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석의 시금석-오늘의 정책 이슈에서 내일의 황금을 캡니다.]
한국은행의 ‘프로젝트 한강’과 관련 “CBDC의 도입은 국가의 통제력이 강화되고, 개인의 재정적 자율성이 축소될 위험이 있다”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사진은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달 25일 통화정책방향 간담회에서 질문을 받는 모습. /사진=뉴스1(공동취재단)
“여전히 존재하는 현금 수요, 경쟁적 지급서비스 시장, 높은 금융포용 수준 등을 고려할 때 한국은 가까운 시일 내에 OOOO를 발행할 필요성은 크지 않으나 대내외 여건이 크게 변화할 경우, 이에 신속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 아래 파일럿 테스트를 진행하게 됐다.”
2020년 4월 6일, 우리나라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이 예비시험에 나서게 됐다는 OOOO는 바로 ‘CBDC’입니다. 영어 ‘Central Bank Digital Currency’의 약자로, 우리말로는 ‘중앙은행 디지털화폐’입니다. 당시 CBDC에 미온적이던 한은이 이 같은 결정을 한 데는 “미국, 일본 등도 관련 연구를 강화하겠다는 입장으로 선회했다”라는 것입니다.
그로부터 5년 만인 오는 1일, 한은이 디지털화폐 테스트 ‘프로젝트 한강’을 6월 말까지 실시합니다. 앞서 실험에 참여하는 7개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IBK기업·BNK부산)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지난 25일부터 참가 신청이 시작됐습니다. 참가 인원은 국민·신한·하나·우리·농협은행 각 1만6000명, 기업·부산은행 8000명씩 선착순입니다.
이번 프로젝트 한강 참여자들은 본인의 은행 계좌에 넣어둔 현금을 CBDC 기반 ‘예금토큰’으로 바꾼 뒤, 전용 QR코드로 편의점과 카페·서점·마트·온라인 쇼핑 등 2만여 가맹점에서 결제할 수 있습니다. 스마트폰으로 QR코드를 띄워 결제하는 점에서는 각종 ‘페이’를 통해 결제하는 방식과 비슷합니다.
주요 사용처 중 오프라인 상점은 ▲교보문고 ▲세븐일레븐 ▲이디야커피 ▲농협 하나로마트, 온라인 쇼핑몰은 ▲현대홈쇼핑 ▲모드하우스 ▲땡겨요가 있습니다. 실험 기간 중 예금토큰 보유 한도는 100만원, 총 변환 한도는 500만원입니다. 실험이 끝나면 이용자들이 보유한 예금토큰 잔액은 본인의 수시입출식 예금계좌로 일괄 입금됩니다.
한국은행 디지털화폐 테스트 ‘프로젝트 한강’(영상) /자료=한국은행
이번에 발행하는 디지털화폐는 은행 등 금융기관에만 유통되며, 개인은 은행이 발행한 예금토큰을 사용할 뿐 직접 보유할 수 없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CBDC와는 다릅니다. 다만, 분산원장 기술을 활용해 정산 대금 즉시 지급 및 수수료 절감이 가능합니다. 한은이 디지털화폐 결제 관련 인프라 테스트에 나선 취지입니다.
특히 예금토큰과 연결되면서 몇 달이 지나야 받을 수 있었던 사용분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CBDC 기반 예금토큰 시스템은 기존 PG사(전자결제 대행사)나 카드사를 거치지 않아도 정산 가능하다는 점에서 카드 수수료나 자금조달 비용도 낮출 수 있습니다. 디지털화폐로 *바우처를 지급하면 일일이 해당 카드나 종이 상품권을 들고 다닐 필요도 없어집니다.
서울시의 청년·문화 바우처, 대구시의 보육 바우처, 신라대학교(부산)의 청년·소상공인 바우처 프로그램이 이번 테스트에 연계되는 이유입니다. 한은은 석 달간 첫 테스트가 종료된 후 이용자 의견을 수렴해 시스템을 개선하고, 프로그래밍 기능에 기반한 개인 간 송금, 다양한 디지털 바우처 프로그램 등 추가 활용 사례를 발굴할 계획입니다.
