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애호가의 2024 올해의 다큐멘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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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애호가의 2024 올해의 다큐멘터리

더 네이버 2024-12-18 22:05:38 신고

연말 시상식은 1년을 갈무리하는 특별한 이벤트다. 시상식을 통해 각 분야 활약상을 복기하며 비로소 한 해를 정리한다. 2024년에도 문화예술계는 분주했다. 미술계는 아트페어와 비엔날레, 여러 대형 전시로 들썩였고, ‘텍스트 힙’이라는 신조어로 독자의 호응을 확인한 출판계는 10월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으로 경사를 맞이했다. 


2024년을 돌아보며 <더네이버>만의 작은 시상식을 준비했다. 책과 미술, 다큐멘터리 애호가들이 꼽은 ‘올해의 콘텐츠’를 모은 것이다. 다만 순위를 매기기 위한 평가가 아니라, 보석 같은 콘텐츠가 널리 알려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추천을 청했다. 리스트를 살피며 저마다 ‘나만의 베스트’를 꼽아보기를, 그리고 이 리스트가 당신의 12월을 풍요롭게 만들기를 바란다.

 

 

 

<마사>

감독 R.J. 커틀러  채널 넷플릭스

‘나락 보내기’는 유튜브 시대의 트렌디한 장난일까. ‘살림의 여왕’이자 최초의 인플루언서로 불리는 마사 스튜어트는 2000년대 초 ‘나락’으로 떨어졌다. 자신의 이름을 딴 회사를 뉴욕 증시에 상장한 억만장자이자 ‘직원들을 막 대하는’ 워커홀릭 여성은 샤덴프로이데를 자극하기 좋은 타깃이었다. 야심 넘치는 검사가 스튜어트를 도마 위에 올렸고 미디어와 대중이 난도질했다. 결국 스튜어트는 사법 방해와 허위 진술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고 징역형을 살았다. 그리고 10여 년 뒤, 스튜어트는 감옥에 있었던 기억을 유머 소재로 이용하며 재기한다. 감독 R.J. 커틀러는 스튜어트 본인을 유일한 대면 인터뷰이로 활용하면서도 그를 희생양으로만 그리지 않는 영리한 방식을 택했다. 팔짱 끼고 관전하는 우리도 나락이 도처에 널린 세상에서 자유롭지 않다. _ 문영훈 <여성동아> 기자

<투게더: 트레블 위너>

회차 6부작  채널 넷플릭스

축구 경기장 안의 치열함을 느낄 때면 이들이 밖에서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진다. 축구 다큐멘터리를 보면 그 치열함이 새삼 더 대단하게 다가온다. ‘트레블(treble)’이란 한 축구팀이 한 시즌에 자국 리그와 컵 대회 그리고 유럽 강팀만 참여하는 챔피언스리그, 총 3개의 대회를 모두 석권하는 것을 뜻한다. 2023년 잉글랜드 축구팀 맨체스터시티가 트레블을 달성한 건 축구 역사에서도 몇 차례 없는, 굉장히 의미 있는 사건이다. ‘메시 없으면 챔스 우승 못 하는’ 펩 과르디올라 감독과 막대한 자본을 쏟아부은 맨체스터시티, 우승에 목말라 있던 선수, 스태프는 하나가 되어 위대한 업적을 이뤄냈다. 경기장에서만큼 그들은 밖에서도 치열했다. 이 작품은 역할의 비중을 떠나 구성원의 희생과 열정이 모이면 어떤 시너지가 일어나는지 진정성 있게 보여준다. _ 최세훈 프리랜스 비디오 에디터

<더블 슬릿>

감독 홍진훤  공개 영화제 출품 예정

올해는 이상한 일이 많았다. 대통령은 역사의 희생자를 기리는 추념식에 불참했고,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선다’는 이유로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국내 대법원에서는 동성 배우자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했지만,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된 트럼프는 LGBTQ에 전면전을 선포하고 있다. 이중슬릿 실험이 말하듯, 세상 모든 것은 경험하기 전까지 하나로 정의될 순 없다. 퇴보하는 줄 알았던 세상이 앞으로 나아가고 있을 때, 반대의 경우도 허다한 것처럼. 2024 부산비엔날레에서 만난 홍진훤 작가의 신작 <더블 슬릿>에서는 이중슬릿을 거꾸로 되짚는다. 1989년 현대중공업 파업을 기록한 사진가 서영걸의 작품과 당시 노동운동을 했던 이들의 증언을 토대로 만든 60분짜리 영화로, 정규직 노동자와 하청 노동자, 둘로 나뉜 세계를 조명한다. 홍진훤 작가는 2개 프레임으로 나눈 화면에서 두 세계가 충돌하는 과정을 보여주며 슬릿을 통과하기 전 빛의 파동과 입자가 본래 하나이듯 결국 같은 노동자임을 인지하게 한다. 이 영화가 서론에서 언급한 예시를 관통한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일이 모두가 인간임을 잊고 살기 때문에 생기는 아이러니는 아닐는지. _박진명 <피치 바이 매거진> 에디터

