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끌리는 아름다움을 향해, 오황택 이함캠퍼스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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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끌리는 아름다움을 향해, 오황택 이함캠퍼스 관장

더 네이버 2025-04-09 01:48:35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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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 포스터 학파의 특징을 10가지 키워드로 정리한 2관 전경.

경기도 양평 남한강변에 자리한 이함캠퍼스가 개관전 <사일로랩 앰비언스>, 20세기 디자인 가구 기획전 <사물의 시차>에 이어 세 번째 전시 <침묵, 그 고요한 외침_폴란드 포스터>를 6월 22일까지 개최한다. 디자인 전문 미술관 이함캠퍼스는 탄생 과정부터 흥미롭다. 이함캠퍼스의 근간은 청년을 위한 인문 예술 교육기관 건명원을 운영하는 두양문화재단이다. 재단의 오황택 이사장은 단추 및 의류 부자재를 생산하는 기업 두양보타니의 설립자이자 대표이기도 하다. 굴지의 사업가는 1998년 약 3만3,057m2(약 1만 평) 대지에 미술관 및 복합문화공간을 지었고, 24년이 흐른 2022년 이함캠퍼스를 개관했다. 일반 미술관과 달리 이함캠퍼스는 오황택 이사장의 소장품만으로 전시를 기획한다. 사업가이자 문화재단 이사장, 디자인 및 아트 컬렉터, 미술관 관장 등 하나 얻기도 어려운 각종 수식어를 보유한 그는 미술시장의 유행이나 타인의 평가에 귀 기울이기보다 자신의 눈에 아름다운 것을 모으고 전시하며 관람객과 나눈다. 


이번 전시의 폴란드 포스터 역시 오황택 이사장의 컬렉션이다. 유럽에서 디자인 가구를 찾아다니던 중 우연히 1950년대 폴란드 포스터에 매료된 그는 포스터가 보관된 캐비닛을 통째로 구매하기에 이르렀고, 그 컬렉션은 8,000여 장에 달한다. 1950~60년대 폴란드에서 탄생한 일군의 디자인 포스터는 설명적인 기존 포스터와 달랐다. 함축의 미학에 입각해 은유적으로 주제를 표현한 디자인 사조는 ‘폴란드 포스터 학파’라는 이름을 얻었다. <침묵, 그 고요한 외침_폴란드 포스터> 전시는 월간 <디자인> 편집장을 지낸 김신 디자인 칼럼니스트의 기획 아래 선별한 포스터 200여 점을 소개한다. 


전시는 총 6개 챕터로 구성된다. 1관에서는 오페라 <보체크>, 영화 <선셋 대로>, 지미 헨드릭스 공연 포스터 등 대표 작품과 함께 포스터 학파를 개괄하고, 2관에서는 주요 특징을 10가지 키워드로 정리해 선보인다. 3관은 대표 디자이너 10인의 작품, 4관은 포스터 초안에 해당하는 에스키스 원본을 모았다. 5관에는 폴란드 디자인 학파 이후 현대에 이르는 포스터를, 바르샤바 거리를 재현한 6관에는 20세기 폴란드에서 볼 법한 포스터를 전시했다. 


일찍이 너른 부지에 미술관을 짓고 20년 이상 개관을 준비한 오황택 이사장은 무궁무진한 컬렉션을 보여주려는 의욕을 내비쳤다. 진정 마음에 닿는 작품을 만나기까지, 미술관에 내걸 컬렉션을 채우기까지 기다림을 지속해온 그는 지금 전시작을 통해 반짝, 영감을 얻을 관객을 기다리고 있다. 

(왼쪽)4관에는 빅토르 고르카의 포스터와 소장 가구를 함께 전시했다. (오른쪽)오황택 두양문화재단 이사장.

1980년대 일본 출장 중 호텔에서 잘 포장된 모찌 상자를 보고 감탄했다고요. 이 같은 발견이 어떻게 디자인과 미술에 대한 관심으로 연결되었나요?
일본에서 본 모찌 상자는 당시 우리나라 형편으로 과하게 포장되어 있었어요. 왜 이렇게 낭비했을까 생각하면 소비자가 원하니 생산자도 예민하게 디자인을 신경 썼을 거예요. 그러니 좋은 상품이 나오려면 소비자의 안목이 높아지는 게 중요하다 싶었죠. 장사한 지 4~5년쯤부터였을까요. 골치 아프다 싶으면 인사동으로 갔어요. 그때는 미술을 알지도 못했는데, 화랑에 가서 구경하다 보면 세상 밖으로 나온 것 같고 마음이 편안했어요. 아름다운 걸 보면 기분이 좋잖아요. 그런 감상을 느끼며 자연스럽게 예술에 접근한 거죠. 


미술관을 짓겠다는 결정은 어떻게 이뤄졌나요?
안목이 높아지려면 좋은 디자인을 많이 봐야 해요. 이함캠퍼스는 아름다운 걸 감상할 기회를 주기 위해 세운 곳이에요. 초반에는 고미술이나 현대 작품 등 다양하게 수집했어요. 그런데 대형 미술관에 가보니 고가의 작품들이 가득한 거죠. 한국에 좋은 미술관이 많은데 개인이 수집해봐야 얼마나 하겠어요. 그러다 유럽에서 빈티지 가구를 발견하면서 ‘이 길이 내 길이구나’ 싶어 미술관의 방향을 잡았어요. 그전에 모은 건 소용이 없게 됐어요.

