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시시스트에게 끌리는 심리적 이유
왜 나는 나르시시스트에게 끌릴까? 심리적 배경과 무의식의 작용
“부족함을 상대가 채워 줄 거야”라는 무의식적 기대
나르시시스트에게 자주 끌리는 사람들은 자주 “아, 드디어 나를 완벽하게 채워 줄 사람이 나타났구나”라는 무의식적 기대에 사로잡힌다. 사랑 폭격을 받는 순간, 과거 상처나 결핍이 순식간에 치유될 것 같은 달콤함을 느낀다.
“원래 난 이런 대접을 받아 본 적이 거의 없었는데, 이번엔 진짜야”라고 스스로 주문을 걸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이상화는 오히려 상대에게 주도권을 넘겨주고, 그 사람이 조금이라도 태도를 바꾸면 곧장 불안에 무너질 위험을 만든다.
자신을 돌보지 못하는 자기 희생적 태도
어떤 이들은 “자기보다 남을 더 챙기는 게 미덕”이라고 굳게 믿으며 살아왔다. 문제는 상대가 착취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사람이라면, 그 믿음이 악용될 수 있다는 점이다.
나르시시스트는 이런 자기희생적 태도를 포착하면, “내가 조금만 애정 표현을 하면, 이 사람은 거의 모든 걸 나에게 바치겠구나”라고 판단한다.
실제로 피해자는 갈등 상황에서조차 “이렇게까지 노력해도 모자라다면, 내가 더 희생해야지”라며 자신을 내몰 수 있다.
“권위적인 인물”을 부모처럼 여기며 인정받고 싶은 욕망
나르시시스트가 카리스마 있고 권위적인 자세를 취할 때, 누군가는 그 모습을 부모와 겹쳐 보기도 한다. 예를 들어, 자기가 어릴 때 존경하거나 무서워했던 부모가 있었다면, 나르시시스트의 강한 아우라와 권위가 마치 부모의 그림자를 떠올리게 만들 수 있다.
그러면 “내가 이 사람에게 인정받으면, 부모에게 못 받았던 사랑까지 한꺼번에 보상받는 느낌이 들지 않을까?”라는 기대가 생길 수 있다. 이런 심리는 나르시시스트에게 굉장히 유리하게 작동한다. 특히 상사나 지도자 역할을 하는 나르시시스트에게 심취하기 쉬운 패턴이 바로 여기에 해당한다.
과거 억압된 욕구가 유독 나르시시스트에게 끌리는 심리적 이유
욕구는 억압되더라도 사라지지 않는다
심리학에서 자주 강조하듯, 어린 시절 혹은 과거에 채워지지 못한 욕구는 성인이 되어서도 계속 작동한다. “사랑받고 싶다” “인정받고 싶다” “지지받고 싶다” 같은 욕구가 억압되었다고 해서 없어지는 건 아니다.
다만 ‘의식 수준’에서 잘 드러나지 않을 뿐, 마음속 깊은 곳에서 기회를 엿보고 있는 셈이다. 그러다가 누군가가 그 욕구를 한꺼번에 충족시켜 줄 것처럼 나타나면, 사람은 쉽게 마법에 걸린 듯 빠져든다.
나르시시스트는 이런 마법을 부리는 데 능숙하다. 상대를 세심하게 관찰하여 “이 사람이 어떤 칭찬에 가장 고마워하고, 어떤 부분에서 외로움을 느끼고 있나?”를 파악한 뒤, 그 지점을 공략한다.
“내가 너를 구원할게” “이제 네가 내 곁에 있으면 어떤 외로움도 없을 거야”라는 식의 메시지로 강한 희망을 불어넣는다. 억압되어 있던 욕구가 폭발하듯 표면으로 올라오고, 피해자는 마치 횡재한 기분을 느낀다.
“결핍을 채우려는 마음”이 관계에서 취약점을 만든다
사람이 누구나 결핍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자체는 잘못이 아니다. 문제는 그 결핍을 상대방 한 사람에게 전부 해결받으려 할 때 생긴다. 나르시시스트가 “네가 원하는 전부를 내가 주겠다”고 약속한다면, 즉시 의심해 봐야 한다.
