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선미 칼럼] 네가 없인 나도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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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선미 칼럼] 네가 없인 나도 없어

문화매거진 2024-12-30 16:55:36 신고

[문화매거진=권선미 작가] 올해는 정말 힘들었다. 올해가 끝나서 너무 행복하다. 정말 지독히도 힘들었다. 아무도 궁금하진 않겠지만, 기록을 위해 남기자면, 나는 다니는 직장에서 반년 동안 예정에도 없던 주 6일을 일했으며, 주변 사람들을 꽤나 정리했다. 기대를 안고 진행한 라섹 수술은 부작용으로 빛 번짐과 난시를 남겼으며, 마지막 불장이라는 코인에 들어갔다가 지옥의 불맛을 보는 중이다.

그 외에도 정말 자잘하게 될 일도 안되고.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는 게 이런 나를 두고 하는 말인가 싶을 정도로 세상의 모든 것들이 나를 우울의 구렁텅이로 넣기 위해 온갖 힘을 쓰고 있다고 느껴졌다. 그리고 물론 나는 그 모든 공격들을 이겨내지 못하고 쳐맞아 우울의 구렁텅이로 넘어졌고 이제야 겨우 거의 다 기어올라왔다.

▲ '다크나이트 라이즈' 中 배트맨이 갇혀서 수련을 하던 구덩이. 마치 내 올해 같다
▲ '다크나이트 라이즈' 中 배트맨이 갇혀서 수련을 하던 구덩이. 마치 내 올해 같다


그 와중에 연말에 들어서는 갑자기 계엄령이 터지질 않나... (라섹 하길 그나마 잘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잠깐 했다.) 연말 소셜 미디어 속엔 크리스마스트리 앞 인증샷보다는 시위를 나간 사람들의 인증샷들이 끝없이 이어졌다. 이번 계엄령을 겪으면서 놀라웠던 점은 시위 참여자의 많은 수가 2030의 여성들이었다는 점, 시위가 생각보다 평화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점, 계엄이라는 강압적인 상부의 지시에도 불구하고 군인들이 민간인과 국회의원들에게 폭력을 행사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아 그리고 하나 더. 단 몇 시간 만에 끝나버렸다는 점. (이렇게나 무능한 독재자가 있을 수 있는 건가… 이번 사태로 인해 그는 독재자가 될 자격 또한 없음이 명백히 판명되었다.)

내 또래 또는 나보다 어린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정치에 대해서 대부분 관심이 없거나, 관심이 없는 것을 쿨하거나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경우를 종종 봐왔다. “난 정치 같은 거 하나도 몰라”라든지, “솔직히 나라가 나에게 해준 게 뭐가 있는데?”라는 식의 말을 하던 사람들을 떠올려보자면, ‘아마 그런 것들이 12·3계엄령을 만들었는가 보다’라는 생각을 한다.

▲ 정치인들의 난투극, 윤여홍, 1994. 물론 우리가 어릴 적에 접해온 국회의 모습은 이런 거라서 정치에 대해 웃기거나 만만하게 생각하는 것도 이해는 되지만...
▲ 정치인들의 난투극, 윤여홍, 1994. 물론 우리가 어릴 적에 접해온 국회의 모습은 이런 거라서 정치에 대해 웃기거나 만만하게 생각하는 것도 이해는 되지만...


그리고 흥미롭게도 평소 그런 이야기를 하던 친구들도 이번 계엄 사태를 보고는 아주 일말의 위기의식을 느껴서 그나마 여당과 야당이 무엇인지, 현재 나라의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었는지에 대해 조금이나마 관심을 가지게 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다. ‘정치적 이슈는 민감한 거니까 내가 뭐라 말할 입장은 아니지…’라는 입장을 고수해 왔으나, 이번 경험을 통해 이거 하나는 확실한 것 같다. 정치 이야기는 덮어두고 쉬쉬할만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어쨌든 본인이 산속에 들어가 살 것이 아니라면, 내가 지지하는 정당에 대해 투표를 하고 그에 대한 이야기를 당당하게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이건 마치 섹스를 섹스라 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아니 어쩌면 섹스보다 더 창피한 것으로 취급되고 있는지도.

