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이 2차원의 종이를 넘어 3차원의 무대 위에 오르고 있다. 문학을 원천 텍스트로 삼아 창작된 연극, 뮤지컬, 무용 등이 연말연시 관객을 찾아오면서다. 단순히 원작의 이야기를 옮기는 데 그치지 않고, 동시대적 해석과 창작자의 고유한 시선으로 재구성된 작품들이 눈길을 끈다. 김소월, 페르난도 페소아, 알베르 카뮈…. 수백~수십 년 전 대가들의 목소리와 철학이 무대 위에서 어떻게 재해석될까. 이번 연말연시 관객과 만날 공연들을 소개한다.
김소월의 시가 뮤지컬로 – ‘어제의 시는 내일의 노래가 될 수 있을까’
1923년, 간토대학살 이후 독립운동에 헌신한 청년들의 이야기를 다룬 창작 뮤지컬 ‘어제의 시는 내일의 노래가 될 수 있을까’가 내년 1월 7일 초연된다. 이성준 작가의 소설 붉은 진달래를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한국 대표 시인 김소월의 시를 테마로 한 최초의 뮤지컬이기도 하다.
1920년대를 풍미한 김소월의 시는 뮤지컬에서 독립운동에 헌신한 청년들의 노랫말로 옮겨진다. 당시 우리의 말과 글을 지키려 투쟁했던 선조들의 아픔과 마음을, 시인의 맑은 시어로 구현해내는 것. 제작사에 따르면, 그의 시는 가사뿐만 아니라 극의 전개에도 활용된다는 후문이다. 혼란스러운 현재를 살아가는 오늘의 관객들은 100년 전, 가장 절망적인 시기를 산 청춘들의 언어에 어떤 감정을 마주할까.
“복수가 되어라, 저 우주만큼!” – 춤이 된 페소아의 문장들
배우 한소희가 그의 대표작인 ‘불안의 서’를 추천하기 전까지, 국내에서는 문학 팬들에게 ‘컬트적인 인기’를 구사했던 인물. 바로 포르투갈의 국민 작가 페르난도 페소아(1888~1935) 얘기다. 그 이유가 있다. 그의 글은 난해하다. 애초에 집필 방식부터 생경하다. 70~130여 개에 이르는 ‘이명(異名)’으로 글을 남겼다. 여기서 ‘이명’은 가명과는 다르다. 그는 개별 이명들에 각기 다른 문체, 외모, 출신, 직업을 부여했다. 그렇게 100여 개가 오가는 삶을 여행하고 탐구하며 ‘나’라는 규정된 정체성에 질문을 던져온 셈이다.
이처럼 수많은 ‘나’를 창조하고 질문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현대무용극이 탄생했다. 솔로 무용 공연 ‘noBody’가 그 주인공이다. 평소 페소아를 좋아한다는 YJK댄스프로젝트의 김윤정 연출과 무용가 류장현이 페소아에게 영감을 받아 춤으로 풀어낸다. 규정에서 이탈하는 문장을 쓰는 페소아, 그리고 가장 비언어적인 매체인 춤의 합작이라니. 페소아를 좋아한다면 눈길이 갈 만하다. 이번 연말 국내에서 쉽게 볼 수 없는 대극장 무용 솔로 공연으로, 27일부터 오는 29일까지 대학로예술극장에서 3일간만 만날 수 있다.
고난이 반복될지라도 – 카뮈의 질문을 담은 뮤지컬 ‘시지프스’
팬데믹과 전쟁으로 황폐해진 미래의 세상, 네 명의 배우가 모였다. 무대도 관객도 없는데 대체 왜 이들은 존재하는 걸까.
지난 10일 개막한 창작 초연 뮤지컬 ‘시지프스’는 알베르 카뮈(1960~1913)의 소설 '이방인'과 그리스 신화 속 시지프스를 엮어낸 작품이다. 끝없이 굴러떨어지는 바위를 밀어야 하는 시지프스의 형벌을 배우의 삶에 빗댄다. 무대가 끝나면 사라지고말아야 할 ‘인물’이 되는 배우의 삶은 시지프스의 운명을 가장 잘 설명하는 은유가 아닌가.
무거운 철학적 주제이지만, 반복되는 일상을 살아가며 의미를 헤매는 현대인이라면 공감할 수밖에 없는 주제이기도 하다. 이미 제18회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DIMF)에서 창작뮤지컬상 등 3관왕을 차지했고, 함께 흐르는 록 넘버가 관객들의 호평을 받고 있기도 하다. 공연은 내년 3월 2일까지.
문학을 원천 텍스트로 삼아 무대 위에서 재해석하는 시도는 계속돼왔다. 그러나 원작을 재현하는 데 끝나지 않고, 동시대의 문제의식과 형식을 결합해 새로운 예술로 창조되는 사례들은 신선하다. 어두운 시대일수록 예술의 역할은 더욱 중요하지만, 최근 이어지는 정치적인 혼란은 ‘공연’에 쉽사리 시간 배분을 하기 힘들게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잠깐 시간이 된다면 좋은 작품과 함께하면 어떨까. 공연을 관람하는 시간이 잠시 ‘언 몸’을 녹이고, 일상과 사회에 대한 질문을 계속 가져가게 할 테니.
[독서신문 유청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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