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매거진=권선미 작가] 요즘 주변 친구들은 일본 여행을 자주 간다. 돌아오는 길엔 많은 이야기보따리와 함께 양손 두둑히 선물을 가지고 온다. 어디 한번 여행 나간 지가 오래된 나로선 매번 여행 선물을 받기만 하는 게 여간 미안한 게 아니다. 기쁜 만큼 미안하다.
이번에 받은 선물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게 있다면, 바로 이 오이오에서 나온 호지차티백이다.
호지차는 녹차를 한 번 더 볶아서 만든 차인데, 카페인이 녹차보다는 높다고 한다. 어쩐지 며칠 전 저녁에 이걸 마셨다가 새벽 두 시가 넘어 잠들었다. 이 티백 포장지의 뒷면엔 하이쿠가 쓰여 있는데, 차를 우려내는 동안 시구를 음미하라는 의미로 넣어둔 것이라 한다. 티백은 모두 50장. 나는 50개의 하이쿠를 만날 수 있다.
하이쿠는 일본 시조의 한 형태로, 세 줄로 끝나는 짧은 시이다. 전통대로라면 계절어가 들어가야 하지만 현대로 오면서는 계절어가 빠진 하이쿠도 많이 보인다. 하이쿠엔 대체로 작가의 심상보다는 눈 앞에 펼쳐진 것들에 대해 묘사가 많고, 비유적 묘사보다는 직접적인 묘사가 많다.
古池や
蛙飛び込む
水の音
오랜 연못에
개구리 뛰어드니
물 튀는 소리
이 하이쿠는 마츠오 바쇼가 지은 것으로,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하이쿠로 꼽힌다. 또 하이쿠 창작의 가장 기본이 되는 형태를 가진 대표적인 작품이기도 하다. (위키백과)
처음 하이쿠에 대해 알게 되었던 건, 20대 초반 샐린저의 책에서 인용되었던 하이쿠와, ‘폭두백수 타나카’에서 짧은 시조를 즐기는 타나카의 모습을 보고서다. 아주 잠깐 책 속에서 만났을 뿐이지만 나는 금방 하이쿠의 매력에 빠지게 되었었다.
개인적으로 시집은 잘 읽지 않지만(왜일까 아직 시의 미학을 잘 모르겠다.) 하이쿠는 정말 좋아한다. 예를 들어 ‘소쩍새 슬피 우는~’이라는 시구가 있다면, 하이쿠에서는 ‘소쩍새의 소리’라는 시구로 모든 게 끝난다. 큰 감정이 들어가 있지 않고, 내용이 짧아 담백하게 느껴진다. 가끔 혼자서 오랜 시간 길을 걸을 일이 생기면 심심풀이처럼 하이쿠를 지어보기도 한다.
눈이 내린 1월
주머니 속의 먼지
햇빛이 눈부셔 감은 두 눈
이런 식으로 혼자서 되뇌며 걷다 보면 마치 박제된 한 장면 속의 주인공이 된 기분이다. 그렇다. 하이쿠는 마치 그 풍경을 박제해서 사진으로 만들어 놓은 것만 같다. 글로 그림을 그린다면 하이쿠가 되지 않을까.
시를 해석해야 하는 수고가 적고, 눈 앞에 펼쳐지는 듯 단순한 게 매력적이다.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는 것이 마음에 든다. 더 많은 고전 하이쿠가 궁금하니 만일 일본에 여행을 가게 된다면 꼭 하이쿠 시집을 몇 권 사와야지. “그땐 꼭 선물 되갚음을 하도록 할게. 기다려줘 친구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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