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선미 칼럼] 스타벅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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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선미 칼럼] 스타벅스

문화매거진 2024-11-18 11:14:24 신고

▲ 스타벅스, 노트에 연필 / 그림: 권선미
▲ 스타벅스, 노트에 연필 / 그림: 권선미


[문화매거진=권선미 작가] 이래저래 말이 많은 브랜드다만, 나는 여전히 스타벅스를 좋아한다. 엄밀히 말하자면 ‘좋아한다’를 넘어 권태기를 지나 이제는 정이 붙어 어쩔 수 없이 다시 찾게 되는 곳이라는 것이 더 정확하겠다. 

처음 스타벅스를 다니기 시작한 건 이십대 초중반에 들어서 작업실이 없을 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엔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기보다는 노트에 크로키를 그리거나, 태블릿으로 그리는 그림들이 주를 이루었었기 때문에 큰 작업실이 필요하진 않았다. 나에게 필요한 건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다른 카페들에 비해 아침 일찍 문을 열고,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며, 고작 4,100원에 콘센트가 공짜이고, 기분 좋은 노래와 무료 와이파이와 깨끗한 화장실이 제공된다. 게다가 골드 레벨이 되면 커피 12잔에 커피 1잔이 무료이고, 생일엔 생일이라고 음료 쿠폰도 준다. 다른 프랜차이즈와 다르게 진동벨을 쓰지 않는 아날로그스러움도 좋았다. (게다가 끝까지 진동벨은 죽어도 안 쓰고 사이렌 오더를 만들어낸 스타벅스가 여전히 좋다. 개인적으로 진동벨은 낭만적인 발명품은 아닌 것 같다.) 

직영으로 운영되는 덕분에 웬만해서는 망하지도 않는다. 게다가 겨울엔 저 멀리 서울까지 나가지 않더라도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한껏 느낄 수 있는, 나에게는 그야말로 좋다 못해 눈물 나게 감사한 선물 같은 공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스타벅스 이용 시간은 출근 전 아침 7시부터 10시 사이의 시간이었는데, 그 시간의 스타벅스만큼은 아주 조용하고, 가끔은 나 혼자이고, 누군가 그 시간대에 나처럼 혼자 커피를 마시고 있다면 은밀한 친밀감 같은 게 느껴지곤 했다.

스타벅스엔 ‘오늘의 커피’라는 메뉴가 있는데, 이건 가격이 또 싸서 당시엔 3,900원에 커피를 마실 수 있었다. 매일 아침 오늘의 커피를 마시다가 어느 날은 직원이 ‘오늘의 커피를 좋아하시나 봐요?’라고 물었는데, 나는 그냥 에헤헤 웃고만 말았다. 차마 이게 싸서 마신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솔직히 나에겐 그 맛이 그 맛이었기 때문에...) 나에게는 커피가 아니라 공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아마 개인 카페였다면 나는 눈치가 보이고, 부끄러워 그리 오랜 시간 앉아있지 못했을 것 같다. 오히려 대기업이니 ‘나 하나쯤이야 이렇게 한가한 시간에 오랜 시간 죽치고 있더라도 별 탈은 없겠지’, ‘콘센트를 이렇게 사용하더라도 대기업이니까 괜찮겠지’ 싶어 나는 어찌 보면 대기업이라는 스타벅스를 언덕처럼 비비면서 살아왔다.

그에 대한 감사함이랄까 싶은 마음으로 주식을 시작하며 한때는 스타벅스 주식을 보유하기도 했었지만 작업실을 가지게 되면서는 다 처분했다. 내가 스타벅스를 위해 해줄 건 없고 적어도 주주가 되어줄 수 있진 않을까 하는 일방적인 보답 같은 것이었는데, (물론... 나는 개미라기보다 아메바 정도의 지분이었겠지만) 그나마도 돈을 불리려니 몇 년째 110불을 넘지 못하는 스타벅스를 들고 있을 정도로 내가 아직 재산이 안정적이진 못해 스타벅스는 보유종목에서 삭제된 지 오래다. 하지만 내가 여유가 생기게 된다면 배당주로라도 스타벅스를 보유하고 싶은 마음은 여전하다. (물론 그래봤자 개미 정도의 지분이겠지만.)

작업실을 가지게 된 뒤로는 월세가 아까워 스타벅스에 가는 시간을 작업실에서 보내게 되었고, 때문에 몇 년간 유지하던 골드 레벨을 박탈당했다. 그런데 왜일까 작업실에서는 도대체 스타벅스에서만큼의 집중력이나 의지 같은 것들이 떠오르질 않는다. 그게 커피 때문일까 싶기도 해 커피를 사서 작업실로 가기도 해봤지만 역시 뭔가가 다르다.

그래서 나는 작업실에서 뭔가 잘 안 풀리거나, 아침 일찍 부지런해지고 싶은 날이면 여전히 스타벅스에 종종 가곤 한다. 신세계로 편입되고 나서부터 말이 많은 스타벅스지만, 커피가 그다지 맛이 있진 않은 스타벅스지만, 지금은 한물 간 취급을 받기도 하는 스타벅스지만, 마치 그곳은 나의 고향과도 같은 곳이 되어버린 듯하다.

내가 으리으리하고 통창으론 햇빛이 비치며, 계절별로 꽃과 낙엽이 지고,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따뜻하며, 화장실이 쾌적한, 좋은 사운드를 가진 스피커가 구비된 작업실을 가진다고 하더라도 아마 나는 똑같이 종종 스타벅스에 가서 앉아있을 것만 같다.

그냥 오늘도 10년째 다니는 스타벅스의 똑같은 자리에 앉아 삼성 미니 노트북과 LG 보급형 노트북을 거쳐 맥북을 켜고 있는 나를 보며 아마 나의 어느 정도는 스타벅스가 키운 것일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 옛날엔 스타벅스에서 매장마다 하루 한 번 무작위로 커피 한잔 쿠폰을 주는 이벤트가 있었던걸 아시나요? / 그림: 권선미
▲ 옛날엔 스타벅스에서 매장마다 하루 한 번 무작위로 커피 한잔 쿠폰을 주는 이벤트가 있었던걸 아시나요? / 그림: 권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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