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을 번역하는 아티스트 하얄 포잔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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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번역하는 아티스트 하얄 포잔티

더 네이버 2024-10-10 09:34:30 신고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제시카 실버맨 갤러리(Jessica Silverman Gallery)는 ‘프리즈 서울 2024’에서 아티스트 하얄 포잔티(Hayal Pozanti)의 솔로 부스를 선보였다. 이스탄불 출신 작가는 뉴욕으로 이주한 뒤 회화, 조각, 콜라주, 디지털 애니메이션을 오가며 작업했고, 직접 개발한 31개 알파벳을 기하학적으로 표현하는 연작에 몰두했다. 그랬던 그는 이제 생생한 색을 혼합해 캔버스에 자연을 담는다. 프리즈 서울 첫날, 부드러운 색채의 물결이 일렁이는 부스에서 작가와 마주 앉았다. 이튿날 광주비엔날레에 참석해야 한다는 그는 바쁜 와중에도 이미 서울숲에 들러 한국의 식물을 구경했노라 말을 꺼냈다.

Hayal Pozanti, ‘Water of a new life’, 2024, Oil stick on linen, 152.4×203.2cm. Photo by John Polak. Courtesy of the artist and Jessica Silverman, San Francisco.


제시카 실버맨 갤러리와 오랜 시간 협업했다.
예일대 석사과정의 마지막 주였다. 한 컬렉터가 내 스튜디오에 방문해 ‘당신의 그림을 좋아할 사람이 있다’고 말했다. 그 사람이 제시카 실버맨이었다. 컬렉터는 곧장 작품 사진을 찍어 제시카에게 보냈고 그의 예상대로 제시카는 내 작업을 좋아했다. 이후 내가 뉴욕으로 이사한 뒤 제시카가 스튜디오를 방문했다. 2011년의 일이다. 이후 13년 동안 함께 일해왔다. 


프리즈 서울 솔로 부스에서 방문객에게 무엇을 보여주고 싶었나?
보다시피 밤과 낮의 풍경화도 있고, 나무와 식물, 유기체의 세부를 묘사한 작품도 있다. 두 가지 스타일이 섞이길 원했다. 관람객은 풍경화를 먼저 접한 뒤 옆에 걸린 미시적인 작품을 따라 그림 속 세계로 진입할 수 있다.

31개 알파벳을 개발해 기하학적으로 다룬 작업으로 이름을 알렸다. 어쩌다 문자에 매료되었나?
현대인은 모든 정보와 콘텐츠를 인터넷으로 먼저 접한다. ‘주목 경제(Attention Economy)’ 시대인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인터넷 다루는 사람들의 속도를 늦출 수 있을까 고민했고, 세상 무엇과도 닮지 않은 형태를 고안해 암호체계를 발명하기에 이르렀다. 고대 문자가 어떻게 탄생했는지 비교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나만의 언어를 형성하는 과정은 자연스러웠다. 최근 작업에 이르러 자연을 스케치할 때면 풍경이 나의 언어로 말을 거는 것 같다. 나는 그들이 말하는 방식대로 대상을 그린다. 즉, 자연의 에너지를 번역하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LA로 이주 후 아크릴에서 오일 스틱으로 재료를 바꾸었고, 손가락으로 작업하는 방식을 확립했다.
이전에는 기술이 문화에 미치는 영향에 관심이 컸다. 그러다 점차 기술이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흥미를 느꼈다. 삼림 벌채나 플라스틱 소비가 그 예시다. 이윽고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위한 아이디어를 탐구해나갔다. 지속 가능한 스튜디오를 꾸리기 위해 아크릴에서 오일 스틱으로 재료를 바꾼 것도 실천의 하나였다. 아크릴은 플라스틱으로 만들기에 생산과 처리 과정이 유해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오일 스틱과 함께 스펀지나 붓을 사용했지만, 재료를 몸으로 느끼고 싶었고 어떤 도구도 작업을 방해하지 않기를 바랐다. 회화지만 조각과 같은 관계를 맺고 싶었달까. 그래서 손가락을 활용하기 시작했다. 팬데믹 시기 집 뒷마당으로 작업실을 옮기고 야외에서 그림을 그리는 동안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Hayal Pozanti, ‘All the honey-sweetness’, 2024, Oil stick on linen, 152.4×121.9cm. Photo by John Polak. Courtesy of the artist and Jessica Silverman, San Francisco.

도구와 손가락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나?
붓을 사용할 때 손목이 아팠다면 지금의 작업 방식은 육체적으로 훨씬 편안하고 직관적이며 작업 속도도 빠르다. 손가락은 압력 조절이 자유롭기에 더 섬세한 작업이 가능하다. 이를 위해 표면이 아주 매끄럽고 부드러운 캔버스를 사용한다. 

그래서 손이 거칠 것이라 생각했다. 손은 어떻게 관리하나?
맨손으로 작업하는데 색을 칠할 때마다 손을 씻고 수건으로 닦은 뒤 호호바 오일을 바른다. 부드러운 손의 비결이다(웃음).


작업 중 완전한 몰입이 찾아올 때는 언제인가?
대상을 바라보며 스케치할 때. 세상이 나를 향해 노래하는 것만 같다. 사적인 경험이지만 누구나 이 같은 감정을 겪었을 것이다. 사람들이 자연과 접촉하며 세상의 아름다움을 보존하는 방법을 찾기를 바란다. 불안을 느낀다면 자연을 감상하며 그 일부가 되어보라. 무엇이 중요한지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자연과 연결된 경험 중 기억에 남는 순간을 공유한다면?
어린 시절 어머니와 달을 보곤 했기에 달은 내게 각별한 의미가 있다. 우리 가족은 매달 작은 초승달이 뜨면 달을 바라본 뒤 서로 마주 보며 눈을 초승달처럼 만들어 미소 지었다. 소원을 빌듯 아름다운 한 달을 기원하는 의식이다. 


‘비밀을 속삭이는 목소리’, ‘우리가 전할 이야기가 있는 곳’, ‘단순한 영원’ 등 작품 제목이 시적이다.
(스마트폰 메모장을 보여주며) 제목 후보를 아주 많이 저장해두었다. 시를 비롯해 모든 종류의 글 읽기를 좋아하며 직접 시를 쓰기도 한다. 작품을 완성한 뒤 오랜 시간에 걸쳐 만들어둔 제목 목록을 훑어보며 ‘이거다!’ 싶은 것을 찾는다.


생동감 넘치는 색채에서 부드러운 운율이 느껴진다. 색을 조합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한 색채가 근접한 다른 색에게 말을 건다. 아주 어릴 적부터 그림을 그렸기 때문에 어떤 색이 함께일 때 아름다운지 직감적으로 알 수 있다. 또한 색은 내게 음악과 같다. 설명하기 어렵지만, 어떤 대상을 관찰하며 그릴 때 피사체의 노래가 들리는 것 같다. 동시에 작품 속 풍경이 다른 세계처럼 보이기를 원하므로, 보통 함께 사용하지 않은 색을 고른다. 물론 미술사의 영향도 내재되어 있다. 그 모든 것들이 머릿속에 뒤섞인 결과물이다.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하다.
내년 4월 제시카 실버맨 갤러리에서 열 개인전을 준비 중이다. 또한 광주비엔날레 아메리카 파빌리온에 조각 작품을 출품했고, 11월에는 하이엔드 패션 브랜드와의 컬래버레이션 프로젝트를 공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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