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국제뉴스) 박종진 기자 = “같은 땅 다른 나라” 고려와 조선 비교 연구서(공창석(매경안전환경연구원 원장) 지음, 박영사 483P)가 출간됐다.
공창석 매경안전환경연구원 원장의 “같은 땅 다른 나라”는 고려와 조선의 전 분야을 17장의 독립된 내용으로 나눠 6년 동안 비교연구 했다.
이를 보면 ‘고려 황제 왕건, 조선 왕 이성계’, ‘고려의 개경 나성(羅城), 조선의 한성 도성(都城)’, ‘고려의 광화문, 조선의 광화문’, ‘고려 개경의 중앙시장, 조선 한성의 중앙시장’, ‘축제하는 고려 시장, 제사 지내는 조선 시장’, ‘대접받는 고려 상인, 천대받는 조선 상인’이 비교 연구돼 실렸다.
또, ‘고려는 국제 항구, 조선은 국내 항구’, ‘무역하는 고려 왕, 농사짓는 조선 왕’, ‘화폐 선진국 고려, 화폐 후진국 조선’, ‘인권 있는 고려 노비, 인권 없는 조선 노비’, ‘혁명을 꿈꾼 고려 노비, 주인을 암살한 조선 노비’ 등을 자세히 분석 했다.
또한, ‘고려의 반역, 조선의 반정’, ‘상비군의 나라 고려, 예비군의 나라 조선’, ‘고려의 최충헌 정권, 조선의 세도 정권’, ‘고려의 요동 정벌, 조선의 요동 정벌’, ‘고려의 열린 종교 사상, 조선의 닫힌 종교 사상’, ‘고려의 소중화, 조선의 소중화’ 에 대해 조사하고, 현장 답사 등을 통해 이해를 도왔다.
공창석 매경안전환경연구원 원장(76)은 “고려는 동시대의 선진국이었다. 백성들은 좋은 옷을 입을 자유, 좋은 집에서 살 수 있는 자유를 누렸다. 신분을 떠나서 누구나 돈이 있으면 임금만이 입는다는 용이나 봉황을 수놓은 화려한 비단옷을 입고, 대궐 같은 집을 짓고 살 수 있었다. 그것은 태조 왕건이 고려 황제국을 세우고 복식과 주거에 대한 규제와 차별을 혁파함으로써 부여된 자유였다.”고 말했다.
이어 “고려는 동시대에 세계 어디에도 이 같은 자유를 누리는 나라가 없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런 자유의 바탕에서 대규모 축제를 열고 공연예술을 꽃피우며 격구 등의 스포츠를 즐겼다. 무역이 성행하고 사람들은 해외여행을 많이 다녔다. 남녀평등과 열린 종교와 사상은 오늘의 본보기가 되고, 이 또한 시대를 앞서는 선진문화의 모습이라 할 것이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조선은 복식과 주거가 엄히 규제되고 사람들은 신분에 따라 차별받았다. 심지어 임금이 사는 궁궐도 99간 이내로 제한되고, 아무리 돈이 많아도 99간 이상의 집을 지어 살 수 없었다. 축제는 검약 기풍을 훼손한다며 폐지되고, 공연예술과 격구 등은 소수 가진자의 전유물로 이었다.”고 주장했다.
또 “철저한 쇄국으로 인해 민간 무역이 막히고, 백성들은 해외로 나가지 못했다. 남녀를 차별하고, 성리학 외의 종교와 사상을 탄압했다. 스스로 제후국으로 자리매김하고 중국(명나라)을 큰 나라로 섬김으로써, 자주성과 자긍심이 한 차원 떨어졌다.”고 했다.
공창석 원장은 “고려보다 잘 사는 선진 나라를 만든다는 조선이 도리어 고려에 비해 문화가 풍요롭지 않은 나라가 됐다.”며 “결국 고려와 조선을 대비하면, 고려가 오늘의 한국과 가장 닮은 모습의 나라라는 결론에 이른다.”고 비교 연구 결과를 밝혔다.
