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매거진=최여민 작가] 삶이 움직이기 시작하는 순간, 우리는 결과로 평가받기 시작한다. 얼마나 치열하게 옹알거렸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오직 또렷하게 말을 먼저 뗀 아이만이 총명함의 왕관을 거머쥔다. 학창 시절을 지나 사회로 나아갈수록 이 법칙은 더욱 견고해진다. 입을 처음 뗄 때와 다를 바 없이 노력과 시행착오는 누구도 기억하지 못하며, 과정의 의미를 배우기도 전에 살아남는 것은 언제나 그럴듯한 결과뿐이다.
기대했던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그동안의 과정이 헛된 것으로 여겨지곤 한다. 과정은 때로 평가받지 못하고 쉽게 사라지지만, 분명 그 자체로 소중한 의미를 지닌다. 잭슨 폴록은 과정의 가치를 예술로 승화시킨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의 작품을 처음 마주한 사람들은 역시나 결과가 중요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화면을 가득 채운 혼란스러운 선과 색채, 기교 없이 흩뿌려진 물감은 얼핏 보면 과연 작품이라 부를 수 있을지조차 의문스럽다. 화면을 뒤덮은 물감은 무질서하게 튀어 올라 어떤 형태도, 구체적인 의미도 찾기 어렵다.
폴록은 전통적인 붓과 팔레트를 버리고 막대기, 손, 숟가락 등을 사용해 캔버스 위로 물감을 흘리고 튀겼다. 그의 독창적인 드리핑 기법(Drip Painting)은 겉으로 보기엔 우연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일정한 리듬과 패턴이 숨겨져 있는 것만 같다. 때로는 우주처럼 광활하게, 때로는 자연의 무질서한 조화처럼, 또 때로는 인간의 감정처럼 복잡한 형태로 나타난다. 그는 무의식과 내면의 에너지를 직접적으로 표출하며, 감상자가 작품을 있는 그대로 경험하기를 원했다.
바닥에 펼쳐진 화면 위에서 물감을 흩뿌리고 흔들며 즉흥적인 동작과 움직임 속에서 감정을 쏟아냈다. 그는 캔버스를 바닥에 두고 마치 무용수가 춤을 추듯 전신을 활용해 물감을 흩뿌리며 작품을 만들어갔다. 그의 역동적인 움직임은 그대로 흔적으로 남아 화면을 채웠고, 이는 액션 페인팅(Action Painting)으로 불리게 되었다. 이를 통해 폴록은 회화를 정적인 결과물이 아닌, 살아 있는 움직임으로 변화시켰다.
처음에는 폴록의 작업 방식을 의아하게 여겼던 사람들도 시간이 흐르며 그의 혁신적인 접근을 인정하게 되었다. 특히 이전까지 유럽(특히 프랑스)이 주도하던 미술계에서 그는 추상미술의 가능성을 확장하며 미국 현대미술의 위상을 높였다. 이러한 변화는 뉴욕을 세계적인 예술 중심지로 부상시키는 데 기여했으며, 냉전 시대에는 자유를 상징하는 전략적 문화 자산으로도 활용되었다.
폴록의 결과는 과정을 향한다. 그는 전통적인 구도나 원근법을 따르지 않고, 화면 전체를 균등하게 채우는 전면균질회화(All-over Painting) 방식을 통해 어느 한 부분이 강조되거나 튀어 보이지 않게 완성했다. 그의 작품에서는 모든 흔적이 동등한 가치를 지니며 하나의 흐름 속에서 조화롭게 연결된다. 자신의 에너지와 움직임을 그대로 예술로 녹여냈고, 실패와 시행착오조차 기꺼이 작품의 일부로 받아들였다. 결과의 완벽함보다는 창작의 역동성과 자유로움을 중요하게 여긴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냉정하다. 대개 좋은 결과만을 기억하고, 성과 없는 노력은 쉽게 잊힌다. 하지만 결실이 멀게만 느껴질 때야말로 주저할 이유가 없다. 폴록이 거침없이 물감을 흩뿌려 흔적을 쌓아 올렸듯, 계속 나아가다 보면 어느 순간 자신만의 걸작을 완성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흩뿌려라, 그것이 곧 너의 예술이 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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