‘세계적으로 유명하고 좋은 작가는 그가 사는 나라의 경제력이 어느 정도 받쳐주어야 나온다’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생각해 보면 그건 지극히도 맞는 말인데, 내가 암만 그림을 잘 그리고, 독창적인 것들을 만들어내는 대단한 작가라고 치자. 그곳이 독재국가이거나, 빈곤국이거나, 전쟁 중인 국가라면? 개인이 ‘잘’하는 것만으로는 무언가를 이뤄내기 힘들다. 주변의 환경이 적어도 기본은 받쳐주어야 무어라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나한테 아무것도 해준 것이 없는’ 나라는 생각보다 많은 걸 담당하고 있는데, 외국에 나갈 수 있는 비자를 발급해 주고, 편안히 교육을 받을 수 있게 해주고, 나라가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다면 여러 지원금과 연금 혜택을 받을 수 있으며, 다른 나라로부터 이유 없이 맞을 일이 없도록 무기와 군사력도 준비해둔다. 과연 나라가 나에게 해준 것이 아무것도 없다 할 수 있을까?

현재의 내가 70여 년 전에 큰 분단 전쟁을 겪고도 지금에 와서는 문화강국이라 불리는 나라에서 살고 있다는 것은 너무나 감사한 일이다. 적어도 내가 무언가가 될 수도 있는 로또 한 장이 쥐어졌으니까. (글을 쓰다 보니 올해가 최악이었다는 건 그냥 내 투정이다.) 과거에 무언가를 짓고 만들고 이룩해온 모든 앞선 어른들. 그분들이 대한민국을 위해 힘써오셨기 때문에 내가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고 배부르고 따뜻한 겨울을 보내고 있는 거다. 이제와서는 그런 노고는 기억하지 못하고 그저 내가 잘나서 잘 사는 것이라는 마음으로 정치나 사회에 무관심을 가지고 서로 잘났다며, 서로에 대한 혐오가 판치는 것이 안타깝다.

그래도 누군가들은 알게 모르게 알고 있는 듯하다. 네가 없이는 나도 없다는 것. 물론, 나 없이는 너도 없겠다만. 명령에 불복종해 민간인에게 폭력을 행사하지 않은 군인들, 계엄 방송이 나가자마자 국회로 달려 나간 사람들, 평소에 정치에 관심이 없었다만 ‘덕질’을 하려면 나라가 살아있어야 한다며 응원봉을 들고 시위에 나간 학생들, 자유로운 민주국가가 있어야 자신들도 나라를 가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국회의원들.

국민이 없이는 ‘나라’도 없다는 기본조차도 모르는 사람이 국민의 투표로 대통령이라는 지위에 있었다니 정말 개탄스러울 따름이다.

▲ 2025년은 여러모로 안전한 한 해가 되길. 대한민국도, 건강도, 지갑도.
▲ 2025년은 여러모로 안전한 한 해가 되길. 대한민국도, 건강도, 지갑도.


‘나라’가 없이는 국민도 없고, 국민이 없이는 ‘나라’도 없다. 결국 세상은 정말 함께 살아가는 곳이라는 것임을 몸소 느낀 연말이다. 오는 2025년은 무탈한 해가 되길 빌어본다. 올해는 정말, 정말 꼭, 다작해야지…! (작년에도 같은 말을 했던 거 같은데.)

+ 최근 인스타그램의 바다를 헤매다 본 카뮈의 수상소감(이라고 떠도는)을 남기며 올해의 마지막 칼럼을 마친다.

저에게 예술은 없어서는 안 될 존재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삶의 모든 것보다 우선시한 적은 없습니다. 예술을 필요로 하는 이유는, 예술이 저 혼자만을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술은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어있고, 덕분에 저는 그들과 같은 자리에서, 나답게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예술이란 고독 속에서 혼자만의 기쁨을 누리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예술은 사람들의 기쁨과 고통을 담아내는 도구이며, 더 많은 사람들과 연결될 수 있는 매개체입니다.

그래서 예술가는 자신을 세상과 분리시켜서는 안 됩니다. 예술가는 가장 겸손한 진리와 보편적인 진실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처음에는 스스로를 남들과 다르다고 느껴서 예술가의 길을 선택한 사람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결국 깨닫게 됩니다. “자신이 남들과 다르다고 고집하는 것만으로는 예술도, 독창성도 유지할 수 없다”라는 사실을요.

결국, 예술가는 그렇게 스스로가 남들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예술가는 공동체와 떨어질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놓을 수 없는 아름다움과 떨어질 수 없는 공동체 사이에 서서, 스스로를 단련하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진정한 예술가는 그 무엇도 경멸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판단하기보다는 이해해야 할 책임을 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 12/29 제주항공 희생자들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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