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은 힘이 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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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은 힘이 셉니다

독서신문 2025-04-04 06:00:00 신고

책을 읽는다. 마음에 와닿은 구절에 밑줄을 좍좍 긋는다. 노트를 펼쳐 옮겨 적는다. 또는, 블로그에, 인스타그램에, 스레드에. 그렇게 공공연하게 기록된 문장들은 때로 바람을 타고 훅 멀리까지 간다. 예컨대 시대를 건너서. 90년대 작품활동을 하던 당시 평단으로부터 ‘개인의 내면에만 천착한다’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 소설가 전경린. 지금 동시대 여성들은 그의 소설 속 문장에 공감한다. SNS상 회자된 문장들 덕분에 소설 『엄마의 집』은 최근 18년 만에 새로운 옷을 입고 복간됐다.

『자기만의 집』이라는 제목으로 복간된 전경린 작가의 소설 속 문장 [사진=다산책방]

출판사들은 책을 홍보할 때 자주 문장의 힘을 빌린다. 사람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또는 마음에 확 꽂히는 문장들을 골라 카드뉴스로 만들거나, 하루에 한 구절씩 만나볼 수 있게 일력과 같은 상품으로 제작한다. 애초에 많은 책의 앞, 뒤표지에는 독자의 눈길을 사로잡는 책 속 한 줄이 시처럼 적혀있기도 한다. 동네서점 같은 경우, 책방지기가 독자의 선택을 돕기 위해 선별한 문장과 간단한 추천 이유 등을 메모지로 붙여 큐레이션하는 사례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최근 민음사는 북클럽 회원을 모집하며 독자가 마음에 와닿는 몇 개의 문장을 선택하면 관련 책을 추천해 주는 방식을 도입하기도 했다.

어떤 글쓰기 책에서였던가. ‘글은 문장으로 직조된다’와 같은 의미의 문장을 본 적이 있다. 그 직후 데버라 리비의 『알고 싶지 않은 것들』을 읽고 작품 속 ‘빌리보이’가 날아가는 장면에서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여실히 깨닫게 된 때가 있었다. 문장으로 구축한 그 장면이 너무 생생하고 아름다워서, 여기저기 몇 줄을 통째로 옮겨 적었더랬다.

문장을 왜 모으냐 묻는다면

내가 좋아하는 문장이 곧 나의 성향과 세계관을 설명한다. 나의 정체성이 어떤 문장들로 대변된다. 어떤 문장에 끌리는가를 통해 취향을 깨닫게 되기도 한다. 연예부 기자로 일하는 한 소설가 지망생은 “문장을 수집하다 보면 ‘아, 이 작가 문장 좋은데?’ 하고 저자의 다른 책을 찾아 읽는 경우도 생긴다. 또, 나중에 이런 문장을 쓰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기록하기도 한다”라고 말했다. 잡지사 출판부에 근무하는 한 편집자는 “책을 읽기만 하고 덮어버리면 남는 게 없는 것 같다. 읽으면서 느낀 감정이나 울림을 다시 곱씹어볼 수 있어서 기록한다”라며 문장을 모으는 이유를 설명했다. 실제로 한 문장 수집가는 “기록하면 기억에 더 잘 남는다. 친구를 위로하거나 어떤 조언을 건넬 때 문득문득 떠오를 때가 있다”라는 경험을 공유했다.

작가들도 문장을 수집한다. 각자의 취향과 방식에 알맞게 모아진 기존의 문장은 글감이 되어 또 다른 문장으로 재탄생한다. 『에디토리얼 씽킹』의 저자이자 20년 차 에디터인 최혜진 작가는 자신이 10년 넘게 해온 독서 기록 방식을 공유했다. 하나의 워드 파일에 기억하고 싶은 문장들과 책 정보를 모조리 기록하는 것. 그 파일은 ctrl+F만 누르면 금을 캘 수 있는 금광이 됐다. “어떤 소재로 글을 청탁받아도, 그 안에 나의 글로 확장할 수 있는 글감이 다 있다. 예를 들어 ‘일요일’을 검색하면 그 단어를 품은, 내가 기록한 모든 문장을 살펴볼 수 있다”라고 말하며 그는 여유롭게 웃어 보였다.

전경린(왼쪽), 천선란 소설가 [사진=유튜브 '요즘 것들의 사생활' 갈무리]

『천 개의 파랑』, 『모우어』 등을 쓴 천선란 소설가는 한 영상에서 “요즘 사람들에게서 느껴지는 가장 큰 게 ‘지침’”이라며 쉴 새 없는 세상의 변화에 지친 사람들이 “내면에 나를 쌓는 느낌”, “내 마음을 꿰뚫는 단 하나의 문장이 다 나를 설명할 것 같은” 마음으로 문장에 기대는 것 같다고 추측했다(지금 삶에 지쳐있는 2030에게 (with 전경린 x 천선란 소설가)). 외부 세계의 자극에 무방비하게 노출된 우리가 쉽게 무너지지 않게 튼튼한 마음의 기둥을 세우고 있는 것.

문장은 공감과 연대의 끈이 되어주기도 한다. 지난달 25일에는 한강 작가를 비롯한 국내 문인들이 한 줄의 문장으로 자신의 입장을 표명한 일이 있었다. “나는 보았고 너는 들었고 우리는 알았다. 진실의 뿔을 갈아 너희의 어둠을 찢으리.”(김현 시인) “자명한 것을 자명하게 하라 (…) 우리는 어둠의 노래가 아니라 빛의 노래를 부를 것이다.”(강계숙 문학평론가) “어린이들에게 마음껏 읽고, 쓰고, 생각할 수 있는 미래를 선물하고 싶습니다.”(강인송 어린이·청소년 문학가) … 문장은 힘이 세다.

[독서신문 이자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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