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이럴 일이야?” 책으로 마음 치유하는 독서치유심리학자 김영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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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이럴 일이야?” 책으로 마음 치유하는 독서치유심리학자 김영아

독서신문 2025-02-28 06:00:00 신고

‘어느 날’
(영롱한 분홍빛 물고기들의 그림만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한 장을 넘긴다.)

‘나는 신비로운 빛을 보았어요.’
그러니까 다른 물고기들과 다르게 그 빛을 본 물고기만이 방향을 틀었죠. 다른 애들이 다 하나의 길을 따라갈 때 누군가는 자기의 길을 간 거예요. 여기에 어떤 텍스트가 없잖아요. 그런데…

‘빛 너머는 나에게 없는 걸로 가득했어요.’
이 한 줄이 나오죠. 여기서 아이들한테 물어요. “너희들은 뭘 갖고 있고 뭐가 없어?”

상담 공간 ‘친:정’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김영아 독서치유심리학자·그림책심리성장연구소장이 『나를 찾아서』(변예슬 저, 길벗어린이)를 활용해 직접 시연했다. 가로가 긴 직사각형 판형의 분홍빛 그림책이었다. “그림책은 판형도 메시지예요. 책을 딱 여는 순간 물고기들이 이렇게 나아가는 걸 표현하기 위해서 판형을 가로로 길게 한 거예요.”

그림책 『나를 찾아서』 표지

<독서신문>에는 매주 출판사들로부터 한 박스 내지 두 박스의 신간이 들어온다. 책의 장르나 분야도 다양한데, 그중에는 그림책도 꽤 많다. 그러면서 접하게 된 그림책은, 단지 아이들을 위한 책만은 아니었다. 짧은 이야기 속에서 내용을 전달해야 하니 스토리텔링도 탁월하고, 텍스트가 적은데도 마음을 건드리는 깊은 이야기를 함축하고 있기도 했다. 이런 이야기를 전하니 김영아 소장은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림책이 요새는 논술 교재로도 많이 쓰여요. 함축이 은유잖아요. 은유를 찾아낼 수 있는 양질의 도구가 되는 거죠.”

“같은 그림책으로 초, 중, 고, 대학생, 심지어 직장인, 시니어들과 이야기를 나눠도 서로 다른 자기들만의 이야기가 나오죠. 다들 ‘그림책이 이럴 일이야?’ 한다니까요.”

Q. 그림책을 활용한 치유 활동에는 어떤 장점이 있나요?

상담심리 쪽으로 뭔가를 해보려고 움직이는 과정에서 ‘도구’가 필요하다는 걸 느꼈어요. 자기감정을 언어화하는 데 취약한 사람들이 있거든요. 시대적 흐름이나 속도감, 사람들의 피로도를 반영했을 때 그림책이 최고의 치유 도구더라고요. 기존에는 문학 작품을 활용한 독서 치유 프로그램을 다뤘는데요. 그런 활동을 좀 더 그림책으로 옮겨와 상담심리에 적용했죠. 부모 교육, 현장의 아이들, 사회 정서 교육에 접목했더니 효과가 어마어마했고요.

Q. 치유에서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인가요?

‘직면’이에요. 얼굴에 케첩이 묻으면 우리는 거울을 보고 얼굴에 묻은 케첩을 닦아내죠. 이렇게 거울을 보는 게 직면이에요. 자기를 알아야 남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뭐가 문제인지도 알고, 내가 감정을 잘 표현하는지 아니면 왜곡해서 표현하는지 알 수 있죠. 자기 인식이 중요해요. 그런데 자기를 들여다보는 거 쉽지 않거든요. 직면을 피해요. 그럴 때 누가 “너 이게 문제야, 너 이런 거 해야 돼”라고 하면 오히려 저항감만 불러오죠.

Q. 저항감 없이 나 스스로를 직면하게 하는 도구가 필요하겠네요.

당구의 ‘3쿠션 기법’을 생각하면 돼요. 내가 목표로 하는 공을 직접 치는 게 아니라 다른 공을 쳐서 목표물을 맞추죠, 그 ‘다른 공’의 역할을 그림책이 해줄 수 있어요. 그림책을 들여다보면 그 안에 어디서 많이 본 내가 있어요. 어디서 많이 들었던 말들이 있고, 접해봤을 상황이 있어요. 그래서 들여다봤을 때 동일시가 되고, 카타르시스가 느껴지고, 나를 해석하고 통찰하게 돼요. 그게 그림책 치유의 기본이에요.

