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시시스트 부모 아래 자란 성인, 왜 비슷한 관계를 반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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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시시스트 부모 아래 자란 성인, 왜 비슷한 관계를 반복할까?

나만아는상담소 2025-03-14 16:01:20 신고

나르시시스트 부모 아래 자란 성인, 왜 비슷한 관계를 반복할까?

어떤 사람들은 나르시시스트와 관계를 맺을 때마다 마치 계속 같은 덫에 걸려드는 기분을 느낀다. “왜 내 주변에는 자꾸 이런 유형의 사람들이 나타나는 걸까? 혹시 내가 무언가를 잘못하고 있는 건가?”라고 자문하면서, 한편으로는 이 상황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해 스스로를 탓하기도 한다.

더욱이 나르시시스트 부모에게 자란 성인의 경우, 어릴 때부터 집 안에서 겪어 온 경험 때문에 성인이 된 뒤에도 유사한 패턴을 반복하는 사례가 많다. 이번 글에서는 바로 이런 피해자들의 심리적 배경과 패턴을 살펴보려고 한다.

“왜 하필 나였을까?”라는 물음을 던지는 이들의 마음속에는 어떤 결핍이나 욕구가 자리 잡고 있으며, 그 억압된 부분이 어떻게 나르시시스트와 얽히는지 구체적으로 알아보자.


나르시시스트와 관계 맺는 사람들: 공통된 심리적 특징

나르시시스트에게 자주 끌리는 이들을 단순히 “착해서 당했다”라고만 요약하기는 어렵다. 분명히 호감과 배려심이 많은 사람일 수도 있지만, 그 아래에는 좀 더 복합적인 심리 작용이 숨어 있다. 때론 과거의 상처나 결핍, 혹은 특정한 애정 욕구가 나르시시스트의 화려함과 강렬함에 이끌리게 만들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누군가는 자기 존재를 온전히 인정받지 못한 채 자라면서 “누군가가 날 스포트라이트 아래 세워 주길 바란다”는 갈증을 품고 성장할 수 있다. 그런데 나르시시스트는 초반에 사랑 폭격과 강렬한 칭찬을 쏟아붓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이 갈증을 가진 사람이 무방비 상태로 빠져들기 쉽다.

또 다른 경우로, 스스로를 뚜렷하게 세우기보다는 타인의 욕구를 우선해 온 사람이 있다.

누군가에게 온전히 인정받고 보호받고자 하는 욕망이 큰 경우, “아, 이 나르시시스트가 보여 주는 적극적 관심이야말로 내가 갈망하던 것”이라고 해석할 가능성이 커진다.

초반에는 정말 황홀한 관심을 받지만, 곧 상대의 자기중심적 면모가 부각되면 혼란에 빠진다. “분명히 이 사람은 내게 엄청난 관심을 보여 줬는데, 왜 지금은 날 아프게 하지?”라는 물음으로 고생하게 된다.

이렇듯 나르시시스트와 엮이는 피해자들에게는 대체로 “인정 욕구”가 크게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 많다. 가령, 자기 확신이 충분하고 누군가의 극단적 칭찬에 쉽게 매료되지 않는 사람은 나르시시스트를 빠르게 구별하고 거리를 둘 수 있다.

그러나 타인의 애정이나 인정을 오랫동안 바라 왔던 사람이라면, 나르시시스트가 주는 달콤한 말과 화려한 제스처에 자주 매혹된다. 심지어 중간에 의심이 들어도, “그래도 이 사람처럼 나를 뜨겁게 대해 준 경우가 또 있을까?”라는 기대 때문에 쉽게 떠나지 못한다.

물론 이는 피해자를 탓하려는 이야기가 아니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사랑받고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있고, 특별한 인연을 찾고 싶은 갈망이 있다.

다만 이 갈증의 강도가 매우 높거나, 과거 상처 때문에 “한 번쯤은 누군가가 나를 완벽히 감싸 주기를 원한다”는 생각이 간절한 상태라면, 나르시시스트의 접근에 더욱 취약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짚어 볼 필요가 있다.