현실적으로 그런 완벽한 보상은 존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극적인 장면과 감동을 통해, 피해자는 “드디어 내 결핍이 사라질 거야!”라는 기대를 품는다. 그러니 미리 경계심을 발휘하기 어려워진다.
또 한 가지, 결핍이 지나치게 크면, 사람은 상대가 보여 주는 작은 행복만으로도 깊은 신뢰를 보내며, 스스로 경계 장치를 해제한다. 예를 들어, “어릴 때 한 번도 생일 파티를 못 해 봤는데, 이번에 이 사람이 내 생일을 성대하게 축하해 줬어! 이제 평생 이 사람만 믿고 가면 되겠지?”라는 식의 반응이 일어날 수 있다.
그러다 곧 “그 사람이 나를 서운하게 만들었다”고 해도, “이 정도 서운함은 감수해야지. 그래도 생일 파티 같은 특별한 경험을 줬잖아”라며 스스로를 합리화한다.
사례: “왜 하필 나였을까?”에 대한 대답
B 씨의 사례
B 씨(가명)는 20대 후반. 늘 누군가가 자신에게 매혹적인 제안을 해 주길 기다려 왔다. “평범한 사랑은 별로고, 한 번쯤 불꽃같은 로맨스를 경험하고 싶다”는 바람이 강했다.
친구들은 “그런 로맨스는 드라마 속 얘기지, 현실은 달라”라며 조언했지만, B 씨는 “언젠가 나에게 헌신적으로 애정 표현할 운명의 상대가 나타날 거야”라고 낭만적 기대를 놓지 않았다.
어느 날 B 씨는 아주 적극적인 구애를 해 오는 상대를 만났다. 처음부터 꽃바구니를 보내고, 감동적인 메시지를 수시로 보냈다. 심지어 “네가 세상에서 가장 눈부신 사람이야”라는 극단적 찬사를 매일같이 전했다.
B 씨는 “진짜 이런 사랑이 나에게도 찾아왔어!”라고 들떴고, 주변의 걱정도 듣지 않았다. “이 사람이 너무 빠른 속도로 감정을 표현하는 것 같아. 혹시 조심하는 게 좋지 않을까?”라는 주변 충고도 무시했다. 결국 B 씨는 두 달 만에 함께 살자는 말을 수락하고, 본격적인 연인 생활을 시작했다.
그런데 그때부터 상대가 점점 변하기 시작했다. B 씨가 친구를 만나거나 연락하는 것조차 못마땅해 하며, “내가 널 이렇게 사랑해 주는데, 넌 친구가 그렇게 중요해?”라고 질투를 부리기 시작한 것이다.
조금만 B 씨가 싫은 내색을 해도, “내가 네게 해 준 걸 생각하면 이런 태도는 배은망덕이야”라는 말을 반복했다. B 씨는 “내가 배신자인가?”라며 죄책감에 시달렸고, 친구들과의 교류도 점차 끊었다.
주변에서는 “왜 네가 죄책감을 가져야 하지? 저 사람이 이상하잖아”라고 했지만, B 씨는 “그래도 날 이토록 뜨겁게 사랑해 준 사람은 처음이니까…”라는 말로 떠나지 못했다.
결국 시간이 흐를수록 상대의 간섭과 비난은 심해졌다. B 씨가 조금이라도 ‘자기 생각을 표현’하려 들면, 상대는 “네가 나를 얼마나 우습게 보면 그러겠어?”라고 화를 내고 소리를 질렀다.
B 씨는 상담실에서 눈물을 흘리며 “처음부터 알았으면 좋았을 텐데, 왜 하필 나한테 이런 일이 생긴 걸까요?”라고 질문했다.
상담 과정에서 밝혀진 바로는, B 씨는 어린 시절 부모가 이혼해 별로 애정을 주지 않았고, 그 시절부터 “강렬한 사랑”에 대한 판타지를 품어 왔다. 결국 이 판타지를 교묘히 이용하는 사람에게 엮여 버린 셈이었다.
