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매거진=윤나애 작가] 얼마 전, 나는 한 달간의 네팔 살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시간이 지나고 다시 익숙한 일상으로 돌아오면서 그곳에서의 기억도 점차 희미해져 간다. 하지만 카트만두에 도착한 다음 날 아침의 첫 산책만큼은 여전히 생생하게 떠오른다.
네팔의 대기 오염이 심하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기에, 미세먼지와 코로나19 시절의 경험을 바탕으로 철저히 준비해 나선 산책이었다. 그러나 현실에서 마주한 매연은 상상 이상이었다. 숨을 쉬는 것조차 버거울 정도였고, ‘작게라도 히말라야 산맥이 보이겠지’ 했던 기대는 뿌연 하늘 속에 금세 사라졌다.
관광지를 돌며 마주친 거리의 그림들에는 선명하고 장엄한 히말라야가 그려져 있었지만, 정작 현실의 카트만두에서는 그 그림 속 풍경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네팔의 화가들이 결코 존재하지 않는 장면을 그려낸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렇게 그리는 것이 이상한 일도 아니다. 마치 시드니에서는 오페라하우스를, 이집트에서는 피라미드를 그린 엽서를 파는 것처럼 각 나라를 대표하는 이미지를 담는 일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관광객들이 기념으로 간직하고 싶은 것이 매연과 소음으로 가득한 거리의 사진일 리는 없다. 하지만 그런 환경 속에서 설산을 그리는 네팔의 화가들은 어떤 마음일지 문득 궁금해졌다.
어쩌면 그들 역시 더 이상 선명히 보이지 않는 히말라야를 그리워하며 그림을 그리고 있는 건 아닐까? 혹은, 그저 아름다운 그림이 더 잘 팔리기 때문에 포카라의 높은 곳에서 바라본 신비롭게 빛나는 안나푸르나와 마차푸차레의 모습을 반복해 그리는 걸까? 지금 이 그림을 네팔 사람들은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을까?
카트만두는 사방이 거대한 산맥에 둘러싸인 분지 도시다. 개발로 인해 삶은 과거보다 편리해졌지만 그 과정에서 환경은 빠르게 훼손되었고 이제는 스모그에 가려진 히말라야를 정말 운이 좋아야만 볼 수 있게 되었다.
모네의 그림들이 19세기 후반 프랑스 비평가들로부터 얼마나 많은 혹평을 받았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인상주의’라는 용어조차도 그의 작품 ‘인상, 해돋이’(1872)를 조롱하기 위해 탄생한 단어라는 것도 널리 알려져 있다.
‘인상, 해돋이’는 붉은 햇살이 물든 르아브르 항구의 아침 풍경을 담고 있다. 공장의 굴뚝, 크레인, 그리고 그 위로 피어오르는 푸른빛 연기들은 그림 전체에 몽환적인 분위기를 불어넣는다. 이 신비로움은 단지 아침 안개의 효과가 아니라 산업혁명 이후 유럽을 덮친 스모그를 묘사한 것이라는 연구도 있다.
모네가 이 스모그 낀 도시를 찬양한 것인지, 아니면 그 현실을 조용히 드러냄으로써 비판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하지만 나는 그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아름답지 못하다’는 이유로 비판받은 그 사실 자체가 오히려 산업화를 비판하는 방식이었다고 생각한다. 편리함과 번영을 가져온 산업화는 동시에 자연을 훼손시켰고 모네는 그 양가적인 현실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그래서였는지 당대의 비평가들은 그들 눈에는 너무도 현실적이어서, 아름답지 않은 모네의 그림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다시 네팔로 돌아오면 그곳 화가들이 그려내는 히말라야 역시 카트만두에서는 볼 수 없는 설산이다. 그리고 카트만두 사람들 역시 실제 히말라야가 특정 장소에 가지 않는 한 선명하게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광객이 바라는 것은, 매연과 먼지로 흐려진 현실의 카트만두가 아니라 그림 속 맑고 웅장한 설산이다. 결국 우리는 본능적으로 ‘편리함’보다는 ‘자연 그대로의 원형’을 더 사랑하는 존재가 아닐까.
사실 서구 사회는 이미 개발로 자연을 훼손하고 난 뒤 이제는 ‘환경보호’를 이야기하며 개발이 필요한 나라들에 제약을 건다. 네팔처럼 아직 삶의 기반을 다져야 하는 나라에게는 억울한 일일 수도 있다. 예술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지만 그 모순을 드러내고 질문을 던질 수는 있다. 언뜻 보기엔 예술과 환경은 멀리 떨어진 영역처럼 보일 수 있지만 예술은 언제나 현실 세계를 반영하고 재현한다. 그리고 지속 가능한 예술을 고민하기 위해서라도 인간과 자연, 그리고 환경보호는 결코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는 주제임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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