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그리드 누네즈 소설 '그해 봄의 불확실성'
(서울=연합뉴스) 황재하 기자 = ▲ 내가 사랑한 거짓말 = 장석남 지음.
"서랍의 거미줄 아래 / 아버지의 목도장 / 이름 세 글자 / 인주를 찾아서 한번 종이에 찍어보니 / 문턱처럼 닳아진 성과 이름 // 이 도장으로 무엇을 하셨나 / 눈앞으로 뜨거운 것이 지나간다 / 이 흐린 나라를 하나 물려주는 일에 이름이 다 닳았으니"(시 '목도장' 에서)
시인이 낡은 책상 서랍에서 아버지의 목도장을 발견했는데, 다 닳아서 이름이 잘 찍히지 않을 지경이다. 시인은 고단한 삶을 견뎠을 아버지를 생각하며 눈시울을 붉히고 힘든 세상을 원망한다.
'내가 사랑한 거짓말'은 장석남 시인이 아홉 번째로 펴낸 시집이다. 장 시인이 시집을 낸 것은 2017년 편운문학상·지훈상·우현예술상 수상작인 '꽃 밟을 일을 근심하다' 이후 약 8년 만이다.
암울한 사회 현실에 대한 시인의 날카로운 시선을 담은 시들이 수록됐다. "나는 법이에요 / 음흉하죠 / 하나 늘 미소한 미소를 띠죠"('법의 자서전'), "산송장들을 만드느라 / 관청의 서류마다 죄가 난무하고"('서울, 2023, 봄') 등 날선 표현들이 등장한다.
깊은 사유와 풍자를 담은 시 74편이 수록됐다.
창비. 148쪽.
▲ 그해 봄의 불확실성 = 시그리드 누네즈 지음. 민승남 옮김.
영화 '룸 넥스트 도어'의 원작 소설 '어떻게 지내요' 저자이자 2018년 전미도서상을 받은 소설 '친구'를 쓴 미국 작가 시그리드 누네즈의 신작 장편이다.
이 책은 영국 작가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세월'에 등장하는 "불확실한 봄이었다"라는 문장을 인용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어 날씨와 글쓰기, 산책에 대한 화자의 생각이 길게 서술돼 마치 수필처럼 읽힌다.
화자는 뉴욕에 거주하는 노년의 작가인데 우연히 친구 지인의 집에 머물면서 반려 앵무새를 대신 돌봐주는 임무를 맡는다.
앵무새의 주인은 가족과 함께 여행을 떠났다가 코로나19 봉쇄 조치 때문에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게 되고, 이에 부득이 화자에게 앵무새를 맡긴다.
그런데 화자 이전에 앵무새를 맡아서 돌보다가 홀연 떠나버렸던 젊은 대학생이 제멋대로 다시 나타나면서 화자는 이 청년과 불편한 동거를 하게 된다.
화자는 세상 사람들을 단절시키고 격리한 코로나19 때문에 오히려 앵무새와 방황하는 대학생과 함께하게 되는 모순적인 상황에 놓인다.
열린책들. 320쪽.
jae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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