“사랑받고 싶었던 아이, 나르시시스트 부모 아래 자란 성인”

2-1. 나르시시스트 부모 밑에서의 성장 환경

어떤 사람은 어린 시절부터 “부모에게 충분한 애정을 받지 못했다”고 느낀다. 나르시시스트 부모는 자녀의 감정이나 욕구보다는 ‘자신의 자존심’ 혹은 ‘가족 이미지를 빛내는 것’에만 집중했을 가능성이 크다.

예컨대, 아이가 무언가를 잘못해도 “왜 그렇게 했느냐”보다는 “네가 내 얼굴에 먹칠했다”라는 반응을 먼저 보이는 부모가 있을 수 있다. 그 부모는 아이를 진정으로 돌보기보다, 아이를 자기 과시의 수단 혹은 통제 대상으로 삼는다.

이렇게 자란 아이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확신을 얻기 어렵다. 부모의 사랑을 받는 게 아니라, “부모의 기분과 기대에 맞춰야만 인정받을 수 있다”라는 식으로 학습될 수 있다.

그래서 자라면서도 어딘가 결핍감을 품는다. “나는 정말 사랑받을 만한 존재인가?”라는 질문에 스스로 대답할 수 없으니, 누군가가 나를 뜨겁게 사랑해 준다고 말해 주면 그 말에 절대적인 가치를 부여하기 쉽다. 이런 배경을 가진 성인은 나르시시스트와 마주쳤을 때, 초반 사랑 폭격과 칭찬에 무방비로 끌려들 가능성이 높다.

한편, 부모가 나르시시스트일 경우 자녀에게 심리적 폭력이 자주 이뤄진다. 예를 들어, “넌 내 말을 안 들으면 가치 없어”라는 메시지나, “내가 너를 이렇게 힘들여 키웠으니, 너는 내가 원하는 대로 해야 해”라는 식의 압박이 일상적일 수 있다.

아이는 “부모 말을 따르지 않으면 사랑이 끊기는구나”라고 느끼게 되고, 자기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 채 성장한다.

성인이 된 뒤에도 누군가와 관계를 맺을 때, “이 사람이 나를 버리면 어떡하지?”라는 불안에 쉽게 지배당할 수 있다. 그래서 나르시시스트가 주도하는 관계라 해도, 함부로 벗어나지 못하고 끝까지 참으려 들기도 한다.

2-2. 상담 사례: A 씨의 이야기

A 씨(가명)는 7세 시절부터 “나를 위해서”라며 엄격하게 군 부모와 살았다. 부모는 나르시시스트적 성향이 심했고, 늘 A가 뛰어난 성적과 반듯한 태도를 보여야만 칭찬했다. A가 조금이라도 실수하거나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넌 정말 이 가족의 수치야”라며 무서운 언성을 높였다.

그 결과 A는 자라면서 자신의 감정보다 부모의 기분을 우선시했고, “인정받기 위해서는 완벽해야 한다”고 믿었다고 한다.

성인이 된 뒤 A는 대학교에서 재능이 드러나 친구들에게 “너는 참 열심히 살아”라는 칭찬을 받았지만, 정작 스스로는 늘 ‘부족함’을 느꼈다고 한다. 누구도 A를 심하게 비난하거나 구박하지 않았지만, “언제든 누군가가 날 버리거나 실망할 수 있다”라는 두려움이 마음에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나르시시스트적인 연인을 만나게 되었을 때, 상대가 쏟아내는 극진한 애정 표현과 칭찬에 말 그대로 녹아들었다. 처음으로 “진짜 날 사랑해 주는 사람이구나!”라는 기쁨을 느꼈다는 것이다.

하지만 몇 달이 지나자, 그 연인은 갑작스레 A의 행동 하나하나를 간섭하고 통제하기 시작했다. “넌 왜 이렇게 표현이 서투르지?”라거나 “너는 나 아니면 삶이 무의미할 거야” 같은 말을 던지며, A를 죄책감에 묶어 두었다.

A는 어린 시절 부모에게서 느꼈던 “버림받으면 어떡하나?”라는 공포가 다시 살아났고, 그 공포 때문에 항의하지 못했다. 상담실을 찾은 A는 “이게 잘못된 관계인 걸 알면서도, 괜히 제 탓 같고… 혹시 제가 또 부모 기대를 저버렸던 것처럼, 이번에도 잘못하고 있는 건 아닌지 불안하다”라고 털어놓았다.

