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시시스트가 유도하는 자기 의심 위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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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시시스트가 유도하는 자기 의심 위험성

나만아는상담소 2025-03-14 15:45:54 신고

“혹시 내 잘못인가?”라는 자기 의심 위험성

지금까지 살핀 가스라이팅, 은밀한 심리 학대, 사랑 폭격 후 냉대 등은 모두 “내 잘못인가?”라는 자기 의심 을 피해자에게 불러일으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물론 모든 사람이 관계 속에서 ‘자기 반성’을 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그 반성이 왜곡되어 자기 비난으로만 흐를 때, 나르시시스트는 날개를 달게 된다. 이 상황에서 자초지종을 말해도, 가해자는 “내가 잘해 주려고 했던 것뿐이야. 네가 그걸 오해한 거지”라고 발뺌한다. 그러면 피해자는 “그래, 내가 괜히 예민하게 굴었나”라고 생각하기 쉽다.

이런 양상은 실생활에서 빈번하게 관찰된다. 예를 들어 연인이 “내가 이렇게까지 너를 위하는데, 넌 왜 내 속을 뒤집어 놓는 거야?”라고 말하면, 상식적으로는 “당신이 날 위한다고 말했지만, 실제로 상처를 주고 있잖아”라고 대답할 법하다.

그러나 가스라이팅이 깊이 진행된 상황이라면, 피해자는 이미 자기가 받은 상처 대신 가해자의 말만 들으면서 “내가 더 착해야 하는데…”라고 주저앉는다.

어떤 의미에서 “혹시 내 잘못인가?”라는 질문은 관계를 발전시키는 출발점이 될 수도 있다. 갈등이 생겼을 때 자신을 돌아보는 태도 자체는 긍정적인 면이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나르시시스트와의 관계에서는 그 질문이 “항상 네 잘못이야”라는 결론만 도출하도록 조작된다는 점이다. 피해자가 조화를 이루고 화해하려 애쓸수록, 가해자는 더 많은 요구와 압박을 가한다. “내가 널 더 길들이는 것이 가능하겠군”이라는 판단을 하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단계: 자기 의심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공간 마련하기

그렇다면 이런 조종법에 빠져들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중요한 건, 자기 자신에게 “이게 정말 내 잘못인가?”라는 질문이 반복해서 떠오른다면, 그 상황을 한 번 객관화해 보는 시도를 하는 것이다.

쉽게 말해, 혼자만 고민에 빠지기보다는, 주변 친구나 전문가에게도 의견을 물어볼 필요가 있다. 가스라이팅을 하는 나르시시스트는 피해자를 고립시키려 하기 때문에, 외부와의 소통 창구를 닫으려 든다. 그럴수록 반대로 대외적 시선과 피드백을 받아 “내가 이 문제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를 점검해야 한다.

또 하나의 방법은, 상대가 내게 하는 말들을 가급적 기록해 두는 것이다. 그 순간에는 감정이 휩쓸려 “이건 내 탓이군”이라고 넘길 수도 있지만, 나중에 차분히 돌아보면 “어? 이 말은 논리적으로 말이 안 되는데, 당시에 난 왜 받아들였지?”라고 깨달을 수 있다.

이런 기록이 쌓이면, 나르시시스트의 언행이 얼마나 일관성이 없고,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면서 동시에 나를 죄책감에 빠뜨리는지 명확히 보이게 된다.

고립을 벗어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만약 이미 심리적·물리적으로 고립된 상태라면, 믿을 만한 사람에게 연락해 “나 요즘 이런 문제로 힘든데, 네가 객관적으로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해 줄 수 있을까?”라고 털어놓을 수 있어야 한다.

그 과정은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나만 바보인가 봐”라고 자책하기보다, “누구나 이럴 수 있다. 중요한 건 여기서 어떻게抜겨나오느냐다”라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나르시시스트에게 받은 가스라이팅의 상처는 대개 개인만의 힘으로 회복하기 쉽지 않다. 그래서 가족, 친구, 전문 상담사 등과의 연대가 꼭 필요하다.


