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9년 완공된 메인 빌딩은 네오르네상스 건축양식이 특징이다.
싱가포르 역사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래플스’라는 이름이 낯설지 않을 것이다. 토머스 스탬퍼드 래플스 경은 영국의 관료이자 현대 싱가포르를 건국한 인물이다. 그의 이름을 딴 ‘래플스 호텔 싱가포르(이하 래플스 싱가포르)’는 19세기에 문을 연 역사적 호텔로 명성이 높다. 싱가포르를 방문한 세계 각국의 지도자와 마이클 잭슨, 엘리자베스 테일러, 데이비드 보위 같은 톱스타가 머문 곳이자, <래플스 호텔>이라는 제목의 영화와 소설이 존재할 만큼 싱가포르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이러한 유명세는 이곳에 대한 선입견을 더하는 요소일지도 모른다. 래플스 싱가포르로의 여정은 현대의 도심 한복판에서 19세기 별장으로 향하는 시간 여행 같았다.
1 연꽃을 닮은 크리스털 샹들리에가 반기는 그랜드 로비 전경. 2 정원을 둘러싼 보행로.
1887년 개장한 래플스 싱가포르는 아르메니아 출신 호텔 경영자 사키스 형제가 해변 방갈로를 10개 객실의 호텔로 리모델링하며 출발했다. 현재는 고층 건물로 둘러싸여 있지만, ‘비치로드 1번지’라는 주소에서 드러나듯 개장 당시에는 바다를 바라보는 휴양 호텔이었다. 137년의 역사를 몰랐더라도 호텔을 방문한다면 오랜 세월을 짐작할 수 있다. 멀리서부터 자갈이 깔린 진입로와 유럽풍의 낮은 건물이 눈에 띈다. 마차가 다니던 당시 진입로를 유지하고 있기에 자동차는 모래를 밟듯 경쾌한 소리를 내며 호텔 입구에 멈춰 섰다. 로비 입구에서 흰 터번과 제복 차림의 시크교도 도어맨이 투숙객을 반긴다. 이들은 ‘장군(general)’이라는 별명을 가진 이곳의 트레이드마크로, 함께 기념사진을 남기는 것은 필수 코스 중 하나다.
그랜드 로비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근대 유물을 간직한 박물관 같기 때문이다. 호텔 역사보다 더 오래된 괘종시계가 출입문 옆에 우뚝 서 있고, LP 시대 이전의 디스크형 뮤직박스와 빈티지 LP 플레이어 등의 골동품이 로비를 지키고 있다. 짙은 색의 목제 계단과 고전적인 엘리베이터도 긴 시간을 짐작하게 한다. 하지만 이 건물이 고풍스럽되 낡지 않은 까닭은 세심한 복원 작업 덕이다. 1989년에 1910~1920년대 모습으로 되돌리는 전면 복원을 한 차례 시행했고, 2017년부터 포르투갈 출신 인테리어 디자이너 알렉산드라 샴팔리머드와 협업해 3단계 복원 작업에 돌입했다. 이후 2019년
8월 재개장하여 현재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3 메인 빌딩에 위치한 프레지덴셜 스위트의 거실. 호텔에서 가장 넓은 객실이다. 4 침실과 거실, 베란다를 갖춘 그랜드 호텔 스위트. 5 래플스 아케이드에 자리한 레지던스 스위트.