<스프린트>

회차  6부작  채널 넷플릭스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는 무엇일까? 야구? 축구? 배드민턴? 아니다. 육상이다. 그것도 단거리 경주에 사람들은 열광한다. 나도 그렇다. 영 점 영 몇 초를 두고 다투는 단거리 육상 경기만큼 심장 쫄깃한 관전 스포츠도 없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시리즈 <스프린트>는 미국과 자메이카 등 단거리 세계를 주름잡는 국가의 최정상 스프린터들의 목표와 의지, 훈련 과정과 대회를 준비하는 여정을 다이내믹한 앵글로 다루고 있다. 셔캐리 리처드슨, 노아 라일스, 셰리카 잭슨, 개비 토마스, 마르셀 제이콥스, 자넬 휴스 등 지구에서 가장 빠른 자의 자리에 서려는 선수들의 면모를 만나볼 수 있다. 가슴 졸이는 경기 결과도 흥미롭지만 선수 개개인 모두 인간적 매력이 넘친다. 다들 하나같이 멋진 것은 물론 목표를 향해 질주하는 이들의 여정에서 땀과 한숨, 눈물과 환희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_ 이경섭 <더네이버> 편집장

<다섯 번째 방>

감독 전찬영  채널 왓챠, 티빙, 웨이브

대구의 한 이층집에 가족 3대가 살고 있다. 집주인은 감독의 할머니이고, 2대인 아빠는 이곳에서 태어나 평생을 살았다. 결혼 후 집에 들어온 뒤 30년간 살아온 엄마는 가계와 살림을 모두 책임지는 가장이 되고서야 안방을 얻었다. 하지만 가족이 노크 없이 드나드는 방에서 편안할 리 없으므로 독립된 방을 위한 분투를 이어간다. 지난 6월 개봉한 전찬영 감독의 다큐멘터리 <다섯 번째 방>은 집 구조를 속속들이 보여주는 초반만 해도 버지니아 울프를 소환하는 ‘자기만의 방’ 쟁취기일 거라 짐작했다. 하지만 영화는 외할아버지의 장례식을 기점으로 가족의 묵은 상처를 들춘다. 모든 일은 우연히 벌어졌겠지만, 두려움을 마주하며 카메라를 놓지 않은 감독의 용기가 대단하다. 내레이션을 통해 감독은 자문한다. “나의 영화에서 악당이 필요했던 걸까?” 하지만 피해자들이여, 자기검열을 멈추라. 건강한 부위마저 집어삼키는 고름을 눈 딱 감고 떼어내야 전진할 수 있다. 독립은 모든 인간의 과업이다. 누군가는 이 영화를 본 뒤 기나긴 투쟁의 첫발을 뗄 수 있으리라. _박지형 <더네이버> 피처 에디터

<이벨린의 비범한 인생>

감독 벤야민 레  채널 넷플릭스

디지털 기술과 인터넷의 발달은 세계를 파편화해 우리를 한없이 외롭게 만드는 동시에 초연결(hyper-connection)성을 통해 직접 마주하지 않아도 서로 연결된 느낌을 준다. <이벨린의 비범한 인생>은 뒤센근이영양증을 앓다가 세상을 떠난 마츠를 조명하며, 게임의 긍정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다큐멘터리 영화다. 게임 속에서 마츠는 가족이 알던 모습과는 다른 ‘이벨린’으로서 자유롭게 달리고, 친구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때로는 길드원들과 갈등하면서 세상과 연결되었다. 영화는 캐릭터를 새롭게 모델링하고, 게임 속에 저장된 로그를 기반으로 실제 마츠와 길드원이 나눈 대화를 편집해 애니메이션으로 과감하게 재구성했다. 마치 게임 속으로 들어가는 듯한 연출은 실사 재현의 한계를 보완하며, ‘게임’이라는 주제로 더 깊게 다가갔다. 물리적으로 닿을 수 없어도 진심을 전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올해 가장 낭만적인 다큐멘터리다. _ 신문경 <리빙센스> 에디터

