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대표적인 패턴이자 25개의 점을 수놓아 만드는 원형 ‘탬버린(Tambourine)’. 2 미나 페르호넨의 패턴으로 가득 채운 전시장 입구. 3, 4 패브릭을 커튼처럼 설치한 ‘풍경’ 공간. 이 외에도 전시는 ‘구름’, ‘숲’, ‘열매’, ‘새싹’, ‘바람’, ‘뿌리’, ‘씨앗’, ‘물’, ‘흙’, ‘하늘’ 등 총 11개 방으로 꾸렸다. 5 패션과 액세서리, 다양한 브랜드와 협업한 제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6, 8 작은 원단 조각도 버리지 않고 활용한다. 7 디자이너가 영감을 받은 소품들. 9 도예가 애나 블랙과 협업한 작품. 10 패브릭 아트피스 같은 의상 303벌이 흰 벽면을 빼곡히 메웠다. 11 원단 작업을 위해 직접 그림을 그린다.
12 지속 가능성을 화두로 삼은 미나 페르호넨. 13, 14, 15 자연에서 얻은 영감이 작품이 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공간. 16, 17 창립자 미나가와 아키라와 그의 드로잉.
18 잡지 표지용 원화. 19 연도별로 패브릭들을 배치한 전시 공간. 20 패션지에 소개해도 손색없을 미나가와의 의상 드로잉. 21 영상물을 볼 수 있는 장소의 소파 패턴과 의자에서도 브랜드 정체성을 엿볼 수 있다. 22, 23 익명의 고객이 들려주는 미나 페르호넨의 옷과 얽힌 추억을 볼 수 있는 공간.
‘탁, 탁, 탁, 탁.’ 수를 놓는 소리가 경쾌하게 울려 퍼지는 전시장에 독창적으로 해석한 자연의 아름다움, 사물과 함께 나눈 숙성된 기억이 종횡으로 엮여 있다. 일본의 대표적인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미나 페르호넨의 철학과 세계관을 담은 전시 <미나 페르호넨 디자인 여정: 기억의 순환>이 국내 최초로 DDP에서 열린다. 핀란드어로 미나(minä)는 ‘나’, 페르호넨(perhonen)은 ‘나비’를 뜻하며 ‘100년이 지나도 좋은 옷’을 만드는 것을 모토로 한다. 창립자이자 디자이너 미나가와 아키라는 1995년 브랜드를 설립한 후 지금까지 원단의 초석인 스케치를 손수 그리고 버리는 천 없이 천천히 정성 들여 만드는 제작 방식을 고수한다. 일본 내 다양한 분야의 장인과 협업해 만드는 구체적이고도 편안한 디자인 제품은 유행에 관계없이 오랜 시간 사랑받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30여 년간 미나 페르호넨이 닦아온 굳건한 행보와 작업 과정, 이를 보여주는 원단과 옷을 비롯한 제품들, 미나가와 아키라의 작품 세계를 엿볼 수 있는 드로잉 작업 등을 만나볼 수 있다. 오래 협업해온 미스터포터, 아르텍, 크바드라트 등의 브랜드와 함께한 제품뿐만 아니라 한국 전시를 위해 이상훈, 문승지, 임태희, 최덕주 등 국내 작가 4인과 협업한 작품도 새롭게 선보인다. 전시장 말미에는 익명의 고객들이 미나 페르호넨의 옷과 함께한 다양한 사연이 전시되어 있다. “입는 사람의 평생을 함께하고 상상력과 추억을 연결하며 오랫동안 기억되고 사랑받는 옷을 만들고 싶었습니다”라고 말하는 미나가와 아키라의 디자인 철학이 사용자에게 어떻게 가닿았는지 명징하게 느낄 수 있는 공간. 삶을 반영한 디자인은 시간이 흐르며 숙성되어 풍성한 기억으로 자리하고 영원한 존재로 남는다.
1 미나 페르호넨의 원단을 거대한 작품처럼 이어 붙인 패치워크 앞에 선 창립자 미나가와 아키라. 2 패브릭에 대한 애정과 패션을 대하는 철학을 공유하는 스타일리스트이자 아트디렉터 서영희. 3 미나가와 아키라가 한국에 들어와 그린 페인팅 앞에서 인형을 들고 선 두 사람.
당신의 책 <살아가다, 일하다, 만들다>를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패션 디자이너라는 직업으로 세계와 소통한다는 큰 그림이 멋지게 다가왔어요. 1986년 당시 패션 전공자가 핀란드로 떠나는 일은 드물었을 텐데 핀란드의 어떤 점에 이끌렸나요?