글을 마무리하며: 은밀한 조종과 자기 의심 에서 벗어나는 길

나르시시스트의 은밀한 조종법은 “처음에는 환상적으로 보이는 사랑 또는 인정”을 준 뒤, 어느 순간 냉혹하게 상대를 깎아내려 죄책감과 불안을 조성하는 메커니즘이다.

가스라이팅과 심리적 통제로 이어지는 이 흐름을 제대로 인지하지 않으면, 피해자는 점점 자존감이 무너지고 자신의 문제로 돌리며, 고립된 채 괴로워하게 된다.

나르시시스트의 학대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이유는, 이들이 “사랑”이라는 수단을 너무나 교묘하게 사용하기 때문이다. 언뜻 보면 “내가 널 위해 이만큼 투자하고 노력했다”는 식의 감동 스토리가 펼쳐지지만, 그 이면에는 “네가 내 말 안 들으면 이 모든 걸 잃게 될 거야”라는 협박이 깔려 있다. 그 협박이 노골적 형태가 아니라, 미묘하고 은근한 말투와 태도로 포장되어 피해자를 현혹한다.

앞 장들에서 이미 보았듯, 나르시시스트는 겉치레와 칭찬을 통해 상대를 사로잡고, 동시에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관계를 끌어간다. 여기서는 특히 “가스라이팅”이라는 심리적 조종과 “상·벌 기제”가 결합해, 피해자가 “나 때문에 상대가 저렇게 힘들어하나 봐”라는 자책에 빠지도록 만든다는 점이 강조되고 있다.

만약 현재 이 글을 읽는 독자 중에, “혹시 내 상황이 이런 것은 아닐까?”라고 느끼는 사람이 있다면, 다음을 제안하고 싶다. 우선, 스스로를 의심하는 습관에서 잠시 벗어나, 객관적 시선으로 둘의 관계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

가령 “이 사람이 처음에 나에게 했던 말과, 지금 하는 말 사이에 일관성이 있는가? 아니면 순전히 나에게 잘못을 뒤집어씌우기 위해 자꾸 말을 바꾸는가?”라는 식의 체크를 해 보자. 그리고 그 결과를 누군가에게 솔직히 털어놓고 의견을 구하면 더욱 좋다.

관계에서 갈등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는 부분일 수 있다. 하지만 갈등을 풀어가는 과정이 일방적으로 “너 무조건 내 말 들어야 해”라는 통제로 흐른다면, 사랑이 아니라 지배의 형태가 되고 만다. 또, “사랑”이라는 언어가 자꾸 나를 옥죄어 오고, 내 생각과 감정을 부인하게 만든다면, 그건 이미 건강한 관계와 거리가 멀다.

글을 마무리하며, 가장 강조하고 싶은 사실은 이것이다. 나르시시스트의 은밀한 조종법은 대개 단기간에 끝나지 않고, 상당히 긴 시간에 걸쳐 피해자를 잠식한다. ‘처음에는 황홀함, 그다음은 혼란, 그리고 점차 깊어지는 죄책감과 고립’이라는 흐름이 서서히 진행되는 탓에, 당사자는 그 심각성을 알기 어렵다. 한순간에 정신을 차리고 “이제 그만!”이라고 외치기에는, 이미 감정적으로 깊이 얽혀 버린 뒤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글을 통해, 조금이라도 그 조종법의 실체와 작동 방식을 인식할 수 있다면, 적어도 나르시시스트가 사용하는 사랑 폭격과 평가절하, 가스라이팅을 조기에 포착해서 막을 수 있다. 혹은 이미 그 안에 들어간 상태라면, “내가 왜 이렇게 계속 내 탓이라고만 생각하는 거지?”라는 질문을 던짐으로써, 관계를 재정립할 용기를 낼 수도 있다.

사랑은 결코 상대를 무너뜨리는 방식으로 이뤄져서는 안 된다. “혹시 내가 잘못했을까?”라는 질문은 건강한 관계에서라면 상호 발전의 씨앗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나르시시스트와의 연결에서 이 질문이 반복해서 떠오르고, 정작 상대는 아무 책임도 지지 않고 날 탓하기만 한다면, 그건 이미 구원보다 파멸 쪽에 가까운 신호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지배는 결코 사랑이 아니다. 누군가에게 끊임없이 “내가 네 주인이야”를 선언하는 관계는, 설령 그 표현을 직접 쓰지 않더라도, 본질적으로 통제와 학대의 영역에 있다.

