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매거진=황명열 기자] 서울시립미술관은 국내외를 무대로 활발히 활동해 온 회화 작가 강명희(1947~)의 개인전 ‘강명희-방문’을 오는 3월 4일부터 6월 8일까지 서소문본관 1층 전시실에서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작가가 60여 년에 걸쳐 구축해 온 풍부한 회화 세계를 한자리에서 조망하는 자리로,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은 대형 회화 작품 다수가 소개된다.
강명희는 1972년 프랑스로 떠난 이후 몽골 고비사막, 남미 파타고니아, 남극, 인도, 홍콩, 중국, 대만 등 세계 곳곳을 방문하며 초기의 태초 풍경을 끈질기게 탐구해 왔다. 이러한 유목적 태도를 잘 보여주는 전시 제목 ‘방문’은 작가가 작업 과정에서 마주친 일시적 장소들과 그곳에서 받은 예술적 영감을 함축한다. 겉으로는 추상적 색과 형태로 가득 차 있지만, 실제로는 구체적인 자연 풍광과 그 내면적 본질에 대한 고찰이 작품 전반에 자리한다.
이번 전시는 작가가 제주도에 정착한 이후의 근작부터 프랑스 체류 시절 및 해외 여행지의 풍경을 담은 작품, 그리고 작가의 초기 작업에 이르는 시공간적 흐름을 크게 세 개의 섹션으로 구성했다.
첫 번째 섹션 ‘서광동리에 살면서’에서는 작가가 2007년 귀국 후 제주도에 머물며 제작한 최근의 작업이 전시된다. 한라산, 황우치 해안, 대평 바다, 산방산, 안덕계곡 등 제주 곳곳을 그린 대형 회화는 작업실에서 바라본 풍경이나 자연 속 정물을 반복적으로 관찰하며 그려낸 결과물이다. 이 파트에서 관람객들은 시간이 축적된 자연의 아름다움과 역동성, 그리고 그 이면에 존재하는 파괴와 상처에 대한 작가의 성찰을 함께 느낄 수 있다.
전시 메인 타이틀이기도 한 두 번째 섹션 ‘방문’은 프랑스에 거주하며 해외여행을 통해 완성된 작품들로 구성된다. 강명희는 몽골, 칠레, 남극 등 접근하기 어려운 지역을 직접 찾아가 그곳에서 마주한 극적인 자연 풍경을 화폭에 담았다. 몽골 고비사막은 작가가 여덟 번이나 재방문할 정도로 깊이 빠져든 장소로, 작품 속에서 자연과의 치열한 대화가 그대로 드러난다. 또 프랑스 파리와 투렌(Touraine)에 위치한 작업실에서 탄생한 회화들은 작가의 일상적인 정서와 기억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특히 1990년대부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투렌 작업실의 ‘방문’시리즈는 작가가 뒤뜰 정원에서 만난 꿩 한 마리로부터 영감을 받은 것이다. 이처럼 일상의 순간을 예술적 체험으로 전환하는 강명희의 태도는 시공간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이어진 회화 여정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마지막 섹션 ‘비원(秘苑)’에서는 1960~80년대에 제작된 초기작들이 소개된다. 비교적 구상적이고 직접적인 사회·정치적 메시지를 담은 초기 작품부터 점차 암시적인 표현과 추상적 접근으로 변모해 가는 과정은 강명희 예술 세계의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1970년대 중반 작업인 ‘개발도상국’ 시리즈에서는 근대화에 대한 작가의 비판적 시각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이후 암시적이고 은유적인 경향으로 변화하며, 궁극적으로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작가만의 독자적 언어를 확립한다.
이번 전시에서 강명희의 회화는 대범한 색채와 붓 터치 뒤에 깊은 사색과 끝없는 ‘비워내기’의 과정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생동감 넘치는 자연의 형상과, 그 속에서 벌어지는 파괴와 죽음, 생성과 소멸이 작가 특유의 회화적 언어로 표현된다. 관람객은 거대한 캔버스 앞에서 마치 경계 없는 자연 속에 들어선 듯한 감각을 체험하며, 작가가 재현하고자 한 ‘태초의 풍경’에 동참하게 된다.
관람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9시까지 가능하고, 매주 월요일은 휴관이다. 매일 오후 3시에 도슨트 설명이 제공된다. 자세한 내용은 서울시립미술관 안내 데스크 또는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현대문명과 기술이 미치는 영향으로 자연의 위기가 날로 가속화되고 있는 지금, 강명희의 회화 세계는 우리 시대의 상처와 아픔을 예술적 에너지로 보듬는다. 제주도의 바람과 프랑스의 정원, 몽골 사막과 남극의 얼음까지, 작가가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포착한 자연의 위엄과 생명력을 만날 수 있는 이번 전시는 생동하는 예술의 힘을 새삼 깨닫게 할 소중한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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