그림책심리성장연구소 김영아 소장 [사진=안경선PD]

Q. 그림책 치유 활동은 어떻게 이루어지나요?

그림책은 혼자 보는 것보다 여럿이 함께 읽을 때 효과가 백 배, 천 배예요. 그림책은 그림이 70~80%잖아요? 언어화되지 않은 이미지들은 상상을 건드려요. 어떤 사람이 ‘A’라고 느꼈을 때, 누구는 ‘B’로, 누구는 ‘C’로 느끼죠.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서 하나의 그림책을 읽었을 때 여러 가지 해석이 존재하고, 그 다양한 해석이 주는 메시지가 있는 거죠. 그런 면에서 그림책을 함께 보는 건 집단 상담의 효과를 나타내기도 해요.

Q. 상담처럼 활동을 이끄는 ‘리더’의 역할이 중요하겠어요.

그렇죠. 어떤 책이 중요한 주제를 품고 있는데 얘기를 나누는 중에 그 주제가 안 나올 수도 있죠. 피할 수도 있잖아요. 그럴 때 리더가 발문을 통해 그 주제를 툭 던져주죠. 각자의 감상을 나누는 정도가 아니라 각각 마음속에 꼭꼭 숨겨놓은 주제를 끄집어낼 수 있도록. 참가자들이 발문에 직면해서 자신의 이야기를 안으로부터 건져 올리게. 저희 연구소에서는 그런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그림책 심리 지도사’ 등 양성 과정을 운영하고 있어요.

Q. 그림책 심리 지도사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자질이 필요한가요?

두 가지 전문성이 필요해요. 그림책을 정확히 읽어내는 힘과 그림책에서 심리적인 요소를 뽑아내는 힘이죠. 인성적 자질도 중요한데, 심리적인 안정감이 있어야 해요. (심리학 용어로는) ‘역전이’되지 않아야 해요. 치유 활동을 이끄는 사람이 지금 진행하는 주제에 자꾸 옛날의 감정, 과거의 아픔, 상처가 올라와서 상황을 이끌지 못하면 안 되잖아요.

Q. 양성 과정만 수료하면 어디서든 그림책 강의 활동을 할 수 있게 되는 건가요?

그림책 심리 지도사를 이곳저곳에서 양산하는 데 대한 기우가 있죠. 그런데 수료에는 만만치 않은 시간과 본인의 노력이 필요해요. 제가 제일 강조하는 게 꾸준한 공부거든요. 주 3회 아침 1시간 동안 줌으로 학자 내지는 지금 중요하게 떠오르는 이슈를 다뤄요. 지금은 에릭 번의 이론을 읽고 있어요. 저희 지도사들의 자질을 계속 함양시키는 거죠. 심리학 학사 전공자들보다 심리학에 관한 책을 많이 읽고, 필요한 건 부연 설명해 가면서 훈련을 시켜요. 그 인원이 지금 500명이 넘어요.

Q. 책을 평소 많이 접하지 않았던 사람들도 독서 치유 활동의 효과를 볼 수 있을까요?

접하지 않았을수록 어떤 면에서는 효과가 극적일 수 있어요. 책을 많이 읽었다고 하는 사람 중에 ‘나 이만큼 알아’ 하는 방어기제를 갖고 있는 분들이 있어요. 그런 분들은 그림책을 내놓으면 “절 뭘로 아세요?”라는 반응을 보이기도 해요. 그렇지 않은 분들은 오히려 저항감 없이 받아들이고요. 다 읽고 나면 “이게 이런 책이에요? 이 책 저도 살 수 있어요?” 하고 물어봐요. (웃음)

그림책심리성장연구소 상담 공간 ‘친:정’에서 김영아 소장과의 인터뷰가 진행되었다. [사진=안경선PD]

이미 유럽에서는 독서 치유 프로그램이 학교 정규 교과 과정에 들어갈 만큼 널리 활용되고 있다. 김영아 소장은 우리나라에서도 정규 교육에 독서 치유가 들어가는 날을 꿈꾼다. 2005년, 이화 독서 치료 연구소로 시작해 2020년에 그림책 심리 성장 연구소로 명칭을 바꾸고 활발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대학 때는 국문학을 전공했다. 본지와도 인연이 있는 것이, <독서신문>의 초대 편집위원을 역임한 故이어령 선생의 직제자였다고. 국문학 연구자의 길을 걸을 줄 알았던 제자가 대학 졸업 후 사교육 시장에서 논술을 가르치자 이어령 선생은 그를 애정 어린 다그침으로 나무라기도 했다고 한다.

