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매거진=최여민 작가] 현실의 규칙은 사라지고, 모든 것이 자유롭게 변주된다. 생경한 풍경은 때로는 낯설고, 때로는 익숙하다. 경계가 허물어진 화폭 위로 신랑과 신부, 에펠탑, 집과 가축들이 부드럽게 흘러간다. 마치 꿈처럼 현실의 무게가 가볍게 흩날리는 순간이다.
샤갈은 평생을 바쳐 사랑한 벨라 로젠펠트를 처음 만난 순간부터 운명임을 확신했다. “그녀의 눈빛을 보고 나는 그곳에 내 영혼이 비친 것을 보았다.”라는 그의 말처럼, 벨라는 단순한 연인이 아니라 그의 삶과 예술, 그리고 존재의 이유였다. 그녀와 함께한 순간부터 그는 세상을 한층 더 빛나고 의미 깊게 느낄 수 있었다.
1938년 유럽은 제2차 세계대전의 전운이 감도는 불안정한 국제 정세 속에 놓여 있었다. 나치 독일의 군사적 위협과 정치적 압박이 점점 거세지면서 샤갈은 결국 사랑하던 파리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떠나기 전에, 그는 ‘에펠탑의 신랑신부’를 완성하며 자신의 감정을 그림 속에 담아냈다. 이 작품에는 그가 누구보다도 깊은 애정을 품었던 아름다운 도시 파리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그의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였던 아내 벨라를 향한 간절하고도 깊은 정서가 온전히 스며 있다.
뜨거운 태양 아래, 파리의 상징인 에펠탑이 우뚝 솟아 있다. 그 앞에는 신랑과 신부가 현실을 초월한 듯 가볍게 몸을 띄우며 마법 같은 순간을 맞이하고 있다. 짙푸른 하늘과 강렬한 붉은빛이 만들어내는 선명한 대비는 사랑과 열정을 한층 극적으로 부각시키며, 따뜻한 색조는 꿈과 현실이 맞닿아 있는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채도가 높은 강렬한 색감과 부드럽게 스며드는 경계, 포슬포슬한 질감이 어우러지며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허물고 자유롭고 감미로운 감성을 더욱 강조한다.
그의 작품 속 신랑과 신부는 현실의 법칙을 뛰어넘은 듯 공중에 떠 있으며, 이는 사랑이 지닌 강인한 힘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들 곁에 자리한 닭과 염소는 단순한 동물이 아니라 샤갈이 어린 시절을 보낸 러시아 비테프스크의 전통적인 농촌 생활과 유대 공동체의 정서를 담고 있다. 이는 고향과 가족에 대한 깊은 향수를 불러일으키며, 그의 작품에 따뜻한 온기를 더한다.
또 화면 한편에 놓인 바이올린은 단순한 악기가 아니라, 유대인들이 기쁨과 슬픔을 나누던 삶의 일부로서 등장한다. 이는 사랑이 하나의 선율처럼 부드럽게 흘러가고, 두 사람의 감정이 조화롭게 어우러진다는 것을 은유적으로 표현한다. 반면, 시계는 멈추지 않는 시간 속에서도 변치 않는 사랑을 상징하며, 유한한 현실과 영원한 감정 사이의 대비를 부각시킨다. 이러한 요소들은 샤갈이 지닌 신념과 정체성을 반영하며, 작품 전체에 생동감 있는 리듬과 깊은 감성을 더한다.
샤갈은 러시아에서 태어난 유대계 프랑스 화가로, 20세기 미술사에서 독창적이면서도 따뜻한 작품 세계를 구축했다. 그의 작품은 전통적인 사실주의와는 거리가 멀지만, 색채와 구성이 만들어내는 감성적인 분위기를 통해 관객을 자연스럽게 꿈과 기억, 그리고 사랑이 어우러진 몽환적인 세계로 이끈다.
발 아래로 바쁘게 흐르는 세상의 소음도, 현실의 무게도 이 순간만큼은 그들에게 닿지 않는다. 높이 솟아오른 신랑과 신부는 세상의 흐름에서 벗어나 사랑이 주는 행복과 자유로움을 온전히 드러낸다. 사랑을 단 하나의 정의로 규정할 수는 없지만, 어쩌면 그것은 그저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세상을 다르게 바라보고, 평범한 순간조차 특별하게 느껴지는 감정일지도 모른다.
샤갈은 그의 작품을 통해 사랑에 대한 하나의 답을 제시하며 확신에 찬 사랑이 찾아왔을 때 망설이지 말고 용기 있게 마음을 전하길 바란다. “너와 함께하면 마치 하늘을 나는 기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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