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담은 마당이 조금 보일 정도로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넘을 수 있을 정도의 높이다. 그렇다고 함부로 주인 허락 없이 담을 넘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일본은 주인 허락도 없이 담을 넘더니 안방까지 들어와 차지한 날강도다. 조선을 근대화하기 위해 침략했다는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우는데 모두 다 헛소리다. 전쟁은 ‘나의 의지’를 적에게 강요하는 폭력 행위다. 국가 존망과 이익이 걸려 있기에 필사적으로 싸우는 것이다. 일본은 청일전쟁 때 25만 명, 러일전쟁 때 약 124만 명이 전후방에서 참여하여 수십만 명의 사상자(러일전쟁 때 일본의 피해 규모는 8만 7,360명 사망, 부상자는 38만 1,313명)를 냈고 내외 공채비가 13억 엔(전쟁 전 일반회계 규모가 최대 2억 9,000만 엔 정도였고 전비 지출은 19억 8,612만 엔)으로 엄청난 빚에 짓눌렸다.
이 엄청난 일본의 희생이 “조선의 독립을 보전하기 위해서”였다고? 소가 웃을 일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략한 것이나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한 것이나 다 제 나라 이익을 위해서 그러는 것이다. 대의명분은 주관적이며 강자가 내세우는 자기합리화일 뿐이다.
“조선의 독립을 도와준다.”라는 의로운 말을 빌려 일본이 음흉한 칼날을 교묘히 숨긴 것이든 아니든 간에 고종이 진실로 망할지 모른다는 경계심을 품고 내치를 단단히 하고 민간경제를 일으켜 세우고 국방대책을 강구했다면 식민지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결국 고종 정부의 부패와 무능이 조선을 스스로 망쳤다. 조선에 더 큰 책임이있다.
조선의 모든 것은 침략자인 일본의 차지가 됐고 국민은 노예 신세로 전락했다. 언어, 문자, 습속, 문화가 다른 일본에 의한 지배는 두 배나 더 치욕적이었다. 왜 이런 상황에 부닥치게 된 것일까? 맹자의 말에 “나라는 반드시 자기 스스로 무너뜨린 다음에야 남이 무너뜨리고(정벌하고), 사람은 반드시 자기 스스로 업신여긴 다음에야 남이 업신여긴다. 國必自伐以後 人伐之, 人必自侮然後 人侮之.”라고 했다. 한마디로 외부의 침입은 스스로 자초한 것이라는 말이다. 내부적인 갈등과 분열로 인해 국력이 약화되면, 강한 이웃국가는 기회를 틈타 침략하게 되어 있다. 내우외환이다. 우리가 나라를 지킬 힘이 있고 내부정치를 잘했다면 식민지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 세기 동안 한국인은 고종과 못난 사대부들이 싼 배설물을 치우느라 피와 땀을 쏟아야 했다. 고종은 국고만 탕진한 게 아니라 후손들의 미래까지 가져다 쓴 것이다. 고종이 남긴 청구서는 세대를 건너 지금까지도 날아오고 있다. 아들 세대가 지나고 손자 세대가 되어도 청구서의 금액은 여전히 남아 있다. 국토는 강점되고 국민은 노예 상태에 있고 주권을 강탈당한 일제강점기의 그 험난한 상황을 겪고도 제대로 된 교훈 하나 얻지 못해서야 너무 억울하지 않은가.
역사는 불친절하다. 띄엄띄엄 읽거나 몇몇 사건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늘 헷갈릴 수밖에 없다. 지금의 한국을 설명하려면 IMF가 나와야 하고, 그 이전의 1987년의 민주화, 1960년대의 4・19와 5・16, 잊지 못할 6・25전쟁과 해방, 그리고 1910년의 경술국치, 고종의 43년 통치기까지 이것이 한 세트다. 어느 것 하나라도 떼어놓고는
한국사는 보이지 않는다. 한국의 지난 160년 중 초기 80년은 혼돈과 치욕의 시기였고 후기 80년은 극복과 도약의 시기였다.
[대전환기6]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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