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어코리아=김관수 기자] 2025년 3월 23일, 의성에서 발생한 산불은 강한 바람을 타고 안동으로 넘어갔다. 그리고 무려 약 한 주 동안 경북의 산천을 검게 태워버렸고, 악마 같은 화마에 ‘안동(安東)’은 더 이상 ‘편안한 동쪽 고을’이 아닌 것 같았다.
화염이 할퀴고 간 자리 잿더미가 되어 버린 것은 비단 누군가의 삶을 지탱하던 보금자리와 일터만이 아니었다. 그 모습을 멀찍이 서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더 까맣게 타버렸다. 이토록 깊고 깊은 상처를 보듬어줄 천하의 명약이 지금 안동에 필요한 때다.
안동은 한국인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안착하고 있는 DNA를 지금까지 가장 잘 보존하고 있는 도시로 인정받아왔다. 찬찬히 안동의 속살을 들여다보면 피보다 진한 유림의 혼백들이 남아 여전히 안동의 땅과 하늘을 지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오늘날 안동이 주목 받을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어지러운 세상에 휘둘림 없이 꼿꼿하게 천년 대계를 이어온 선비의 강직함 때문은 아닐까. 지금 우리가 안동을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로 부를 수 있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안동은 사극 속 장면이나 국사 교과서에 나오는 인물과 장소 그리고 그 공간 속에 머물던 옛 풍경과 이야기들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이름난 고을이다. 전 세계가 인정하고 감탄하는 유·무형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사랑과 열정 가득한 공존의 정신, 낙동강과 함께 어우러진 유려한 자연, 그 자연을 벗 삼은 가객들의 놀이와 풍류, 각자의 멋과 방식으로 수 백 년 집성촌을 이루고 살아온 전통마을들, ‘봉제사접빈객(奉祭祀接賓客)’을 통해 축적되어 온 독특하고 넉넉한 미식 세계 등 선조들의 고유한 삶을 후세에 전하는, 역사의 메신저로 활동하는 매우 드물고 귀한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땅이다.
재앙 같았던 149시간, 수백 년 지켜온 그 모든 유산들과 그 사람들마저 사라질 것 같은 두려움이 안동과 대한민국을 덮쳤다. 의성에서 넘어온 강력한 산불은 순식간에 안동 남동쪽 길안을 덮치고 임하, 임동, 남선을 향해 빠르게 북상했다.
길안에서만 주택 267동, 농축산시설 약 513동, 가축 57,046마리, 천지생태공원과 계명산 자연휴양림의 피해가 신고 됐고, 천년 고찰 용담사 무량전, 요사채, 금정암 화엄강당, 약계정, 만휴정 원림 등의 국가유산들이 소실됐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은 안동 남동쪽을 대표하는 명소 만휴정이 방염포 덕에 그 원형을 지켰다는 사실 하나 뿐이었다.
임하면과 임동면에서는 질식사로 사망하거나 실종되고, 대피 중 화상을 당하는 등 총 7명의 인명피해까지 발생하고 말았다. 임동에서는 한국 최초의 예술창작마을 ‘지례예술촌’으로 잘 알려진 지촌종택과 지산서당이 안타깝게 전소됐고, 72동의 주택과 농축산시설 약 196동도 피해를 입었다.
시내권과 맞닿아 있는 임하의 상황은 보다 더 심각했다. 송석재사, 국탄댁, 백운정 및 개호송 숲 등의 문화재 소실이 생겼고, 3대에 걸쳐 110여년 전통방식으로 술을 빚어온 임하양조장도 한 줌의 재로 쓸쓸하게 사라졌다. 또한, 한국자원재생환경공단 등 여러 복지시설 등의 피해도 다수 발생했고, 총 313동의 주택 피해, 총 717동의 농축산시설의 피해가 집계 됐다.
이미 엄청난 손실이지만, 마을을 지키기 위해 밤새 고군분투했던 사람들이 없었다면 그 피해는 상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어마어마하게 불어났을 일이다. 임하면 금소마을의 안동포짜기마을보존회 임방호 회장의 회상을 통해 그 사실을 어렴풋이나마 짐작할 수 있다.
