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백향의 책읽어주는 선생님'
황폐한 그녀, 실비아의 삶에 그가 들어왔다. 기억을 잃어가고 있는 사울이다. 과거의 기억 때문에 극도의 긴장감 속에서 불안을 견디고 사는 실비아는 브루클린의 타이어 가게 위층에서 어린 딸을 키우며 산다. 돌봄센터에서 불편한 이들을 돕는 일을 하며, 저녁에는 알콜중독자 모임에 나간다.
텅빈 눈빛의 제시카 차스테인의 쓸쓸함은 영화 전체를 지배한다. 그런 그녀가 웃을 때 너무 좋았다. 그녀를 안아줄 수 있는 사울은 물론 딸과 동생이 있는 것도. 두 사람을 연결하는 노래, 영화가 끝나고 이어지던 영국 밴드 프로콜 하럼의 ‘A Whiter Shade of Pale’은 당분간 계속 들을 음악이다
영화는 몹시 미니멀한 느낌을 주지만 다수의 인물들이 출연하고, 그들 모두의 캐릭터가 살아 움직이면서 화면 속 사회를 구성하고 있다. 그들이 가진 삶의 고난은 고스란히 화면 밖으로 튀어 나온다. 예를 들면 실비아의 비정한 엄마는 딸의 인생을 얼마나 망친건지, 현재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건지. 짧은 컷으로도 인물이 설명된다. 아마도 그렇게 캐릭터로 서사를 탄탄하게 구성한 연출이겠다.
이 황페한 영화에서 단 한줄기 아름다운 장면은 엄마와 딸이 마주 보고 웃는 장면, 동생이 언니 편을 드는 장면, 잃어가는 기억 속에서 실비아를 찾아온 사울과 키스하는 장면이겠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들이 다시 만나 따뜻하게 안는 장면.
그 사이에 오가는 예측불가의 스토리들은 몹시 불안하고, 경직되고, 아프고, 긴장감을 유발한다. 실비아는 과거의 기억이 너무나 선명한 것 같지만 뒤엉켜 있고 현재를 발목 잡혔다. 사울은 기억들이 자꾸 사라져 삶 자체가 혼돈에 빠진 치매 환자다. 기본적으로 불안한 두 사람은 묘하게도 서로의 불안을 감싸안을 수 있는 존재로 발전한다. 서로 만나면서 스스로 자신의 변화를 얻게 된 것. 서로에게 의미있는 존재가 된 것이다.
미셸 프랑코 감독의 <뉴오더2021> 를 보고 현실의 공포에 너무 많이 놀라고, <썬다운2022> 를 보고는 실존에 대한 여운이 오래 남았는데 이 영화 역시 새롭다. 사랑을 새로운 방식으로 보여주려고 한 것 같다. 썬다운2022> 뉴오더2021>
어떤 피폐한 상황에서도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다는 것, 다정한 이해를 품을 수 있는 존재가 가능하다는 사랑 이야기에 번쩍 번개 맞은 기분이다. 삶의 구원은 이렇게 멋지게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이다. 비록 상식의 범위를 넘어섰다 할지라도, 얼마나 아름다운지 감독과 배우들이 보여줬다. 끝내 살아가야 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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