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뉴스 김승훈 기자] 간첩법 개정 과정에서 여야간 진통이 발생하고 있다.
지난 7월 국군정보사령관(정보사) 소속 군무원이 정보사 '블랙요원'들의 개인정보를 비롯한 군사기밀을 외부로 유출한 사실이 드러나며 정치권에서는 간첩법 개정 논의가 이어져 왔다.
지난달 13일 국회 법사위 법안심사제1소위원회는 간첩죄 적용 범위를 '적국'에서 '외국'으로 확대하는 형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이런 가운데 민주당 내에서 공청회를 통한 의견 수렴 절차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보이자 여권에서는 대한민국 정당이 맞냐며 공세를 확대하고 있다.
정보사 '블랙요원' 기밀 유출 후 간첩법 개정 급물살
법사위 소위, 지난달 개정안 의결.. 민주, 돌연 공청회 추진
간첩법 개정 논의는 지난 7월 정보사 '블랙요원' 정보 유출 파문으로 시작됐다.
정보사 군무원이 중국과 러시아 등지에서 대북 수집 업무를 담당하는 정보요원의 신상 정보가 포함된 기밀이 중국 조선족에게 넘어간 사실이 발각된 것이다.
정보사의 기밀 유출 사건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지난 2017년에는 국방통합데이터센터가 해킹돼 유사시 북한 지도부에 대한 참수 작전과 북 국지 도발 대응 계획, 미국이 제공한 대북 정보 등 1500만장 분량의 기밀이 북으로 넘어간 사실이 확인됐다. 또, 2018년에 팀장급 장교가 중국 현지에서 활동하는 비밀 요원 신상 기록이 포함된 각종 군사 기밀을 건당 100만원에 중국·일본에 팔아넘긴 사례도 있다.
문제는 이러한 군사기밀 유출을 간첩법으로 처벌할 수 없다는데 있다.
현행 간첩법(형법 제98조)은 간첩죄 적용 범위를 '적국'으로 규정하는데 '적국'에 북한외 다른 나라가 포함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정치권을 중심으로 간첩법 개정 필요성이 제기됐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1소위는 지난달 13일 간첩죄 적용 범위를 '적국'에서 '외국'으로 확대하는 형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이런 가운데 민주당이 간첩법 개정안에 대한 공청회 개최를 추진하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공청회를 거칠 경우 간첩법은 오는 10일 예정된 국회 본회의에 오르지 못하게 되고 연내 처리도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노종면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2일 원내대책회의 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법을 악용할 가능성에 대한 충분한 검토가 필요하지 않나"라며 "악용 가능성이 실제로 있다면 그걸 막는 장치가 필요하다. 외국으로 확대하는 것 자체를 반대하는게 아니라 악용 가능성에 대한 문제제기가 내부에 있어서 그걸 검토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일반법인 간첩법 개정 보다 특별법인 군사기밀보호법과 산업기술보호법 등 개정이 먼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특별법 지위에 있는 법안이 개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간첩법만 개정할 경우 효과가 없기 때문이다.
與 "野, 간첩죄 확대에 부정적 돌변…대한민국 정당 맞나"
민주당의 공청회 추진에 대해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간첩법 개정에 부정적으로 입장을 바꿨다며 "대한민국 정당이 맞느냐"고 비판했다.
추경호 원내대표는 3일 원내대책회의에서 "간첩죄 적용 범위를 적국에서 외국으로 확대하는 형법 개정안 처리에 대해서 민주당이 최근 부정적인 입장으로 돌변했다고 한다"며 "국회가 간첩죄 확대를 무산시킨다면 이는 대한민국이 아니라 중국 등 다른 나라를 이롭게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문재인 정권은 중국에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군사기밀을 유출하더니 이재명의 민주당은 군사·산업 기밀 해외 유출을 간첩죄로 다스리는 데 반대한다면 도대체 민주당의 정체성은 대한민국 정당이 맞긴 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몰아세웠다.
한동훈 대표도 전날 페이스북에 "민주당은 다시 적국을 외국으로 바꾸는 간첩법 반대로 되돌아간 건가. 민주당은 예산으로 행패 부리더니, 간첩법으로도 행패 부리기로 한 건가"라고 지적했다.
한 대표는 3일에도 "더불어민주당은 산업스파이 막는 간첩법을 가지고 '국민을 약올리고' 있다"고 날을 세웠다.
그는 "(간첩법 개정을) 반대하다가, 반대 아니라고 화내다가, 오히려 자기들이 주도하겠다고 하다가, 지금 와서 다시 갑자기 슬며시 반대한다"며 "민주노총이나 민변 때문인가"라고 비판했다.
박준태 원내대변인도 "국가기밀·산업기술 유출 대응을 위한 간첩죄 개정이 시급하다"며 "그러나 민주당은 관련 개정안을 법사위 1소위에서 통과시켜 놓고, 석연치 않은 이유로 전체회의 의결을 미루고 있다"고 주장했다.
박 원내대변인은 "민주당 지도부 일각에서 해당 개정안에 대한 우려가 있어 처리가 지연되고 있다고 알려지는데, 국가 기밀과 국가산업 핵심기술 유출을 막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묻고 싶다"며 "국가 기밀과 산업 핵심기술이 눈앞에서 유출돼도 마땅히 처벌하지 못하는 상황이 얼마나 계속될지 우려된다"고 했다.
이어 "우리 국회는 국가 안보와 산업 경쟁력을 보호하기 위해 관련 법과 제도를 신속히 정비해야 할 책임이 있다"며 "민주당은 즉각 간첩죄 개정에 동참하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국방부 "국가기밀 유출 엄중 처벌해야" 민변 등 "인권침해 우려"
국방부도 3일 "국가기밀 유출 등 중대 사안에 대해 보다 엄정하게 처벌할 수 있도록 법령이 보완돼야 한다"며 간첩법 개정을 호소했다.
전하규 대변인은 정례브리핑에서 "기밀 유출은 국가 안보에 심대한 위해를 초래하는 매우 엄중한 사안"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전 대변인은 최근 중국인 유학생들이 부산에서 미국 항공모함을 드론으로 불법 촬영한 사건, 정보사령부 소속 군무원이 군 정보요원 신상정보를 중국에 유출한 사건 등을 거론하며 "(현재) 여러 가지 제한 사항이 있었다"고 언급했다.
반면, 시민단체는 간첩법 개정에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민주주의법학연구회, 진보네트워크센터, 참여연대, 천주교인권위원회,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한국진보연대 등 7개 단체는 1일 성명을 통해 "이번 개정안은 적국 이외에 외국 등으로 대상을 확장하면서도, 모호한 의미의 국가기밀에 대해서는 어떠한 제한도 규정하지 않음으로써 종국에는 국가정보원의 국내 사안에 대한 폭넓은 개입을 용인하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간첩법 개정과 국정원 대공수사권 복원을 함께 당론으로 추진해 왔다"며 "만약 국민의힘 당론대로 국정원의 수사권까지 복원된다면 모든 국민에 대한 간첩 조사를 넘어 간첩 수사까지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는 결국 완전한 군사독재정권에 부역했던 정보기관으로 되돌아가는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다극화되는 국제질서 속에서 국가안보를 튼튼히 하기 위해 형법의 간첩죄 관련 조항을 개정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반대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면서도 "법률 개정으로 인해 국가비밀정보기관의 무고한 간첩혐의자 양산 위험과 인권침해를 야기하는 사찰 등 권한 남용을 감수할 수는 없다"며 재논의를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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