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겠다는데도①

실시간 키워드

2022.08.01 00:00 기준

사랑하겠다는데도①

문화매거진 2025-01-27 13:28:19 신고

▲ '사랑하겠다는데도' / 사진: 배윤음 제공
▲ '사랑하겠다는데도' / 사진: 배윤음 제공


[문화매거진=배윤음 작가] 책이 나왔다. 아니 사실 나온 지 좀 되었다. 6월에 출간되었으니 만 세달이 넘어 쓰는 셈이다. 게으른 사람. 게으른 사람이 쓴 사랑 타령을 묶었다. ‘사랑하겠다는데도.’

“책 내고 싶어요. 언제가 될진 모르겠지만. 언젠가는요.”

작년 12월 27일 삼각지의 한 와인바에서 함께 칼럼을 기고하고 있는 흰 작가님과 소담한 송별회를 지냈다. 송년회 하면, 그래. 다들 신년 포부나 다짐 같은 거, 으레 하곤 하니까. 우리도 서로에게 물었다. “작가님, 새해엔 뭐가 하고 싶으세요? 이루고 싶은 게 있나요?” 작가님은 건강하고 싶다고 했다. 도전해보고 싶은 일도 조금씩 여러 개가 있는데, 차근차근 잘 해내보고 싶다고. 그즈음 나는 멘탈 컨디션이 한창 웃돌던 시기라 이것저것 즐기는 데에 급급해서 원하는 바, 계획하는 바가 없어 대답하기 곤란했다. 신년 포부는 아니지만, ‘언젠가’로 미뤄두던 작은 소망을 말했다. 출간해 보고 싶다고. 뭘 쓸지 소설일지 에세이일지 시일지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았지만 각 잡고 키보드 앞에 앉아 원고 하나 완성해 보고, 나아가 서점 매대에 한 번 펼쳐져 보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참 각 하나 제대로 안 잡힌 뜬구름 같은 소리다 싶었는데 흰 작가님은 눈을 빛냈다. 머쓱한 마음에 테이블을 두드리던 내 손에 오른손을 덥썩 포개더니 몸을 가까이 하고 말했다. 

“너무 멋져요! 작가님이 책 쓰신다면, 제가 표지 그려 드리고⋯! 그려드리면 어때요? 아니, 물론 원하실 경우에지만요⋯.”

나는 망설이느라 바쁜데 어떤 사람은 값비싼 계기를 포장까지 예쁘게 해 스윽 내민다. 작가님은 그저 응원의 리액션 정도였을 수도 있지만 나는 기쁜 마음으로 등 떠밀렸다. 내 글을 기다려준대도 고마울 일을, 감사한 재능을 부려 선물하겠다는 저 귀한 마음이 어디 흔한 일인가. 팍팍한 세상에 눈치 보기 바빠 죽던 내가 덥석 무는 수밖엔 없었다. “작가님, 무르기 없기예요.” 

그렇게 눈이 참 자주 내리던 지난 겨울, 바쁘게 지냈다. 서촌에 가 앉아 원고를 쓰고 묶고 수정하고 배치하고 무한 퇴고, 퇴고, 퇴고. 이왕에 마음 먹은 거 가장 빠른 길을 택해보잡시고 결정한 그간의 사랑 타령 엮음집이었는데, 이마저도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20대 초반 앳된 손이 썼을 글들을 모아 대면하는 일도 보통 수치스러운 것이 아니었고 비교적 최근에 썼던 글도 예전과 비교해 영 늘지 않은 필력이 드러나는 것 같아 좌절했다. 날것을 의미 삼아 그대로 박제하느냐, 그래도 세상에 내놓을 책인데⋯ 그럴싸하게 수정하느냐 고민도 여러번이었다. 무엇보다 힘들었던 점을 꼽자면 사랑만 하면 지독하게 앓느라 놓친 게 많았을 나를 대면하는 일이 바로 그러했다. 사랑 타령, 지겨웠을 만도 한데. 기운도 좋았구나 배윤음. 나를 좀 사랑해보려 했는데. 파헤칠수록 미련한 지난날의 나를 꿀밤 때려주고 싶어 신음했다. 그렇게 한겨울부터 봄의 허리에 오기까지 지지부진한 원고와 씨름할 동안 흰 작가님은 기다려주었다. 중간중간 그림의 느낌을 잡는 데 도움이 될까 싶어 퇴고 중인 원고를 보내면 바쁜 와중에도 응원의 답장을 잊지 않았다. 그녀의 비타민 캔디같은 응원에 힘입어 다시 앉아 다시 썼다. 자잘한 고비를 넘기고 넘겨 완성한 원고의 출간 시기가 정해지고, 우리는 삼각지에서 다시 만났다.