“대치동 현장에 있으면서 많은 아이들의 아픔을 봤어요. 좋은 대학을 가서도, 나중에 직장을 얻거나 가정을 이루고 나서도 힘들어하더라고요. 결국은 인간의 마음이 답이라는 생각에 뒤늦게 전공을 바꿨죠.”

후에 상담심리학을 공부하며 대학 때 배운 걸 접목하다 보니 책으로 마음을 치유하는 영역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비블리오테라피’, 독서 치료다.

“…그런데 그게 알게 모르게 제가 오랫동안 해온 일이더라고요. 아이들에게 논술을 가르치고, 토론하고, 깊이 있는 철학을 고민하면서 치유적인 요소를 건드렸다는 걸 나중에 논문을 쓰면서 깨달았어요. 그 후로 문학에 심리학을 접목하는 법을 계속 연구해 왔죠.”

[사진=세인M&F 홈페이지 캡처]

Q. 2023년에 하신 인터뷰 중에 ‘부모 교육 이수제’라는 아이디어를 봤어요. 그런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고.

그걸 개발한 게 6주짜리 ‘양육 감정코칭 지도사’ 과정이에요. 저는 이걸 이수제로 만들면 좋겠는데 사실 그건 강제하는 거잖아요. ‘이걸 어떻게 자발적으로 교육받게 할까?’ 하는 고민이 계속 있죠. 우리의 사회화에 교육 제도가 되게 많은 영향을 미치잖아요. 학교에서 웬만한 것들을 다 배우면서 사회화가 되는데… 그런 것처럼 부모가 부모 자격을 갖는 부모화도 저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 교육을 학교 교육처럼 제도화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한 거죠.

Q. 예컨대 ‘부모 학교’라는 공간을 상상하신 건가요.

네, 예를 들면 아이가 학교에 입학했을 때 부모가 4주 만이라도 교육을 받으면 어떨까? 이런 생각도 했고. 나라에서 아이들에게 혜택을 줄 때, 부모 교육을 이수하면 받을 수 있도록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봤어요.

Q. 그런 상상이 현실화가 될 수 있을까요?

지금 어느 정도는 공론화가 되지 않았나요? 학교 안에서 아이들의 인성 문제, 정서적 고갈… 이런 문제가 코로나 이후 특히 심각해졌거든요. 부모 본인들도 이런 게 필요하다고 얘기해요. 현장 나가 보면 교사는 더 말할 것도 없어요. 필요한데 왜 안 할까? 그 필요를, 이제 제도를 만드는 사람들도 알아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그분들에게까지 닿으면 되지 않을까.

Q. 부모 교육을 강조하는 이유가 있다고요.

어린아이에게는 부모의 애착, 말과 행동이 온몸으로 기록돼요. 프로이트는 이렇게 표현했죠. 아이는 부모를 ‘섭취’한다. 음식을 섭취하듯 그냥 부모를 섭취한다. 만약 프로이트가 요즘 사람이라면 아마 아이는 부모를 ‘스캔’한다고 할 것 같아요. 어떤 문제를 해결할 때는 문제 파악, 해석, 해결의 3단계를 거치는데, 어린 시절 아이가 섭취한 모든 게 ‘부정’이면 아이는 문제를 긍정으로 해석할 수 없어요. 그러니 양육과 부모 교육을 강조할 수밖에요.

김영아 소장 [사진=안경선PD]

Q. 개발 중이거나 앞으로 개발하고 싶은 독서 치유 프로그램이 있다면?

요즘 메타인지 쪽에 꽂혀 있어요. 그런데 사람들이 이 개념을 상업화하는 것 같아요. 진짜 메타인지는 내가 행복해지는 방법이거든요. 핵심은 자기 인식이에요. 나를 아는 게 중요한데, 이걸 자꾸 공부로 연결한단 말이죠. 공부가 잘 되는 건 부수적으로 오는 거예요. 메타인지를 잘 하니 공부라는 영역에서 계획도 잘 짜더라. 계획을 짜서 실행하다가 안 되면 조절도 하더라. 그렇게 덤으로 딸려오는 건데 너무 공부 쪽으로만 강조하더라고요. 저는 교육학적 메타인지가 아니라 심리학적 메타인지에 기반을 둔 프로그램을 짜고 있습니다.