이후 장에서는 “나르시시스트가 어떻게 주변인을 더 고착화하고 착취하는가”라는 문제, 즉 5장 혹은 그 이후에서 다룰 “관계에 속한 이들이 빠져나오기 어려워지는 이유”를 추가로 다루게 될 것이다.

이미 지금까지의 흐름에서 “처음에는 강렬한 매력, 그리고 점차 깊어지는 혼란”이라는 윤곽이 보였으니, 여기서는 “가스라이팅, 심리적 통제, 학대를 통해 피해자가 어떻게 자기가치감을 상실하게 되고, 왜 빠져나오지 못하는지”를 좀 더 심화해 다룰 예정이다.

마지막으로, 이런 학대를 경험한 사람이 무조건 무력한 존재라는 의미는 아니다. 피해자는 한때 엄청난 사랑을 받고 있다고 믿었기에, 그 사랑을 지키고 싶은 마음이 컸을 테다. 문제는 그 사랑이 사실상 “조종”으로 변질되었다는 점이며, 이제 그 사실을 깨닫고 나면 떠날 수 있는 힘을 모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주변의 지지, 전문 상담, 자기 인식 과정을 통해, 충분히 벗어날 길이 열릴 수 있다. 사랑이 아닌 지배 관계에서 더 깊이 들어가기 전에, “이게 혹시 내 잘못이 아닌가?”라는 자책을 지속하기보다는, “정말 이 사람이 날 위하는 게 맞나?” “이게 건강한 방식의 관계인가?”라는 새로운 질문을 던져 보는 게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다.

나르시시스트의 은밀한 조종법은 “사랑이라는 이름의 지배”라는 말로 요약될 수 있을 만큼 치밀하고 무섭다. 아무리 인지 능력이 뛰어난 사람도, 한번 이 사랑 폭격에 취하고 나면, 본인이 혼란스럽고 잘못된 사람처럼 느끼기 십상이다.

그렇지만 이 글에서 설명한 “가스라이팅, 심리적 학대, 평가절하, 죄책감 유발, 자기 의심” 이라는 전형적 패턴을 숙지한다면, 마음 한구석에서 경고등을 빨리 켤 수 있다. 그리고 그 경고등이 켜졌을 때는 외부에 도움을 청하거나, 기록을 남기고, 상대의 태도를 냉정히 재평가하는 등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편이 좋다.

아무리 나르시시스트가 “이건 전부 너를 위해서야” “우린 서로 사랑해서 이러는 거야”라고 말해도, 말과 행동이 꾸준히 일치하지 않는다면 의심해야 한다. 실제론 끊임없이 내 가치를 깎아내리고, 내 생각을 부정하며, 고립으로 몰아넣는다면, 사랑이 아니라 학대다.

그 간극을 바로 보는 눈이 우리에게 필요하고, 그런 통찰이 있으면 “내 잘못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도 훨씬 명료해진다. 정답은 “아니, 이건 네 잘못이 아니야. 그가 너를 조종하고 있을 뿐이야”일 때가 매우 많다.

지금까지 3편의 글을 통해 사랑 폭격과 가스라이팅, 심리적 통제, 은근한 학대 속에서 피해자가 스스로 잘못했다고 믿게 되는 과정을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다음 장에서는 이 은밀한 조종법이 불러오는 후폭풍과, 피해자가 어떻게 조금씩 자각하고 반격하는가, 혹은 스스로를 구원하는가에 대한 더 구체적 예시와 방법론을 살펴볼 예정이다.

가장 중요한 건, 나르시시스트에게 “이건 전부 네 잘못이야”라는 메시지를 계속 듣고 있다고 느낀다면, 한 번쯤은 멈춰 서서 “과연 진짜로 내 잘못인가?”라고 자발적이고 냉정하게 되물어 보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그 용기가 은밀한 지배에서 벗어나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By. 나만 아는 상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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