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매거진=정서원 작가] 교보아트스페이스에서 열린 ‘실망하는 자의 믿음’은 실망과 믿음이라는 감정을 문학과 미술이라는 두 매체를 통해 탐구한 전시다. 현대인의 감정적 풍경을 다채로운 시각으로 보여준 이 전시는 감정의 깊이를 탐구하는 통합적 예술 경험을 선사하고자 했다.
이번 전시에서 문학은 미술과 긴밀하게 연계되며, 작품 속 메시지를 확장시키는 중요한 축으로 작용했다. 서동욱 철학자는 실망을 존재론적 관점에서 풀어내며 믿음의 회복 가능성을 논했다. 그의 글은 실망이라는 감정이 단순히 좌절이 아니라 존재를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중요한 계기임을 조명했다. 김용택 시인은 우리가 일상 속에서 쉽게 놓쳐버리는 작은 믿음의 순간들을 따뜻한 언어로 담아냈다. “강물은 흘러가도 강물은 남아 있다”는 그의 문장은 믿음이란 끊임없이 소멸하고 다시 태어나는 과정이라는 점을 시적으로 드러내 준다.
정재승 과학자의 글은 실망과 믿음이 우리의 뇌와 감정에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과학적으로 풀어냈다. 그는 실망이 기대와 현실의 간극에서 발생하며, 이를 통해 인간은 새로운 목표를 설정하고 다시금 믿음을 찾아간다고 설명했다. 이와 같은 과학적 통찰은 전시의 철학적 메시지에 흥미로운 관점을 더했다.
문학은 이 전시에서 미술과 분리된 또 다른 축이 아니었다. 오히려 각 문학 작품들은 회화와 조화를 이루며 관람객에게 새로운 해석의 실마리를 제공했다. 예를 들어 김혜원의 회화는 서동욱 철학자의 글과 함께 실망 속에서 잉태되는 믿음의 가능성을 시각적 언어와 철학적 언어로 동시에 풀어냈다.
박주애의 작품은 김용택 시인의 글과 연결되어 일상의 단편 속에서 발견되는 소소한 믿음의 순간을 강조했다. 정아롱의 몽환적 이미지는 정재승 과학자의 글과 함께 읽혔을 때, 믿음이라는 감정의 신경학적 기반과 초현실적 가능성을 관람객에게 상기시켰다.
이 전시는 실망과 믿음이라는 감정을 철학자 키르케고르(Søren Kierkegaard, 1813-1855)의 사유와 흥미롭게 연결한다. 키르케고르는 ‘신 앞에서의 단독자’라는 개념을 통해 인간이 실망과 고통 속에서도 스스로를 넘어서는 믿음을 발견하는 과정에 주목했다. 그가 말하는 신앙적 믿음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절망과 한계를 통과한 뒤 도달하는 초월적 상태다. 이번 전시의 메시지도 마찬가지다. 실망은 단순히 좌절이 아니라, 믿음으로 나아가는 길목에서 우리가 마주해야 할 중요한 감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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