특히 “오늘의 문화 모습이 조선을 뛰어넘어 고려에 닿아 있는 사실을 발견한다. 이제 우리 문화와 한류의 뿌리를 고려와 연계하는 노력을 서둘러야 한다.”고 피력했다.
공창석 매경안전환경연구원 원장(76)은 경남 산청 출신으로 동아대·동아대 대학원 경제학 박사로 22회 행정고시에 합격, 내무부, 대통령비서실(민정), 경상남도, 소방방재청, 경상남도 행정부지사, 영산대·경남대학교 초빙교수, 한국승강기안전관리원 원장, (주)부영주택 총괄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중국 인민대학교 한어국제보급연구소(汉语国际推广研究所)의 초빙으로 북경에서 한 · 중 교역사도 연구했다.
저서는 ‘한국상인’, ‘대상인의 시대’, ‘위대한 한국상인’이 있다.
다음은 고려와 조선을 비교 연구한 “같은 땅 다른 나라”의 핵심 내용이다.
1장은 고려 태조 왕건과 조선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두고 서로 다른 차이점을 살펴보고, 그들이 나라를 건국하는 과정과 태조로서 인생을 마감하는 모습 등을 비교했다. 이것은 고려와 조선의 시작과 꼭짓점의 비교라 할 것이다.
2장과 3장은 고려 수도 개경과 조선 수도 한성을 비교하고 있다.
2장은 수도를 둘러싼 성의 비교로 개경은 나성(羅城)이고 한성은 도성(都城)이라 부르는데, 왜 비슷한 성을 두고 이름을 달리 부르는지를 규명한다. 그리고 두 성의 크기, 면적, 형태 등을 비교했다.
3장은 고려 궁궐의 정문과 조선궁궐의 정문 이름이 광화문으로 발음이 똑같다는 사실을 밝혔다. 그러므로 우리 한국은 궁궐 정문의 이름이 1100여 년 이전부터 광화문이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지금까지 관심을 두지 않고 모르고 지내왔다.
고려를 멸망시키고 한성으로 천도한 조선이 새 궁궐의 정문 이름을 왜 고려와 같은 이름으로 지었을까? 한편 광화문 앞의 대로는 고려와 조선 모두 폭 58m 이상으로 넓었다.
특히, 고려의 대로에는 격구장과 공연 무대가 설치되고, 격구 경기가 열리고 공연이 펼쳐졌다. 이 대로는 그야말로 동시대의 세계에서 유래를 찾기 어려운 우리의 독창적인 문물이다.
그러나 조선은 격구장과 공연장이 설치되지 않았는데, 조선이 대로의 폭을 그렇게까지 넓힌 까닭을 규명했다.
4장, 5장, 6장은 고려와 조선의 중앙시장을 다루고 있다.
4장은 고려의 중앙시장(십자거리시전)과 조선의 중앙시장(종로시전)에 관해 건립 시기, 위치, 크기, 형태 등을 비교했다. 그리고 누가 더 명품 시장인가를 밝히고 있다.
5장은 십자거리시전에서 열린 5월 단오 축제와 종로 시전에서 지낸 제사와 정월 대보름 지신밟기를 깊이 있게 고찰됐다. 그리고 두 시장의 풍물과활력을 다각도로 비교됐다.
6장은 고려 상인과 조선 상인의 사회적 위상과 신분을 구체적으로 표현했다. 특히 상인의 관직 진출, 상인에 대한 행정 관리, 상인의 역량과 문화생활 등을 대비하여 조명하고 있다.
7장과 8장은 무역을 주제로 비교됐다.
7장은 고려는 국제항(예성항)이 있고, 조선은 국제항이 없는 사실을 밝혔다. 구체적으로는 고려 예성항의 번창과 예성항에 관한 시와 노래를 살피고, 이와 대비해 조선의 대표 항구 마포의 실상과 ‘마포나루 굿’을 살펴보고 있다.