그랜드 로비를 둘러본 뒤 중정을 지나 팜 코트 스위트 객실로 향했다. 엘리베이터를 타는 대신 정원과 텃밭, 나무 데크를 지나 1층 객실에 다다르는 경로였다. 도심 속 고층 호텔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경험이다. 목제 프레임 가구와 천장에서 돌아가는 나무 팬 덕일까, 여름 별장에 온 듯 이국의 정취가 물씬 풍긴다. 객실 내부에도 세심한 복원의 흔적이 나타난다. 스마트 TV, 전기 제어가 가능한 태블릿 PC, 커피머신 등 최신 편의 장치를 비치했지만, 전자기기가 전면에 드러나지 않도록 숨겨두었고, 조명을 조절하는 아날로그 버튼은 그대로 유지했다. 무리한 증축이나 대대적인 리노베이션 대신 문화유산으로서 건축물을 보존하려는 노력 덕에 투숙객은 나무 계단의 결을 느끼며 3층 규모의 건물을 거닐고, 정원을 산책할 수 있다. 호텔이지만 리조트처럼 느껴지는 건 그 때문이다. 더불어 싱가포르 최초로 버틀러 서비스를 도입한 호텔답게 각 객실의 버틀러가 24시간 맞춤 서비스를 제공하니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일은 평온한 호사와 휴식뿐이다.
Writers Bar
라이터스 바
그랜드 로비 오른편에 위치한 ‘라이터스 바’는 차분하게 파인 칵테일에 집중할 수 있는 바다. ‘작가의 바’라는 이름처럼 래플스 싱가포르를 방문한 작가들에게 영감을 받은 시그너처 칵테일이 다양하다. <달과 6펜스>의 작가 서머싯 몸의 스타일을 표현한 피즈 칵테일, 앙드레 말로 소설의 강렬한 인물을 닮은 스피릿 칵테일, 칠레 시인 파블로 네루다의 세계관을 녹인 네그로니 시리즈 등 좋아하는 문학 작품을 떠올리며 주문해보자. 또한 런던의 십스미스(Sipsmith) 증류소와 협업해 만든 ‘래플스 1915 진’은 래플스 싱가포르에서만 맛볼 수 있는 진이다. 이를 활용한 ‘래플스 1915 진 슬링’ 및 진 베이스의 클래식 칵테일도 추천한다.
Long Bar
롱 바
기다란 바 테이블이 놓인 ‘롱 바’는 싱가포르를 대표하는 칵테일 ‘싱가포르 슬링’의 탄생지로 알려진 명소다. 20세기 초 영국 식민지 시기, 영국 법상 여성들은 공공장소에서의 음주가 금지됐다. 이를 주시한 롱 바의 바텐더 응이암 통 분(Ngiam Tong Boon)은 과일 주스처럼 보이는 핑크빛 칵테일을 개발했다. 진과 파인애플 주스, 라임 주스, 체리 및 오렌지 리큐어 등을 조합한 상큼하고 싱그러운 칵테일은 이제 전 세계에서 맛볼 수 있는 클래식 칵테일로 자리 잡았다. 또한 천장에서 기계식으로 움직이는 부채와 바 옆의 당구대, 그리고 최대 18잔의 싱가포르 슬링을 동시에 셰이킹하는 수동 기계 장치에서 지난날을 감지할 수 있다. 볶은 땅콩 껍질을 바닥에 버리는 문화도 유지하고 있어 옛 싱가포르의 정취를 느끼려는 여행객으로 늘 북적이는 곳이다.
Butcher’s Block
부처스 블록
하와이 출신 셰프 조던 케아오(Jordan Keao)가 지휘하는 우드 파이어 레스토랑. 공간에 들어서면 입구의 숙성고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유리창 너머에는 육류와 생선, 가공육, 다양한 피클, 심지어 김치까지 숙성 중이다. 온전한 형태로 유지된 육류와 생선에서 짐작하듯 한 마리 전체를 도축해 활용하는 ‘코부터 꼬리까지(nose to tail)’ 철학을 실천함으로써 제로 웨이스트에 다가가고자 한다. 예컨대 육류와 생선의 뼈는 육수에 활용하고, 지방은 녹여 겉에 바르는 기름으로 활용한다. 또한 하와이안 셰프답게 하와이와 미국 본토, 아시아의 식문화가 어우러진 요리를 선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시즌 테이스팅 메뉴 ‘이무와(IMUA)’는 하와이어로 ‘힘과 정신으로 앞으로 나아가다’를 의미하는데, 하와이 정신과 문화를 담은 계절 요리에 장작 향을 더했다. “향이 가벼워 섬세한 조리가 가능한 호주산 유칼리나무를 장작으로 사용한다”고 셰프는 설명한다. 황다랑어 포케와 피피카울라(하와이의 말린 소고기 요리)를 재해석해 아뮈즈부슈로 선보이고, 하와이의 곁들임 음식인 로미로미는 연기를 가둔 채 서빙하는 등 하와이안 요리와 훈연 향의 은은한 조화가 매력적이다.