<안티소셜 네트워크: 밈에서 대혼란으로>

감독 조르조 안젤리니, 아서 존스  채널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안티소셜 네트워크>는 유머를 기반으로 사람들이 자유롭게 관심사와 의견을 나누는 공간이었던 SNS가 어느새 사회 불만을 표출하고, 공개적으로 하지 못했던 욕설과 외설이 난무하는 공간으로 변질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과격한 우파 집단의 커뮤니티가 형성되고 ‘어나니머스’와 해커 그룹이 등장해 사회 문제와 사건을 일으키며, 나아가 트럼프 당선에도 영향을 미친다. ‘익명성’이라는 탈을 쓰고 정의를 망가뜨리는 과정은 차별과 분노라는 지점을 명확하게 드러낸다. 이는 비단 미국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AI 시대가 도래하는 지금, 앞으로 어떤 세상이 펼쳐질지 두렵기까지 하다. 더욱 무서운 일은 도파민 중독이 위험하다고 외치면서 엄지손가락으로 스마트폰 화면을 바삐 움직이며 자극적인 음식과 달디단 디저트를 먹고 있는 나를 발견하는 것이다. 콘텐츠 생산자로서 밈을 실어 나르며 ‘진정성’은 제쳐두고 ‘조회수’와 ‘인기’를 최우선으로 삼을 때면 죄책감과 반성이 늘 따라온다. 어쩌면 유머는 유머로 보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다만 세상에는 단맛만 존재하는 게 아니니, 시고, 달고, 맵고, 짠맛을 입안 가득 느껴보려 한다. 다양한 맛 속에 숨어 아직 느껴보지 못한 맛이 삶을 더 재미있게 만들지도 모르니까. _ 이수안 Speeker PD

<윌과 하퍼>

감독 조시 그린바움  채널 넷플릭스

넷플릭스 영화 <윌과 하퍼>는 ‘나를 찾는 여행’이라는 보편적인 주제를 담은 다큐멘터리다. 주인공 스틸 하퍼는 오랜 친구이자 배우인 윌 페럴에게 자신이 트랜스여성으로 정체화했음을 알린다. 환갑에 가까운 나이에 이런 결정을 내린 하퍼도, 그 소식을 들은 윌도 서로 혼란스러운 상황. 두 친구는 막연히 미국 횡단 여행을 떠나고, 이 여정에서 윌은 ‘새로운 하퍼’의 숨겨진 모습을 발견한다. 우리는 자신이 동질적인 사람이라고 착각하곤 하지만, 사실 인간은 다채롭고 변화무쌍한 존재이기에 스스로 어떤 사람이라 단정 짓는 것은 불가능하다. 정체성은 변화하고 진화하는 과정이다. 하퍼 역시 윌과 함께하는 여행에서 새로운 자아를 발견해간다. 시냇물을 따라 걸으며 낯선 조약돌을 줍듯 변화하는 자신에 대해 하나씩 알아가는 것이 삶의 본질 아닐까. 그 외로운 여정에 윌 같은 친구가 동행한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황량한 협곡에 마주 앉아 시시한 농담을 주고받는 두 오랜 친구의 모습이 긴 시간 기억에 남을 것이다. _ 김승주 상업영화 연출팀

<아이 엠: 셀린 디옹>

감독 아이린 테일러  채널 프라임 비디오

영화 <타이타닉> OST를 부른 가수이자 세계 3대 디바 중 한 명으로 꼽힌 셀린 디옹의 SPS(강직인간증후군) 투병기. 근육이 천천히 굳는 희귀 질환으로 극심한 고통에 괴로워하는 그의 투병 생활을 가감 없이 담아냈다. 노래가 뜻대로 되지 않아 실망 가득한 얼굴로 또다시 녹음하고 이후 근육 경련과 발작으로 인한 고통에 눈물 흘리는 모습에서 내 몸이 내 뜻대로 되지 않아 인간의 나약함에 굴복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대한 공감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달릴 수 없다면 걸을 것이고 걸을 수 없다면 기어갈 것”이라며 “And I won’t stop”을 외치는 셀린 디옹의 정신력은 강인한 의지를 기르고픈 이들을 위한 길잡이로 나무랄 데 없다. _ 유영훈 <디지틀조선일보> 기자

<팝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밤>

감독 바오 응우옌  채널 넷플릭스

얼마 전, 퀸시 존스가 세상을 떠났다. 동시대를 직접 경험하지 못해 주로 음악과 영상으로 접한 1980년대는 내게 마이클 잭슨과 프린스의 전성기였다. 그리고 잭슨은 늘 퀸시 존스와 함께였다. 변화의 시기였다. 24시간 내내 뮤직비디오를 틀어주는 MTV가 처음 생겼고,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크고 화려한 쇼에 시선이 따랐다. 1985년 1월 28일, 잭슨과 존스를 중심으로 수십 명의 스타가 단 한 곡의 녹음을 위해 모였다. 프로젝트는 대성공이었다. 영화는 40년이 지나 점점 잊히는 이날을 조명한다. 퀸시 존스가 스타들을 유치원생처럼 타이르고, 밥 딜런이 잔뜩 긴장하고, 스티비 원더가 농담과 모창으로 분위기를 누그러뜨린다. 영상 말미, “이 시간이 영원하길 바랐다”며 다이애나 로스는 눈물을 보였고, 나는 지나간 시대의 그들을 조금 더 사랑하게 되었다. _ 정병욱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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