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른카스텔쿠에스·트리어=연합뉴스) 성연재 기자 = 프랑스 보주 지역에서 출발한 모젤강은 독일-룩셈부르크 국경을 거쳐 코블렌츠까지 흘러 라인강과 만난다.
가파른 경사면에 형성된 포도밭을 양옆으로 두고 유유히 흐르며 구불구불한 물길을 만든다.
모젤강 주변이 알려진 것은 율리우스 카이사르 때였다.
카이사르의 병사들은 기원전 58년에서 50년 사이에 트레베리강(모젤강의 옛 이름)을 처음 정복했다.
당시 강 주변은 트리베리족의 영토로, 게르만족을 방어하기 위한 중요한 길목에 있었다.
카이사르는 지금의 프랑스에 해당하는 갈리아 지방을 속주로 삼고 있었지만, 동쪽의 게르만족에 대한 경계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 모젤강변의 숨은 보석, 베른카스텔쿠에스
베른카스텔쿠에스는 모젤강을 따라 펼쳐진 수많은 도시 중 가장 낭만적인 곳 가운데 하나다.
훈스뤼크 산맥 기슭에 자리 잡은 이 아름다운 마을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리슬링 와인 산지다.
베른카스텔쿠에스의 포도밭은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포도밭 중 하나로 유명하다.
마을 곳곳에 남아있는 중세 시대의 목조 건물들은 마치 동화 속 한 장면을 연상시킨다.
주변 와이너리는 100곳이 넘는다.
이곳의 랜드마크는 란츠후트성이다.
4세기 로마는 로마제국의 라인강 국경까지 보급품을 전달하기 위해 이곳에 성을 세웠고, 성은 13세기 말 트리어 대주교에 의해 다시 축조됐다.
시내 맞은편 산꼭대기에 있어 강과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성 방문은 무료다. 성 인근까지 차를 몰고 갈 수 있어 편리하다.
성 가운데 있는 레스토랑에서는 드넓은 포도밭이 한눈에 보인다.
이곳은 특히 하이킹을 즐기는 사람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여행지다.
'모젤슈타이크 트레일'(Moselsteig trail)은 모젤강 인근을 두발로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포도밭이 층층이 쌓인 계단식 언덕과 아름다운 강변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난이도에 따라 모두 24개의 코스가 마련돼 있다.
24개 코스의 길이는 365㎞로, 공식 홈페이지에는 '1년 동안 매일 1㎞씩 걸을 수 있는 코스'라고 소개돼 있다.
이 코스는 프랑스와 룩셈부르크, 독일 코블렌츠까지 이어진다.
와인 애호가라면 이곳의 와인 박물관 방문도 좋은 선택이다.
모젤 지역의 와인 제조 역사와 함께 다양한 빈티지 와인을 시음해볼 수 있다.
그러나 필자가 방문했을 때는 한겨울이라 대부분의 박물관과 와이너리가 문을 닫았다.
무작정 찾아간 한 와이너리도 문을 닫았다.
이곳 직원으로부터 시내 한가운데 있는 브라우하우스라는 곳을 가보라는 귀띔을 받고 그곳으로 향했다.
옛 기차역 건물을 리모델링한 이곳은 지역에서 생산한 다양한 와인과 전통 음식을 판매하고 있었다.
매니저는 '타니시'라는 상표의 리슬링을 소개했다.
상큼하면서도 리슬링 특유의 가볍고 상쾌한 맛에 당도도 높은 편이어서 와인 초심자에도 무리가 없었다.
와인을 잘 모르는 '와린이'(와인+어린이) 수준에 맞는 와인을 찾은 것 같았다.
이 지역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베른카스텔 닥터'는 맛보지 못했지만 타니시가 마음에 들었다.
와이너리 주소를 물었더니 매니저는 흔쾌히 주소를 불러줬다.
그러나 애써 찾아간 와이너리도 문이 닫혀있어 아쉬움을 줬다.
◇ 짙은 안개 속 어떤 비밀이…독일의 고도(古都) 트리어
트리어는 짙은 밤안개에 뒤덮여 있었다.
로마 시대 지어진 '포르타 니그라'가 보이는 곳에 여장을 풀었다.
검은 문이란 뜻의 포르타 니그라는 독일에서 가장 잘 보존된 로마 시대 성벽의 성문이다.
서기 170년에 세워진 성벽은 길이가 6㎞에 달했다고 한다.
이곳은 알프스 북쪽에서 세워진 로마 제국의 가장 큰 도시였다.
조폐국과 원형 경기장도 들어설 정도로 도시는 번성했다.
원형 경기장에서 전차 경주가 열렸다는 기록도 있다.
콘스탄티누스 대제(306∼337) 통치 때 도시는 더욱 커지고 정비됐다.
이 시기에 콘스탄티누스 대성당과 같은 건물들이 세워졌다.
트리어에는 원형 경기장과 대규모 목욕탕 등이 남아 있다.
포르타 니그라 정문을 통과해 걸으면 광장이 나온다.
중세부터 있었던 광장은 여전히 트리어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었다.
저녁 식사 후 포르타 니그라 앞의 야외 카페를 찾았다.
추운 겨울이었지만, 팰릿 난로 앞에 현지인 중년 여성들이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활짝 웃으며 맞이한다.
유쾌한 표정과 끊이지 않는 웃음이 평소 알고 지내던 독일인들의 모습과는 사뭇 달라 보였다.
그 중 한 명이 이렇게 말했다.
"평생 빈틈없는 업무를 하며 살아왔지만, 최근 은퇴를 한 뒤 인간답게 웃으며 살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답니다."
다음 날 아침 트리어 대성당을 찾았다.
성당은 다른 유럽의 어느 도시에서 흔하게 만날 수 있는 그저 그런 성당의 모습이 아니었다.
1235년에 지어진 성당은 쾰른 대성당과 함께 독일 3대 성당으로 불릴 만큼 고색창연하면서도 기품이 있었다.
특히 예수 '성의'(the Holy Tunic)가 있어 순례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일반에 공개되지 않고 특별할 때만 관람이 가능하다.
때마침 오르간이 연주되고 있었는데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주말에는 하루에 두 차례 오르간이 연주된다고 했다.
카를 마르크스의 생가가 있다고 해서 찾았는데 때마침 문을 닫았다.
베트남과 중국 등 공산권 단체 관광객이 바깥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었다.
15∼17세기 마녀사냥의 광기가 유럽 전역을 뒤덮었을 때, 트리어에서는 가장 많은 여성이 마녀로 몰려 화형당했다.
1581∼1593년 이곳에서 화형당한 여성의 숫자만 해도 368명에 이른다.
특히 1588년 트리어의 22개 마을 가운데 2개 마을에는 살아남은 여성이 단 1명뿐이었다고 한다.
박물관을 비롯해 도시 전체를 돌아봤는데, 마녀사냥의 흔적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박물관에서 만난 한 학예사는 마녀사냥의 기록은 오로지 책에서만 찾아볼 수 있다고 귀띔했다.
어두운 과거를 숨기려는 것은 인지상정인지도 모른다. 인류는 언제나 끔찍한 과오를 저질러 왔다.
광기에 휩싸여 수많은 사람을 해쳤던 그 광기는 역사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성찰이 없다면 언제든 다시 살아날 수 있다.
트리어의 포르타 니그라를 덮고 있던 짙은 안개는 언제 걷힐지 몰랐다.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5년 2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polpor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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