당대 바르샤바 거리 풍경을 재현한 6관.

이함캠퍼스는 도심과 떨어진 남한강변에 위치합니다. 어쩌다 이 부지를 발견했나요?
우연이죠. 사업하다 샘플을 구하면 검토하기 위해 다른 도시에 며칠 머무르며 다음 시즌을 준비해요. 그렇게 강원도를 오가는 길에 강변의 커피집을 발견했어요. 강 바로 옆에 있으니 독특하더라고요. 처음에는 미술관 생각은 못 하고 카페를 준비했어요. 엉터리 장식품을 두는 카페와 달리 제대로 된 조각품을 놓고 싶어서 오리지널 작품을 구하기 시작했죠. 미술관 정원에 있는 조각이 그때 산 것 중 하나예요. 그러다 이 부지를 발견하고 건축 허가를 받으려는데, 미술관을 낼 수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렇게 했죠. 처음에는 약 1만1,570m2(약 3500평)였는데 주변 부지를 더 확보해 약 3만3,057m2가 됐어요. 허용하는 한도에서 최대 규모로 지은 거예요. 법이 언제 바뀔지 모르잖아요. 허가가 났으니 제대로 욕심 내봤어요. 뒷감당이 된다면 클수록 좋죠. 저는 미술 전공도 아니고 무모했어요. 지금도 공부는 별로 안 해요. 예쁘다고만 생각하지 누가 만들었고 가격이 얼마고 이런 건 관심 없어요. 누구는 뭐 저런 걸 전시하냐 하겠지만, 누군가는 자극을 받겠죠. 피카소 같은 세계적인 작가 작품만 미술이 아니고 내가 만족하는 꽃 그림을 옆에 두는 걸로 충분한 거예요. 지금도 미술관 수준이 높은지 낮은지 관심이 없어요. 왜냐하면 전시를 보고 영향받는 사람이 있으면 되니까.  

1998년 건축 당시 김개천 건축가에게 노출 콘크리트 건물을 요청했다고요.
안도 다다오 건축을 좋아했어요. 노출 콘크리트를 보고 사람들이 짓다 말았냐고 할 때였어요. 미니멀리즘을 좋아해요. 그리고 미술관이 미래에도 유지돼야 하는데 30~40년 뒤에는 옛날 것처럼 보일까 두려웠죠. 최신 트렌드로 짓고 싶어서 건축가에게 다음 시대 트렌드가 뭐냐고 물었어요. 건축가가 유리라고 답하더라고요. 지금 생각해보니 유리로 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 당시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들었어요. 건축가의 예언이 맞았던 거예요.

1관에는 폴란드 포스터 학파를 설명하는 대표작을 모았다. 차례로 영화 <선셋 대로>와 지미 헨드릭스 포스터.


완공 후 개관까지 20년 넘게 걸렸어요. 이토록 오랜 시간이 소요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꾸준히 수집하며 준비했지만, 이 정도 수집품으로는 일반인에게 영향을 못 주겠더라고요. 자꾸 주저하면서 미룬 거죠. 그러다 괜찮겠다는 순간이 찾아왔어요. 이 작품들에서 충분히 아름다움을 느끼니 다른 사람에게도 자극을 줄 수 있겠다, 레퍼런스가 될 수 있겠다 생각했죠. 


큰 건물을 20년 이상 두었는데 어려움은 없었나요?
그냥 방치했어요. 항상 머리를 떠나지는 않았죠. 언젠가 개관해야지, 생각하며 빨리 노후가 오길 바랐어요. 이걸 즐기고 싶어서. 골치 아픈 건 오버하니까 골치 아픈 거예요. 내 수준을 인정하고 그만큼만 하면 즐거운 거죠. 신문 인터뷰를 처음 할 때도 걱정이 컸어요. 그런데 몇 번 하다 보니 그냥 내 모습을 보여주면 되겠더라고요. 거룩한 말을 하면 물론 다른 사람 보기에 그럴싸하겠죠. 하지만 내 말이 아닌걸요. 그러니 이제 인터뷰를 두려워하지 않아요. 마찬가지로 전시도 내 취향에 공감해주는 관객이 있으면 만족하는 거죠. 가장 이상하게 들리는 말이 ‘그림 사려는데 골라주세요’예요. 좋아서 사는 작품을 남에게 골라달라는 게 이상하게 들렸어요. 그러다 보니 갤러리 화상들이 나한테 독립군이라는 별명을 붙여줬어요. 보통 유명한 작가를 권하면 그 말을 듣는데, 저는 유명 작가라도 어떤 건 좋고 어떤 건 나쁜 거예요. 예를 들어 미술 전공자들이 샤를로트 페리앙 가구를 사라고 권해요. 하지만 비블리오테크 선반만 좋아하지 나머지는 아니거든요. 유명하다는 건 나한테 전혀 영향을 못 줘요.

