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매거진=정서원 작가]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진행 중인 ‘수묵별미(水墨別美): 한·중 근현대 회화’ 전시는 공간과 작품이 하나가 되는 멋진 조화를 보여준다. 덕수궁의 전통적인 분위기 속에서 수묵화가 지닌 깊이 있는 정취가 더욱 또렷이 살아난다. 전시장을 거닐다 보면 마치 오래된 서화첩을 한 장 한 장 넘기는 듯한 기분이 든다. 붓의 흔적이 만들어내는 여백과 농담(濃淡)의 변화가 궁궐의 담벼락과도 자연스럽게 이어지며, 시간의 결을 느끼게 한다.
이번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과 중국미술관이 공동 기획한 행사로, 한국과 중국의 대표적인 근현대 수묵채색화 작품 148점이 전시된다. 총 4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전통적인 산수화, 화조화, 초상화부터 현대적인 구상 및 추상 작품까지 다양한 형식을 아우른다. 이를 통해 양국의 미술사가 어떻게 발전했는지 비교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전시에서 흥미로운 지점은 한국 수묵화와 중국 수묵화의 차이를 자연스럽게 체험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한국과 중국의 수묵화는 같은 매체를 사용하지만, 문화적 배경과 미학적 관점에서 차이가 있다. 한국화는 선과 여백의 미를 중시하며, 간결하면서도 운치 있는 표현을 특징으로 한다. 예를 들어, 이상범의 전통 산수화는 자연의 섬세한 묘사가 돋보이며, 장우성은 현대적인 감각을 더한 수묵화를 선보인다. 김기창은 독특한 필치와 색감으로 한국적 정서를 표현했다.
반면, 중국화는 기운생동(氣韻生動)과 운율감을 강조하며, 필묵의 기세와 흐름을 중요하게 여긴다. 명대의 동기창(董其昌)이 남종화(南宗畫) 이론을 체계화하며 발전시킨 흐름 속에서, 현대 중국화 역시 이러한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쉬베이훙(徐悲鸿)의 ‘전마(战马)’(1942)와 린펑몐(林风眠)의 ‘물수리와 작은 배(鱼鹰小舟)’(1961)와 같은 작품을 통해 중국 수묵화의 개성과 미학을 체험할 수 있다.
이러한 차이는 회화의 철학적 배경에서도 기인한다. 한국 수묵화는 유교적 실용주의와 불교적 명상을 함께 반영하며, 자연을 있는 그대로 포착하기보다는 화가의 주관적인 감상을 중시했다. 반면 중국 수묵화는 도교와 선(禪)의 영향을 받아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운 관계를 강조하며, 필묵의 기세와 흐름을 통해 우주적 질서를 표현하려 했다. 이러한 차이를 고려하며 작품을 감상하면, 단순한 기법의 차이를 넘어 문화적 맥락까지 깊이 이해할 수 있다.
전시에서는 공필화(工筆畵)와 초상화의 차이를 엿볼 수 있는 작품들도 등장한다. 공필화는 매우 섬세한 붓질과 정교한 색채 사용이 특징으로, 중국 송대(宋代) 궁중에서 발전한 기법이다. 이는 한국에서도 영향을 받아 조선 후기의 궁중회화에서 찾아볼 수 있다. 공필화는 철저한 사전 연습과 기교를 요구하며, 대개 권력층을 위한 정교한 기록화 역할을 하였다.
그런데 조선의 초상화는 실존 인물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데 집중하며, 유교적 전통과 조상 숭배 문화 속에서 발전하였다. 단순한 외형적 묘사를 넘어 인물의 정신적 깊이를 담아내려 했다. 이러한 초상화는 인물의 내면과 성격을 전달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으며, 조선의 독자적인 회화 전통을 반영하고 있다. 얼굴의 묘사를 정밀하게 하는 한편 옷과 배경은 단순하게 처리하는 특징이 있다. 이는 인물의 본질을 표현하는 데 집중하고자 한 조선 화가들의 의도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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