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매거진=유정 작가] ‘집요’라는 말을 참 좋아한다. 고집스럽고 끈질기다는 의미만큼 결국에는 그 고집대로 찾아내는 무언가가 있다는 말처럼 들려서도 좋아한다. 무엇보다 집요함이 어떠한 단계로 올라서면 ‘고유함’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친구 하나가 유정의 작업을 보며 ‘노동집약적’이라 말했다. 깨알같은 글씨의 나열이 그리 보였던 모양인데, 그건 내가 낼 수 있는 집요함의 방식이었다. 또 어떤 방식이 될지 모르겠지만 좀 더 깨알같은 방법을 찾아 낸다면 나도 이 작가들처럼 견고히 ‘고유’해 질 수 있을까 마음에 긴장이 어렸다.
‘수묵별미 한중 근현대 회화’전에 다녀왔다. 몇 해동안 SNS로만 좇던 작가들의 작품이 한 데 모여 있었기 때문이다. 마침내 실물영접이었다.
1) 집요하게 나열해 놓은 창문
어느 날 창문들이 빼곡한 옛날 건물을 보며 시선을 빼앗겼다. 여기저기 떨어지고 금가며 투박한 외벽에 기어코 저 많은 창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이상하리만치 그 생김새가 따뜻해서 한 칸 한 칸 더 보게 되었다. 그러기를 몇 번인지, 모두 SNS 이미지를 확대하고 다시 작게 보기를 반복한 것이었다. 그런 작품을 직접 볼 수 있는 기회는 놓칠 수 없었다.
정재호 작가의 작품이다. ‘황홀한 건축’ 제목 그대로 황홀했다. 이상하지 않은가, 이 낡은 건물들이 어떻게 이리도 대단해 보이는 것일까.
2) 집요하게 심어 놓은 검정
어떻게 찍어도 저 검정이 고스란히 담긴다(아래 소개할 이정배 작가가 만든 ‘이정배검정’ 물감을 사용한다고 한다). 작가는 왜 이 검정을 고안하게 되었을까.
대부분이 그만의 심상을 그려내는 회화를 만들어내고 있을텐데, 특히 이진주 작가의 그림들을 보면 ‘심연’ 그 자체로 느껴진다.
요즘 ‘현실과 가상의 세계가 공존한 모습이 당연하다면’이라는 상상을 자주 하는데, 이진주 작가의 작품들을 보면 이미 그러한 모습이 기록된 느낌을 받는다. 저 검정이 그런 몰입감을 더해주는 것일까.
3) 집요하게 내려 놓은 조각
작가는 어느날 건물과 건물 사이의 ‘산’을 보았다고 한다. 거대한 산 전체가 아닌 ‘산 조각’을 보고 오늘날 현대인들의 자연을 보게된 것이다. 이 작품들은 그 조각이다.
매번 그의 작품을 보며 생각한다. 얼마나 덜어 놓고, 내려 놓을 수 있어야 이 단순해보이는(실제 채색 과정은 부단한 반복이 필요하다고 한다) ‘부분’을 완성으로 내놓을 수 있을까.
한참 보고 머뭇머뭇 발길을 돌렸다. 고유한 것들 투성이인 이 앞에 생각만 많아진다. 유정은 무엇을, 어떻게 놓을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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