이 사례는 “나르시시스트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가 성인이 된 뒤, 유사한 형태의 통제를 자기 삶에 재연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론을 뒷받침한다. 애정 결핍이나 ‘사랑받기 위해서는 늘 완벽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오히려 폭력적이고 통제적인 사랑에도 순응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왜 하필 나였을까?” 피해자들이 묻는 말

3-1. 죄책감과 자괴감: “내가 뭘 잘못했지?”

나르시시스트와의 관계에서 상처를 입은 사람들은, 어느 순간 “왜 하필 나야?”라는 질문을 던진다. 스스로를 자책하며, “내가 문제를 유난히 많이 갖고 있어서 이런 사람들에게 끌리는 건 아닐까?”라고 고민한다.

특히 앞서 언급한 예시처럼 어린 시절에 이미 비슷한 양상의 경험을 한 이들은 “결국 내가 못나서, 이런 패턴을 탈출 못 하는 거야”라고 자멸적인 사고방식에 빠질 수 있다.

그런데 냉정히 말해, 이 패턴의 재발은 “못나거나 미숙해서”만 발생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상대의 욕구에 적응해 주는 게 익숙한 사람’, ‘버림받을까 두려워서 갈등을 회피하는 사람’일수록, 나르시시스트가 보이는 초반 호의와 뒤이은 통제에 취약해진다.

한마디로, “자신이 충분히 사랑받을 수 있는 가치가 있음에도 스스로를 낮추고, 당연히 상대의 요구에 맞춰야 한다고 믿게 된” 배경이 더 크다.

그렇다 보니, 피해자들은 자주 “이번에 만난 사람도 똑같이 날 함부로 대하는데, 난 또 거부를 못 하고 순응하고 있구나. 이런 식이라면 내가 평생 이런 사람들에게 시달리며 살지도 몰라”라는 절망감에 시달린다.

그러나 이 질문을 정반대로 뒤집으면, “내 안에 있는 갈망이나 결핍은 도대체 뭘까? 왜 그렇게까지 타인에게 완전히 보상받으려 했을까?”라는 더 근본적인 반성과 마주하게 된다.

3-2. “그래도 이전 사랑보다 훨씬 달콤했는데…”라는 함정

나르시시스트의 매력은 강렬하다. 그래서 피해자가 자신을 탓하면서도, “그래도 이 사람처럼 나를 찬양해 준 상대는 없었잖아”라는 아쉬움을 놓지 못할 때가 많다. 이것이 왜 함정이 되냐면, 그 달콤함은 사실 오롯이 피해자를 위한 게 아니었다.

나르시시스트는 본인의 욕구 충족을 위해 상대를 마음껏 칭송했고, 그 칭송이 끝난 뒤에는 냉혹하게 태도를 바꿨다.

그럼에도 “이렇게까지 뜨거운 사랑을 받아 본 적이 없었는데”라고 생각하다 보면, 떠나기 힘들어진다. “나르시시스트와의 관계가 고통스럽긴 해도, 이전에 누려 보지 못했던 환상적인 감정을 맛보게 해 준 건 사실이니…”라는 혼돈 속에, 더 오래 남아 있으려 한다.

그 과정에서 피해자는 “내가 잘하면 다시 예전처럼 날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사람으로 대해 주지 않을까?”라는 기대를 품기도 한다.

이 함정이 작동하는 이유는, 피해자가 “완벽한 사랑”을 향한 갈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 제대로 채워지지 못한 인정 욕구, 칭찬받고 싶은 욕망,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싶은 갈증 등이 결합돼, 나르시시스트가 보여 주는 극적인 사랑 표시를 “내가 평생 찾아 헤매던 것”이라 여긴다.

그러니 쉽게 포기하기 어렵다. 실상은 지배와 조종의 형태를 띠고 있음에도, “그래도 저 사람은 한때 날 완벽히 사랑해 줬어”라는 기억이 계속 희미한 희망으로 남는다.

By. 나만 아는 상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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