▲ 단상집에 등장하는 키워드 / 사진: 배윤음 제공
▲ 단상집에 등장하는 키워드 / 사진: 배윤음 제공


단상집에 등장하는 키워드들을 모아 배치해보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로 시작해 나는 메모하고, 작가님은 가져온 아이패드로 스케치했다. 스케치라기엔, 내 눈엔 퍽 완성도 있어 보였다. 워낙 까다로운 성격 탓에 색감부터 배치, 그림에 이용할 도구까지 꼼꼼히 회의했다. 나로선 첫 책이고, 선뜻 표지를 선물해주실 작가님께 누가 되지 않기 위해 더더욱 기승을 부렸다. 내 맘에 쏙 드는 색감을 명확히 표현하기 위해선 아이패드를 사용하는 편이 좋겠단 작가님의 의견이 있었는데, 또 작가님이 도화지에 직접 그린 동양화도 포기하기 싫었다. 매 주제마다 선택의 연속이었다. 함께 볕 잘 드는 브런치 집에서 프렌치 토스트를 잘라 먹으며 이렇다 저렇다 할 회의 내용들을 정리했다. 결정된 바는 이러했다. 

1. 동양화일 것
2. 레퍼런스의 배색을 최대한 구현할 것
3. 고래는 좀 무서워 보이는 종으로!
4. 엉망으로 깎은 사과는 빠른 시일내에 준비해 촬영, 전송할 것
5. 카메라 대신 옛날 폴더폰 레퍼런스를 찾아 구현할 것

▲ 송흰 작가님의 아이패드 스케치 / 사진: 배윤음 제공
▲ 송흰 작가님의 아이패드 스케치 / 사진: 배윤음 제공


▲ 송흰 작가님의 아이패드 스케치 / 사진: 배윤음 제공
▲ 송흰 작가님의 아이패드 스케치 / 사진: 배윤음 제공


N번의 수정 사항 반영과 두어 번의 회의를 가장한 데이트를 거쳐 흰 작가님의 그림이, 그리고 내 표지가 완성되었다. 어떤 식으로든 내 사랑이 묻은 사물과 생물들이 아련한 그림체 속에 담겼다. 도쿄에서 살던 때 집 앞에 우뚝 서 있던 신호등, 잊고 싶지 않은 것들을 담던 카메라 필름, 추억의 2G폰, 엉망으로 깎은 사과, 아꼈지만 더이상 볼 수 없는 은방울 램프, 그리고 고래. 혹등고래. 마음 아프게 하는 것들을 모두 잡아먹어 소화 시켜 달라 빌었던 그 고래. 무시무시하거나 사랑해서 잊고 싶지 않았던 것들이 예쁜 색 안에 아스라이 남았다. 그림을 받고 눈시울이 멀쩡할 리가 없었다. 내 상상 속에선 온전할 수 없었던 파편들이 눈 앞에 자리하고, 심지어는 손을 뻗어 만질 수 있다니! 잊지 않을 수 있다니! 눈 깜짝할 새에 삼십대를 맞이해 버린 내게 앞으로를 환영하는 선물이 배달된 것 같다. 이 뒤는 여기 잘 담겨 있으니 묶여있지는 말라며. 그런 선물을 가능케 하고 경험할 수 있게 해준 송흰 작가님께 다시 한 번 사랑의 말을 전한다. 덕분에 첫 책 ‘사랑하겠다는데도’가 태어났다. 태어난 김에 여러 사람 곁으로 가 사랑도 받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뜨겁게 사랑받기를. “사랑은 당신도 하는 거잖아요.”

* 지난해 12월 발간된 문화매거진 두 번째 오프라인 잡지에 실린 글입니다. 

Copyright ⓒ 문화매거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

다음 내용이 궁금하다면?
광고 보고 계속 읽기
원치 않을 경우 뒤로가기를 눌러주세요

실시간 키워드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0000.00.00 00:00 기준

이 시각 주요뉴스

알림 문구가 한줄로 들어가는 영역입니다

신고하기

작성 아이디가 들어갑니다

내용 내용이 최대 두 줄로 노출됩니다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이 이야기를
공유하세요

이 콘텐츠를 공유하세요.

콘텐츠 공유하고 수익 받는 방법이 궁금하다면👋>
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
유튜브로 이동하여 공유해 주세요.
유튜브 활용 방법 알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