“시간이 흘러 그때 긴박했던 순간들을 돌이켜 보니 한숨만 나오네요. 25일 마을 방송에 이장님의 다급한 목소리가 퍼졌어요. 앞산까지 불이 왔으니 주민들은 안동 초등학교로 대피를 바란다는.
급한 마음에 반려견 코코를 데리고 와이프랑 차에 올라탔어요. 안동포짜기 전수교육관 앞에서 차마 이대로 떠날 수가 없어서 금소주유소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으면 상황보고 따라간다고 말하고 가족과 헤어졌습니다. 마을 앞 우회도로에 올라서 보니 순식간에 마을 뒷산으로 몇 군데 불똥이 떨어지고 연기가 나기 시작했어요.
지난 2년 우리 스텝과 주민들이 일구어 놓은 마을을 그냥 잿더미에 넘겨 버릴 수가 없어서 마을 안으로 뛰어 들어간 시간이 오후 5시 30분입니다. 아직 해가 지기 전인데도 캄캄하게 어두워진 상황. 직접적인 불과의 싸움은 장비와 인력 부족으로 대항할 엄두가 나질 않았어요. 그때 마침 우리 마을에 피해가 없도록 함께 해준 동료 한 사람을 만난 것이 눈물 나도록 고마웠습니다. 넘어지고 구르면서 둘이서 방어선 구축을 했지요. 사투를 벌이다가 보니 밤 9시 30분이 지나고 있었습니다.
다시 돌아온 이장님과 몇 분의 마을 주민들과 잔불 정리를 하고 나니 새벽 2시 30분이었어요. 스쿠터를 타고 마을을 점검하니 메케한 연기와 이곳저곳 폭삭 내려앉은 집들이 보여 숨이 확 막힐 지경이었습니다. 목이 막히고 눈물이 앞을 가리지만 그나마 우리가 화마와 싸워 이 정도로 마을을 지킨 것에 위안이 됩니다.”
임 회장과 금소마을 주민들의 살신성인이 없었다면 경상북도 무형유산 제1호이자 국가무형문화재 제140호 안동포짜기 역시 더 이상 명맥을 이어갈 수 없는, 아찔한 상황에 처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안동에서는 다행스럽게도 화마를 피한 하회마을이 위치한 풍천면, 일직면, 남후면, 남선면, 임하면, 임동면, 길안면까지 총 7개면 약 9,896ha에서 피해가 발생했다. 총 7명의 인명피해, 총 1,239동의 주택 피해, 총 3,234동의 농축산시설 피해, 총 196,788마리의 가축 피해, 총 11개소의 국가유산(문화재) 피해, 총 10개소의 복지시설 및 기타시설이 피해를 입었다. 이는 단순히 물리적인 숫자로 그 정도를 재단할 일이 아니다. 안동시민들의 마음의 고향이 사라졌고, 안동이 꿈꾸던 미래, 즉 안동에 더 많은 사람이 찾아오고 세계 속으로 한 걸음 더 진출하길 바라던 당찬 포부에 커다란 금이 간 사건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안동 사람들은 다시 또 일어나서 새로운 안동을 만들어나갈 것이라 믿는다. 옛 안동 선비들의 강직함, 금소마을 주민들의 용기와 헌신과 같은, 현 시대 전 세계가 그토록 부러워하는 ‘K-정신’의 구심점을 이루고 있는 안동 사람들이 그들의 선조들이 수없이 그러했듯 다시 꼿꼿하게 안동을 지키고 세계 속의 안동으로 성장시켜나가길 기원한다.
그렇기에 지금부터 다시 시작될 안동여행은, 그 감격스러운 모습 하나하나를 살펴보고 함께 일구어 가는 과정이라고 말하고 싶다. 안동과 경북의 빠른 쾌유를 바라는 마음, 지금 당신의 여행계획에 가득 실어주시길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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