근사한 오후를 열다
19세기 무렵 영국에 자리 잡은 애프터눈 티 문화는 오후를 즐기는 우아한 방법 중 하나다. 래플스 싱가포르의 그랜드 로비에서 영국식 클래식 애프터눈 티를 맛볼 수 있는데, 일찍이 호텔 설립 초기부터 사키스 형제가 도입했다. 3단 트레이는 1층의 샌드위치, 2층 페이스트리, 3층 케이크로 구성되며, 여러 종류의 홈메이드 스콘은 별도로 서빙된다. 티는 홍차, 백차, 녹차, 꽃차 등 종류가 다양하며, 샘플을 제공하니 직접 시향한 뒤 마음에 드는 차를 고를 수 있다. 래플스만의 전용 보틀에 병입한 빌카르-살몽 샴페인 역시 디저트의 근사한 짝이다. 차와 함께 디저트를 아래층부터 맛보다 보면 금세 오후가 무르익는다.
색다른 아침 산책
래플스 아케이드에 위치한 래플스 스파는 휴식과 이완을 위한 장소다. 트리트먼트 룸, 사우나, 온수 풀 등의 시설을 갖추었고, 야외 활동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다. 그중 싱가포르 식물원에서의 아침 산책에 따라 나섰다. 싱가포르 식물원은 녹지 가득한 도시에서도 역사가 가장 오래된 식물원으로, 1859년 농장 대지에 조성했다. 울창한 열대 나무 사이 오솔길을 따라 걷다 보니 도시화 이전 태초의 싱가포르 풍경이 이런 모습일까 상상이 이어졌다. 싱가포르를 상징하는 오키드꽃을 모아둔 오키드 가든과 들판, 연못, 숲을 찬찬히 둘러보다 테라피스트를 따라 명상의 시간을 가졌다. 싱그러운 풀 내음을 맡으며 천천히 숨을 들이쉬는 것만으로 이내 마음이 차분해졌다.
실속 있는 싱가포르항공 이용법
벌써 2025년 달력의 연휴를 살피며 해외여행 계획을 세우고 있다면, 항공권부터 예약해야 할 터. 몰디브, 세부, 푸껫과 같은 휴양지는 물론 유럽, 미국, 호주 등의 장거리 여행지 등 전 세계 노선을 갖춘 싱가포르항공은 매력적인 선택지다. 이때 싱가포르항공과 신한카드가 함께 출시한 제휴카드 ‘크리스플라이어 더 베스트 신한카드’를 활용하면 더욱 풍성한 프리미엄 혜택을 누릴 수 있다. 연 1회 싱가포르항공 크리스플라이어 1만5천 마일리지가 제공되며, 스타얼라이언스 항공사와 싱가포르항공 그룹의 저가 항공 스쿠트항공에서 마일리지 적립과 사용이 가능하다. 또한 래플스 싱가포르 투숙 시 전 객실 20%, 부대시설 15% 할인 혜택과 무료 조식, 래플스 역사 탐방 투어, 웰컴 싱가포르 슬링도 함께 제공하니 싱가포르 여행을 앞두고 있다면 눈여겨볼 것.
취재 협조 래플스 호텔 싱가포르(www.rafflessingapore.com), 싱가포르항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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