8장은 임금의 내탕금(비자금) 비교다. 고려 임금은 내탕금을 무역 수익으로 많이 채웠지만, 조선 임금은 무역 수익은 별로이고 토지 수익이 거의 전부였다. 이를 통해 무역의 나라 고려와 농업의 나라 조선의 상황을 알 수 있고, 조선의 임금들이 그토록 영농에 매달린 까닭을 이해할 수 있다.
9장은 경제와 상업의 밑바탕인 화폐를 비교하고 있다.
고려가 화폐 발행에 성공한 화폐 선진국이었고 조선이 화폐 발행에 실패한 화폐 후진국이었던 사실을 구체적으로 서술했다. 그리고 조선의 화폐경제가 발전하지 못한 연유를 고찰했다.
특히 조선의 대표 화폐 상평통보가 국적 없는 화폐임을 최초로 지적하고 왜 그렇게 이름이 지어졌는지를 밝혔다. 이는 우리 화폐에 관한 하나의 학문적 성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0장과 11장은 노비에 관한 비교다.
10장은 고려 노비와 조선 노비가 같은 노비가 아니고, 전자는 생명권이 부여되고 후자는 생명권이 박탈된 근원적으로 다른 노비임을 밝히고 있다.
11장은 고려 노비는 비록 수가 많지 않았지만 만적처럼 노비해방을 위해 봉기했으나, 조선 노비는 수가 수백만이나 되면서도 그러하지 못한 것을 구체적으로 고찰하고 있다.
12장은 고려 무신정변과 조선 인조반정을 비교하며 반역(反逆)과 반정(反正)의 역사 기록을 다루었다.
반역과 반정의 기록에 대한 그간의 해석과 평가는 달리 볼 여지가 있음을 예를 들어 살펴보았다. 특히 최충헌의 반역과 이성계의 반정을 대비하면서 이성계의 반정 기록이 승자의 기록임을 밝히고 있다.
13장은 고려와 조선의 상무정신과 무력에 대한 비교다. 둘의 차이를 고려는 상비군체제, 조선은 예비군체제라는 틀로 서술했다. 아울러 조선이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참화를 겪고 청나라에 패배하고서도 그리고 망국에 이르기까지 강력한 상비군을 두지 않은 까닭이 제후국이었기 때문인 것으로 서술했다.
14장은 고려의 최충헌 정권과 조선의 세도 정권을 직접 비교했다. 정권의 탄생, 인재 양성, 상업정책 등의 비교를 통해 두 정권의 정체성과 지향하는 바를 드러내도록 했다.
이 비교는 고려 말과 조선 말의 정황을 대비하여 이해할 수 있게 한다.
15장은 고려말과 조선 초에 도모된 요동정벌을 비교했다. 고려의 요동정벌은 이성계가 위화도회군의 쿠데타를 일으킴으로써 실패했다.
그러나 조선의 요동 정벌은 병력을 동원해 보지도 못하고 실패하는데, 왜 그러했는지를 다루고 있다.
16장은 종교와 사상의 비교다.
고려의 열린 종교와 사상은 최충헌 정권의 불교 쇄신과 혜심의 유불일치설을 중심으로 하여 살펴보고 있다. 조선의 닫힌 종교와 사상은 조선이 불교, 도교, 무교 등을 어떻게 얼마만큼 탄압했는지 그리고 성리학이 어떻게 종교화되고 종교의 윗자리에 군림했는지를 살펴보았다.
17장은 이 책의 맺음말이기도 하다. 고려와 조선 모두 소중화란 말이 회자했다.
그러나 고려의 소중화는 자주성을 북돋우고 조선의 소중화는 자주성을 상실한 것으로 근원이 다르다. 그러기에 소중화란 말은 고려와 조선의 다름과 차이를 대표하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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