“내 안의 결핍과 상대의 전략이 만나 벌어진 일”
B 씨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왜 하필 나였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내 안에 해소되지 못한 갈망이 컸고, 그 갈망을 상대가 충족시켜 줄 것처럼 행세했기 때문이다” 정도가 될 수 있다.
여기서 B 씨가 근본적으로 ‘비정상’이라거나 ‘현실 감각이 부족하다’고 단정할 필요는 없다. 다만, 미리 감지하지 못할 정도로 그 갈망이 깊었다는 점이 핵심이다. 나르시시스트는 이 갈망을 교묘하게 이용해 폭발적인 애정을 쏟아부은 뒤, 이 사람의 세계를 지배하려 들었다.
“왜 나였을까?”라는 질문은 빈번하게 상담 장면에서 나온다. 그리고 답은 보통 “나르시시스트가 노리는 대상은, 사랑을 간절히 원하는 사람이거나, 과거 상처 때문에 자기 확신이 낮은 사람인 경우가 많다”는 식이다.
그러나 피해자 입장에서는 “내가 이렇게까지 무장 해제될 줄 몰랐는데…”라며 당황해한다. 이것은 “본인이 가진 결핍이나 상처가 얼마나 강력했는지, 평소에는 의식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과거 억압된 욕구가 어떻게 ‘유독 이들과 얽히게’ 만드는가”
무의식적 친숙함
“나르시시스트 부모에게 자란 아이가, 성인이 되어 나르시시스트 애인이나 친구를 반복해서 만난다”는 이야기를 가끔 들을 수 있다. 이 현상을 정신분석에서는 “무의식적 친숙함”이라고 설명한다. 우리가 익숙한 패턴을 낯설지만 안정적이라고 착각하며 찾아간다는 것이다.
즉, 어릴 때 부모가 보여 주던 통제와 애정 결핍의 양상이, 어른이 되어 또 다른 관계에서 재현되는데, 그 재현 과정에서 아이였던 시절의 감각을 ‘편안하다’라고 오해할 수도 있다.
이는 역설적으로 “나쁜 관계인데 왜 그 안에서 안정감을 느끼지?”라는 의문을 낳는다. 하지만 인간의 무의식은 낯선 호의보다 익숙한 갈등을 더 편안하게 느낄 때가 있다.
나르시시스트 부모 밑에서 자란 경우, “상대가 사랑을 준다고 말했다가, 어느 순간 가혹하게 비난하는” 패턴이 어린 시절의 일상사였을 수 있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같은 유형의 관계에 빠져들고, “이건 어린 시절 내게 익숙한 방식”이라고 여긴다. 그 결과 다시금 상처받더라도, 쉽게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
‘보상 판타지’와 끌림의 연결 고리
또 다른 측면에서, 과거 억압된 욕구를 가진 사람은 “이젠 누군가가 절대적으로 날 사랑해 주면 내 상처도 보상받을 수 있다”는 판타지를 키운다. 그 판타지를 자극하는 존재가 나타나면, 비록 위험 신호가 감지되어도 눈을 감는다.
“설마 이번엔 다를 거야”라는 기대가 커지는 것이다. 나르시시스트는 가짜 사과나 가짜 헌신을 자주 동원해 이 판타지를 유지한다. 피해자는 “역시 이 사람은 날 진심으로 아끼는 게 맞아”라고 해석한다.
과거에 부모나 타인에게 상처받았던 장면을 떠올리면, 사람은 “이번에는 정말 전부 보상받고 싶다”는 집착이 생길 수 있다. 그 집착이 나르시시스트의 연극적 애정 표현과 결합하면, 완벽한 ‘운명적’ 사랑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이는 결국 일시적인 착각이거나, 가혹한 지배 관계로 변질될 가능성이 높다. 현실적 보상보다는, 또 다른 형태의 심리적 착취가 시작될 따름이다.
By. 나만 아는 상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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