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매거진=MIA 작가] “참으로 진지한 철학적 문제는 오직 하나뿐이다. 그것은 바로 자살이다. 인생이 살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를 판단하는 것이야말로 철학의 근본 문제에 답하는 것이다.” -알베르 카뮈, 시지프 신화, 민음사, 15쪽
알베르 카뮈의 책 ‘시지프 신화'에서 위와 같은 문구를 접했을 때는 이제 막 세 번째 그림책 콘셉트 구상을 마친 때였다. ‘구름은 설명하지 않는다’는 가제로 작업 중이던 그림책 이야기는 ‘마음’과 ‘변화’라는 두 가지의 키워드를 중심으로 흘러가는 중이었으며, 세부적인 스케치를 구상하기 위해 이런 저런 실험들을 하고 있었다. 이 작업에서 주요한 메타포로 삼은 건 구름이 가진 이미지였다. 구체적 형상보다도 항상 흐르며 시시각각 변화하는 성질 자체에 집중하려고 했다.
구름은 눈앞에 현현하지만 순식간에 사라진다. 변화의 이유를 설명하지도 않는다, 다만 보여줄 뿐이다. 이런 물성을 바탕으로 세 번째 그림책을 통해서는 어떤 찰나와 헛됨을 말하는 동시에, 그 헛됨도 자연스러움의 일부가 될 수 있다는 역설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때마침 보게 된 카뮈의 텍스트는, 읽으면 읽을수록 마치 나의 생각을 베껴 쓴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결정적이었다.
“부조리란 오직 둘 사이의 균형 속에서만 의미를 가질 수 있으며, 비교되는 어느 한쪽 항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두 항의 비교에 의해서만 존재한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60)
“산다는 것은 곧 부조리를 살려 놓는 것이다. … 이제 나는 자살의 개념에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 이번에는 그와 반대로 인생에 의미가 없으면 없을수록 더 훌륭히 살아갈 수 있다고 여겨지는 것이다. … 나는 부조리가 지탱되려면 부조리 자체가 해소되어 버려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안다.”(83) -위의 책
특히 공감한 부분은 책에서 소개하는 주요 개념, 부조리에 관한 감각이었다. 인간의 이해를 벗어난 이 ‘두꺼운' 세계에서, 인간에게 이방인이 되는(것 같은) 기분을 부여하고야 마는 부조리에 관한 날카로운 통찰과 해석은, 당시에 내가 늘 고민하고 봉착하는 문제의 원천을 밝혀 보여 주었다. 더불어 자살이나 희망은 부조리를 구성하는 하나의 항을 없애는 행위이기 때문에 해결책이 아니라는, 카뮈 특유의 치열성이 드러나는* 귀결까지도.
이 텍스트가 나의 작업이 품은 무언가를 구체적으로 드러낼 응당한 철학적 실마리로 보였던 이유는, 이 작업을 할 무렵 나는 한창 무상함과 열망 사이에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가령 늘 괴로운 자아, 문제의 본질로 들어가려는 버릇, 알게 모르게 재편되고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 감정적으로 자각하는 ‘살고 싶지 않다’는 마음, 논리적으로는 삶 자체를 쓸모 없거나 비효율적으로 여기는 사고를 포함하는. 나의 이런 상태는 자각하지 못한 채 작업에 그대로 스며 들어가는 중이었다.
추론 끝에 ‘반항’, ‘자유’, ‘열정’이라는 세 가지 귀결을 이끌어내는 카뮈의 결론까지 동의했는지 아직은, 불분명하다. 지금 내게 그럴만한 에너지가 없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각해 볼 여지는 있다. 저 키워드들이 내게는 비장하고 대단한 의미로 다가오는데 저자가 그렇게까지는 묘사할 생각이 없었다면. “그저 다들 그렇게 산다”는 인생에 관한 상투적인 묘사를 한꺼풀 벗기면, 평범함이 곧 치열한 삶 자체와 다를 바 없음을 알게 되기도 하는 것처럼.
열정에 관한 확신은 없지만, 작품에서는 다른 대답을 기대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다음의 인용이 계시하듯,
“그러나 매 순간 긴장을 유지한 채 세계와 마주 보며 정돈된 광란 속에서 모든 것을 맞아들이려 애쓰는 인간의 마음속에는 또 다른 열기가 남아 있다. 이제 이 세계에서 작품은 그의 의식을 지탱하고 그 의식의 모험들을 고정시킬 수 있는 유일한 기회다. 창조한다는 것은 두 번 사는 것이다.” -위의 책, 144쪽
*카뮈는 부조리를 ‘단절’이라는 정적인 ‘상태’로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 여기에 카뮈 특유의 치열성이 드러난다. 따라서 그의 책에서는 출발점으로서 부조리 그 자체보다는 부조리에서 논리적 귀결을 이끌어 내는 노력에 더 큰 중요성이 있는 것이다. (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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