본래 남의 말이나 시선에 영향을 받지 않는 성향인가요?
저는 러닝셔츠도 뒤집히면 그냥 입어요. 라벨이나 봉제선이 살에 닿으면 불편한데 반듯하게 입어야 한다는 근거가 없잖아요. 건명원에서 인사말을 할 때도 학생들에게 이 시대의 반역자가 되라고 했어요. 거창한 의미가 아니라 시대가 계속 변하니까요. 오래 살다 보니 20년 전에 합당했던 가치가 지금은 그렇지 않잖아요. 옛날 것만 고집하면 바보 되는 거지.

(왼쪽)인더스트리얼 가구와 디자인 가구 수집품을 모아둔 수장고. (오른쪽)1층 통로를 1950년대 바르샤바 기차역처럼 꾸몄다.


작품을 고를 때는 직감을 따르나요?
주로 기특하다는 표현을 써요. 독특하다는 뜻이죠. 첫눈에 기특하면 많은 정보 필요 없이 그냥 사요. 작품을 같이 보러 다니는 사람들이 말하길 독특하게 컬렉팅을 한대요. 10만원짜리도 사고, 1,000만원 작품도 보고 왔다 갔다 하는 거예요. 그런데 고가든 저가든 똑같은 기쁨으로 사요. 기쁨 그리고 나중에 전시해야겠다는 생각. 내가 어디로 튈지 나도 몰라요. 포스터도 그랬으니까. 갑자기 꽂혀서 폴란드에 계속 갔어요.


1950년대 폴란드 디자인 학파 포스터만 8,000장가량 모았다고요. 이 시기에 끌린 이유는 무엇인가요?
수집하다 보니 이후 시대는 마음에 안 들고 1950년대 사회주의 체제 아래 포스터가 가장 와닿더라고요. 유니크하다는 점에서 끌렸을 거예요. 예를 들어 사회주의 프로파간다 포스터는 중국이나 소련, 북한에도 있어요. 그런데 비슷비슷하니 수집할 생각이 안 들어요. 그런데 폴란드 포스터는 다르거든요. 


최근에는 어떤 품목에 관심을 두고 있나요?
가장 중요한 건 유니크한 것이에요. 이번 전시 다음에는 작년 세상을 떠난 가에타노 페세의 가구 전시를 열 예정이에요. 그의 작품은 제 취향과는 정말 거리가 멀어요. 컬러풀하고 형태도 변형적이죠. 미니멀리즘과는 정반대예요. 그런데 작품 하나를 본 순간 ‘이렇게도 가구가 되네?’ 싶어 하나 샀어요. 그러다 페세의 책을 한 권 읽었어요. 이 사람이야말로 실험적인 예술가더라고요. 미술 작품도 컬러풀하면 관심이 없었는데, 김종학 작가 작품을 보고서 컬러도 예쁠 수 있다고 느꼈어요. 취향이 어떻게 변할지 몰라요. 

오황택 이사장이 아끼는 빅토르 고르카의 에스키스와 포스터를 전시한 4관.


좋은 작품을 찾아다니는 에너지가 여전하네요.
달라진 점은 예전에는 단순히 ‘좋다’, ‘갖고 싶다’, ‘옆에 두고 보고 싶다’는 마음이었다면, 요즘은 ‘전시해도 될까?’ 고민하며 거르는 과정이 있어요. 처음보다는 순수성이 아주 조금 떨어집니다(웃음). 점점 더 좋은 걸 구해서 국내에 보여줘야겠다는 욕심이 생겨요. 젊은 학생들은 작품을 책에서만 보는데 사진과 실물은 완전히 다르거든요. 사과가 떨어지는 걸 보고 아무나 만유인력을 발견할 수 없어요. 관심을 갖고 있어야 발견할 수 있잖아요. 그런 역할을 하고 싶은 거예요. 눈이 번쩍 뜨이는 자극받을 기회를 제공하는 거죠. 


다음 세대에게 기회를 주고 싶다는 책임감이나 사명감이 느껴져요.
사실 돈 없으면 못 하는 일이에요. 돈으로 갖고 있을 것이냐, 소장품을 전시할 것이냐의 선택이거든요. 항상 생각하는 게 간송 전형필 선생이에요. 재산을 털어서 문화재를 사온 덕에 간송미술관이 남아 있잖아요. 그런 규모까지는 어렵더라도 내게는 중요한 레퍼런스예요. 젊었을 때 일기장에 쓴 내용이 있어요. 내 뒷주머니에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5,000원이 어떤 사람에게는 아이스크림값이 되고 어떤 사람에게는 한 달 점심값이 돼요. 만약 돈에 의지가 있다면 어떻게 쓰이고 싶겠어요. 아이스크림값으로 없어지는 걸 원치 않을 것 같아요. 돈에 대한 예의랄까. 그렇다고 내가 먹을 걸 줄이지는 않아요. 그 이상 남는 걸 쓸 뿐이지. 우선 작품을 보고 수집하는 게 즐겁고, 이 일이 심지어 다른 사람에게 좋은 영향까지 준단 말이죠. 그럼 기꺼이 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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