Q. 심리학적 메타인지는 어떻게 다르죠?

메타인지에 기반을 둔 감정코칭이죠. 아이들이 ‘내가 위로받고 있구나’, ‘사랑받고 있구나’ 하는 걸 느낄 수 있게요. 위로받고 사랑받는다는 자존감이 바탕이 되어야만 비로소 뭐든지 할 수 있어요. 우리 딸이 상처가 참 많은 아이였어요. 저의 욕심 때문에 아이 머리가 절반이 빠졌고 신경정신과를 다녀야 했죠. 그런데 딸이 메타인지를 갖고 자기 조절이 되니까 뒤늦게 다시 공부해 보겠다고 하더니 의대를 가더라고요. 공부는 덤이라는 생각이 드는 거죠.

Q. 어떻게 혼자 메타인지를 조율할 줄 알게 되었을까요?

본인 말로는 저와 대화하면서라고 해요. 딸이 어떤 얘기를 할 때 “그걸 말이라고 해?” 아니면 “그게 가능하기는 한 것 같아?”하고 다그친 적은 없어요. “그래, 그런데 그렇게 생각한 이유가 있어?” 하고 물었고, “그러면 그게 실현 가능하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 물었던 것 같아요. 아이가 그걸 따라가다 보니까 이제는 본인 스스로 질문하기 시작했나 봐요. “그래서 이건 내가 언제까지 하면 되지?” 이런 식으로요.

제자들이 김영아 소장에게 전한 메시지들 [사진=안경선PD]

Q. 소장님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동력은 무엇인가요.

오늘 아침에 어떤 연락을 받았어요. 저와 대화하고 큰 삶의 방향을 잡았고 ‘반백살’이 된 작년에 자신을 위한 길을 택해 현재는 본인의 삶에 초점을 맞춰서 산다는, 저의 걸음에 삶을 다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저도 힘들었죠. 안면 기형이었고, 기차에서 떨어져서 죽을 뻔한 적도 있었죠. 덤으로 사는 게 너무 감사해서, 제가 할 수 있는 건 다 하려고 해요. 그런데 누군가 제게 ‘덕분에 제 삶을 다시 시작했어요’라든가 어떨 때는 ‘제2의 엄마’라고 불러주면, 그게 바로 저를 살게 하는 힘이에요.

Q. 지금 마음이 힘든 사람에게.

용기를 내세요. 아주 자그마한 힘이라도 내서 손을 내밀었으면 좋겠어요. 나의 노력을, 나의 애씀을 보여주는 거죠. 정말 죽을 것 같을 때, 아주 작은 힘이라도 한 발만 내밀면, 그 한 발 내민 곳에 누군가는 다가와서 손을 잡는다는 걸 기억하세요.

마지막으로 독서 치유 목적으로 읽기 좋은 책을 물었다. 이에 김영아 소장은 한 권을 꼬집어 이야기하기보다는 “뭔가 가슴도 간질간질하고 눈물도 찔끔 나는 그런 책”이 자기한테 맞는 치유 도구라고 답했다. 그럴 때는 형광펜을 들고 나에게 와 닿는 부분에 밑줄을 그으라고 권했다. 다 읽고 또 6개월쯤 뒤에 다른 색 형광펜을 들고 다시 읽어보라고. “그때 밑줄 그은 부분이 똑같으면 그 문제는 아직 해결이 안 된 거예요. 그런데 다른 곳이면, 이제 노력할 부분인 거죠.” 이렇게 자가 치유를 시도할 수 있지만, 혹시라도 가이드가 필요한 독자들에게는 『내 마음을 읽어주는 그림책』(김영아 저, 사우 출판사)을 추천했다. 그러고는 같은 책의 면지에 사인해 기자에게 건넸다.

“나, 하나 바로서는 것! 빛이 됩니다. 그 빛 퍼져가길…”

[독서신문 이자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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