김동섭 한은 디지털화폐기획팀장은 “이번 테스트를 통해 실시간 대금 지급과 지급 조건 설정 등을 통한 복잡한 정산 절차 및 부정 수급 문제 등의 해결 가능성도 점검해 볼 예정”이라며 “테스트 종료 후 블록체인 원장 거래 기록 관리 테스트 등 정비기간을 거쳐서 최대한 빠르게 후속 테스트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테드 크루즈 미국 상원의원은 연준이 CBDC와 관련한 제품·서비스를 미국인에게 제공하지 못하도록 하는 ‘CBDC감시금지국가법’을 발의했다. /출처=테드 크루즈 의원 홈페이지
한편, 우리나라의 CBDC 개발 속도는 세계적으로 빠른 편에 속합니다. 2018년부터 관련 연구를 시작한 한은은 2020년 전담 조직을 신설, 프로젝트 한강에 앞서 두 차례의 모의실험과 파일럿 테스트를 마쳤습니다. 이번 실거래 테스트는 기술적 검증을 넘어 금융 인프라와 실생활 적용 가능성을 직접 확인하는 단계입니다.
글로벌 기준으로 따지면, 중국이 세계에서 가장 먼저인 2014년 CBDC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이어 디지털 위안화(e-CNY)를 여러 지역에서 대규모로 테스트하고, 상용화 직전 단계까지 다다랐습니다. 또 나이지리아, 자메이카, 바하마 등도 자국 통화를 기반으로 한 소매형 CBDC를 정식 도입했습니다.
반면, 글머리에서 언급한 것처럼 한은이 예비시험에 나서게 된 단초를 제공한 미국은 ‘정부의 감시’ 문제와 관련해 저항이 큽니다. 2016년 연방준비제도(Fed, 연준) 주도로 연구를 시작했지만, 연준이 의회 승인 없이는 CBDC를 개발할 수 없도록 저지하는
CBDC 반대론자들이 강력히 내세우는 이유는 ‘프라이버시 침해’입니다. 중앙은행이 디지털화폐를 직접 발행하고 운영할 경우, 개인의 모든 거래 기록이 실시간으로 추적될 수 있어 과도한 통제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입니다. 여기에 트럼프 2기 행정부로 접어들면서 CBDC 개발은 사실상 전면 중단 상태입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달러 패권 강화”를 외치며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 ‘USD1’을 발행하는 등 CBDC가 아닌 민간 디지털화폐에 힘을 실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지난 27일테드 크루즈 상원의원은 연준이 CBDC와 관련한 제품·서비스를 미국인에게 제공하지 못하도록 하는
‘프로젝트 한강’이 발표된 직후인 지난 24일, 국회 국민동의 청원에 실험 중단을 요구하는 글이 올라왔다. 28일 오후 9시 40분 현재 2만7816명이 동의했다. /출처=국회전자청원
우리나라에서도 프로젝트 한강 발표 직후인 지난 24일, 국회 국민동의 청원에 실험 중단을 요구하는 글이 올라왔습니다. “CBDC의 도입은 국가의 통제력이 강화되고, 개인의 재정적 자율성이 축소될 위험이 있다”라며 “신중한 접근을 요구한다”라는 것입니다. 편리성을 값어치로 새로운 지급수단으로 떠오른 CBDC, 실제 통용되기까지 치러야 할 비용은 많아 보입니다.
*궁금해요? 사전적 의미로 상품권, 할인권, 쿠폰을 뜻하는 바우처(voucher)는 특정한 금전적 가치가 있고 특정한 이유나 상품에 대해서만 소비할 수 있는 교환 거래 채권의 하나입니다. 국가가 복지 대상자에게 직접 현금이나 서비스, 물품을 제공하는 대신 정해진 이용처에서 서비스(또는 물품)로 교환할 수 있는 이용권을 제공하는 ‘국가바우처’가 대표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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