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매거진=강산 작가] 처음 문화매거진에 쓴 글은 수잔 발라동에 관한 것이었다. 수잔 발라동이라는 여성 화가의 일생에 대해 알고 나서 마음이 아주 아팠다. 그녀의 삶은 너무나 애처로웠지만 그러한 아픔들을 이겨내고 당당하게 화가로서의 삶을 산 것에 대해서는 큰 존경심을 갖게 되었다.
그런 그의 작품 중 ‘Portrait of Marie Coca and her Daughter’(1913)라는 작품이 있다. 방석에 앉은 딸은 인형의 머리 위에 얹은 손, 꼰 다리, 정면으로 쳐다보는 눈빛으로 보아 내성적인 성격은 아닌 것 같다.
이날 이 그림의 모델이 되기 위해 엄마는 딸이 평소 편히 입지 않던 원피스를 꺼내 입히고 치장하면서 아침부터 전쟁을 치렀을지 모른다. 그래서 그런가? 엄마의 표정이 지친 무표정으로 보인다. 엄마 역시 이날 이 그림의 모델이 되려 평소 입지 않던 옷과 액세서리를 꺼내 치장을 한 것은 아닐까 생각도 든다.
‘엄마’라는 존재에 대해 보통 어떤 생각을 하는가? 엄마를 생각하면 눈물부터 나고, 그 일생을 생각하면 안쓰럽고 하지만 한편으로는 왜 그렇게 살았을까 답답하기도 하고, 나는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 이런 생각들을 하는가?
아니면, 엄마와 사이가 매우 좋지 않아 연락을 끊어 언제가 마지막 연락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가? 이러나저러나 어쨌든 엄마와 딸은 쉬운 관계는 아닌 것 같다.
게다가 딸로 살다가 엄마가 된 여성들은, 딸로서의 경험과 엄마로서의 경험 속에서 복잡한 심경 속에 있게 된다. ‘내가 딸일 때 엄마는 나한테 분명 그렇게 했는데, 지금 내가 엄마가 되어보니 엄마의 그때 행동이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다. 아무리 엄마라는 역할이 서툴러도 그렇지 어떻게 딸인 나에게 그럴 수 있지?’ 이런 생각이 있을 수도 있다. 혹은 ‘아... 딸 키우기 쉽지 않다. 엄마가 나 키우느라 정말 고생이 많았구나.’라는 생각에 엄마의 고된 삶이 안쓰러울 수도 있다.
첫 아이를 낳았을 때, 내 몸에서 영혼이 있는 한 생명이 태어났다는 것이 실감 나지 않았다. 누군가 그랬다. 모성은 여성이라면 누구나 선천적으로 가진 것이라고. 이 말은 아이를 낳아보지 않은 사람이 지어낸 말이 틀림없으리라. 처음 아이를 낳아본 사람은 아마 대부분 나와 비슷할 것이다. 실감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내 몸에서 나온 이 연약하고 작은 아기를 위해 밤새 모유를 먹이고 우는 아이를 달래고 아플 때 병원에 데리고 가면서 점차 엄마라는 사실에 실감이 난다.
아, 이게 바로 엄마구나.
내 몸에서 태어난 아기, 밤을 지새우며 아기도 울고 나도 우는 시간. 그런 시간으로 비로소 숭고한 모성이 생겨난다.
첫 아이를 낳고 한동안 사회에서는 ‘맘충’이라는 단어가 유행했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너무 속상한 단어였다. 물론 지금은 너무나 낮은 출생률 때문에 길이나 공공장소에서 아기를 보게 되는 것이 쉽지 않아 그런 단어는 거의 쓰이지 않고 있다.
엄마라는 이름 뒤에 숨겨진 고단함, 그리고 아이가 성장하는 모습을 보며 알게 되는 기쁨, 이런 것들은 결코 단어 하나로 단정 지어질 수 없다.
누구나 엄마는 처음이다. 내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고, 나도 엄마가 처음이다. 그리고 아이를 키우는 여성도 역시 이 사회에서 함께하는 공동체 구성원이다. 나름의 노력을 했고 하고 있는 엄마와 딸은 서로가 이해하고, 또 사회구성원으로 열심히 자신의 역할을 하는 이러한 여성들에게 사회에서도 진심 어린 시선을 보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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