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김기주 기자] 무하유지향(無何有之鄕)이란 장자가 추구했던 이세계로 언어 그대로를 해석했을 때 어디에도 없으며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곳을 뜻하지만, 장자는 무하유지향을 사전적 정의에서 나아가 확실히 존재하며 언젠가 도달해야 할 안식처로 보았다.
장자가 겪어왔던 중국은 시대상이 굉장히 혼잡스러웠고 지나친 영토 확장에 혈안이 돼 있던 통치자들은 무분별한 전쟁을 일삼았다. 이로 인해 백성들은 삶도 희망도 잃은 채 육체를 건사하지 못하고 목숨을 잃었다. 장자는 당시 느꼈던 통탄스러움과 비참함을 환기하고자 현 세태를 뒤로 한 이상 세계를 지향하게 되었다. 생사의 경계와 인간에게 주어지는 의무를 벗어나 모든 것이 평화를 이루는 달관을 꾀한 것이다.
역사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유토피아는 지난한 세월이 흘러 도달한 지금의 순간에서도 인간이 여전히 갈망하는 철학이 되었다. 현대에서 누구나 지니고 있는 스트레스 또는 본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떠안아야 하는 책임감 등은 우리 삶에서 많은 이들이 구속을 느끼는 고질적 문제이다. 정유나 작가는 하루에 몇 번씩이나 떠오르는 부정적인 감정에서 초조함을 다스리기 위한 수행의 목적으로 작업에 임한다.
과도한 생각이 이어지면 사고 회로에 오류가 나타나고 오류는 심리적 공포나 그에 준하는 부정적 감정을 유발한다. 작가는 밀려오는 불안 증세가 결국 건강하지 못한 생각에 기인하는 것이라 보고 이를 부정생각과다분비증이라고 칭한다.
스스로 체감하는 질환이 육체적 틀 안에서 존재하는 에고(ego)의 조종 여부에 관한 것으로 인식하여, 정신적 체계가 온전히 바로잡힐 수 있도록 반복의 과정을 거쳐 에고의 껍데기로부터 탈피하고자 한다. 그칠 줄 모르는 단계가 쌓이며 만들어지는 결과물은 곧 작가의 작품으로 완성된다.
작품은 그 자체로 머릿속 잡생각을 지우고 공백의 상태에 다다르기 위한 목적의식을 담고 있다. 질병을 덜어내고 흐트러진 중심을 잡아 심신에 자유를 주기 위한 수행은 작가가 직접 터득한 치료법이다.
특히 ‘160181번의 집중’ 작은 현재 시점에서도 계속해서 이어가는 시리즈로 개인의 경험에서 비롯되었으나 폭넓게 번져있는 사회적 문제를 함께 아우르려 한다. 정유나 작가는 정신 질환이 형성되는 배경과 인과 관계를 육신의 껍데기와 진정한 자아로 구분하여 분석한다. 나아가 육신을 지배하는 매개체를 중심으로 심리와 감정, 마음, 생각 따위가 파생되어 날카롭게 작용할 때 기운을 모아 수행하는 행위를 해결 방법으로 연구하여 실천한다. 겉으로 둘러싸인 껍데기의 악영향을 최소화하고 부정을 걷어내려는 의식을 통해 내면을 더욱 단단하게 할 뿐 아니라 맑은 해방감을 자아낸다. 바탕재 위에 붓으로 문지르고 또 문질러 누적된 층들은 조화를 이루며 예측불허의 조형성을 탄생시킨다. 이와 같은 과정이 전부 지나면 비로소 작가 고유의 예술이 한눈에 드러난다.
작가의 예술적 소양은 앞서 언급한 장자의 무하유지향과 일맥상통한다. 현실성을 찾아볼 수 없는 완벽하고도 완전한 이상향은 어떠한 속박과 굴레도 없는 무(無)를 상징하고 작가가 좇는 궁극의 취지와 맞닿아 있다.
작품은 단순한 그림 또는 평면이라 일컫기에 부족하다. 이는 곧 그림으로서 명상과 수행의 길을 걸은 자취의 증명이다. 다른 누구도 아닌 본인만의 생각과 감정을 통제하고 조절하는 일을 소화해 낸 것이다. 정유나 작가는 그렇게 천천히 쌓아 올린 마인드 컨트롤의 정수를 보여준다. 우리 눈에서 드러나지는 않지만 무의식 저편 어딘가 틀림없이 존재하는 고유의 세계를 잠재된 관점으로 인지하고 흡수하여 예술의 영역에서 초월적으로 활약한다.
이번 전시에서 아직 얽매여 있는 남모를 고통에 불안해하고 있다면 정유나 작가의 작품을 통해 각자의 수행법을 도모해 보기 바란다.
정유나 작가의 ‘무하유지향 : 그 확실히 존재하는 안식처’는 10월 2일부터 8일까지 갤러리 도스에서 열린다.
글=최서원 갤러리 도스 큐레이터
사진=갤러리 도스
뉴스컬처 김기주 kimkj@knewscor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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