 결국 그는 작품 활동에서 배제되고, 교수직과 국적까지 잃은 채 삶의 기반을 송두리째 빼앗겼다.

시대가 내지른 “꼼짝 마”라는 외침 앞에서, 그는 두 손을 들 수밖에 없었다. 전쟁으로 뒤덮인 유럽은 표현의 자유를 짓눌렀고 클레는 점점 고립되어 갔다. 설상가상으로 그는 희귀한 자가면역 질환을 앓으며 붓을 드는 일조차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는 예술가로서의 정체성을 놓지 않았고, 1939년 한 해에만 1,200점이 넘는 작품을 남기며 예술이 곧 삶이라는 사실을 증명해 냈다.

클레에게 예술은 단순한 창작을 넘어 곧 삶 그 자체였다. 아이러니하게도 말년의 작업은 신체적 제약과 정신적 고통 속에서도 오히려 더 강한 에너지를 품고 있었다. ‘손 들어!’ 역시 그 시기에 완성된 작품이다. 단순한 선과 기호로 그려진 인물은 표정 하나 없이 공허한 눈과 어색한 자세로 손을 들어 올리고 있다. 억압 속에서 무력하게 손을 든 그 모습에는 병과 죽음을 마주한 클레 자신의 그림자가 겹쳐진다.

그렇다고 이 작품이 무겁게만 다가오는 것은 아니다. 폭력과 통제를 암시하지만, 화면은 오히려 가볍고 순수한 인상을 준다. 칠이 고르지 않은 단순한 색조와 굵고 투박한 선으로 그려진 인물은 익살스러운 아이의 낙서처럼 보인다. 클레는 무거운 감정을 가볍게 밀어내듯 표현했고, 제약 많은 몸으로도 간결한 선과 기호를 통해 정서를 응축해 냈다. 제한된 색과 단순한 형태는 오히려 감정의 밀도를 높이며, 그 치열한 흔적은 화면 위에 고스란히 남았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손 들어!’ 속 인물이 취한 자세는 완전한 항복의 순간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클레는 두려움과 억압의 장면마저 유치하고 환상적인 이미지로 바꾸며, 무력한 공포를 장난스러운 인사처럼 전환해낸다. 높이 든 두 손의 몸짓은 항복이나 굴복이 아니라 시대의 폭력 앞에 클레가 건네는 유쾌한 ‘안녕’일지 모른다.

클레처럼 나도 가끔 손을 든다. 당황하거나 겁이 날 때, 예상치 못한 상황 앞에서 본능처럼 손이 올라간다. 예전엔 그저 패닉에 가까운 반응이라 여겼지만 이제는 그것이 멈추지 않기 위한 작은 움직임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여기 있어.”라는 말을 꺼낼 수 없을 때, 마음이 움츠러들 때조차 나는 인사하듯 손을 들어본다. 그 평범한 몸짓 안에는 흔들리면서도 버티고 있는 하루와 무너지지 않으려는 의지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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