조부모님께서 북유럽 가구를 수입하는 일을 하셨어요. 덕분에 핀란드, 스웨덴, 덴마크 같은 나라의 가구를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었고, 호기심을 갖게 됐죠. 19세가 된 겨울에 핀란드로 갔는데 너무 추웠어요(웃음). 핀란드를 여행하며 저 자신에 대해 좀 더 알 수 있었습니다. 저는 새것보다 오래된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었어요. 오래됐어도 좋은 것이라면 계속해서 생산하는 북유럽의 디자인 철학에 깊이 공감했고 그것이 브랜드 방향성을 잡을 때 근간이 되었다고 할 수 있죠.
디자이너가 직접 원단을 만드는 경우는 드물기에 브랜드의 진정성이 크게 와닿습니다. 소재에 몰입하게 된 이유가 있나요?
옷은 형태도 중요하지만 피부에 바로 닿는 것이잖아요. 입기 편하고 부드러워 기분이 좋아지는 감촉의 옷, 닿았을 때 마음이 따뜻해지는 옷을 만들고 싶고, 그것부터 시작하는 게 디자인이라고 생각했어요. 옷은 작은 건축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옷이라는 공간에 살고 있는 거죠.
매우 동감해요. 그렇게 본질을 추구하는 지점이 소비자를 무장해제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패턴 드로잉을 하는 영상을 보면 손이 가는 대로 슥슥 별것 아닌 듯 그리는데 그게 별거더라고요. 당신만이 할 수 있는 영역 같았어요. 언제부터 패턴 드로잉에 자신감을 갖게 됐나요?
저는 브랜드를 만들고 나서부터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그림을 배우거나 그림에 대해 평가를 받은 적이 없었죠. 그래서 더욱더 자유롭게 그릴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솔직히 여전히 자신 있다고 할 수는 없어요. ‘이건 너무 잘 그렸다’, ‘모든 사람이 좋아하겠다’라는 생각도 없죠. 보통이에요. 그저 내가 평소 생각하고 감상한 것을 손끝으로 표현하고 나눌 수 있는 것을 즐거워하며 일할 뿐이죠.
1 한산모시에 미나 페르호넨의 상징적 패턴 ‘탬버린’을 수놓은 최덕주 공예가의 조각보. 2 공간 디자이너 임태희는 한지와 미나 페르호넨의 패턴을 더한 수납 가구를 만들었다.
그게 바로 자신감이겠죠. 한복 짓는 방식을 보면, 나중에 체형이 변했을 때 다시 박음질할 수 있도록 소맷단을 자르지 않고 안으로 접어 넣어 재단하는데요. 마찬가지로 직접 원단을 만드니 어떻게든 버리는 것 없이 디자인할 수 있을지 고민할 것 같아요.
이번 전시에 자투리도 아껴가며 어떻게 하나의 원단을 재단하는지 제작 과정을 관람하는 코너가 있어요. 마지막 남은 작은 부분까지 단추를 감싸는 용도로 사용할 것을 고려해서 제작하죠. 공장에서 재단하고 남은 원단을 가져다 아틀리에에서 브로치나 액세서리, 쿠션 등을 만들기도 하고요. 아까워서라기보다 원단을 만드는 작업자를 존중하고 그들의 노고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잡지 <SOEN>에 패턴과 에세이를 15년 동안 연재했어요. 1979년 제가 의상학과 1학년일 때부터 패턴을 참고하고 그 패턴으로 옷도 만들어 입었기 때문에 정말 반가웠습니다. 여전히 종이 매체를 좋아하시는지?
지금도 다 종이로 봅니다. 책도 잡지도요. 다만 책도 하나의 물건이잖아요. 저는 책을 단순히 정보를 얻는 물건이라 생각하지 않아요. 책이라는 물질을 어떻게 활용할지 고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책 만드는 과정과 방법이 궁금해요. 직접 만들어보고 싶기도 하고요.
초창기 전국으로 세일즈하러 다녔지만 큰 성과가 없었다고요. 포기할 법도 한데 지속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처음부터 패션 쪽 일은 저와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었어요. 파리에서 패션쇼 무대 뒷일을 아르바이트로 도우며 패션을 시작했는데 그때부터 잘한다는 생각은 없었죠. 그럼에도 하고 싶었고, 한번 시작했으면 당장 돈을 못 벌고 잘해내지 못해도 그만두면 안 된다는 생각을 했어요. 계속해서 이어가고 어떻게든 해내겠다는 마음이었죠.
3 자투리 없이 모든 천을 활용해 완성한 문승지 작가의 의자. 4 이상훈 작가는 2024-25 A/W 패턴인 ‘glass flower’ 패브릭을 감싼 의자를 선보였다.
저도 오래 일했지만 확신을 갖기 어려울 때가 있어요. 다만 패브릭을 좋아해 직접 바느질도 하고 치앙마이로 바느질 여행도 떠나는 등 나를 찾아가는 여정이라고 생각하죠. 당신은 자신을 찾았다고 생각하나요?
저는 매일 손을 움직이고 뭔가 새로운 것을 만들면서 나를 찾아간다고 생각해요. 매일 새로운 나를 발견하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저에게 일을 하는 건 곧 나를 찾는 여행이기도 합니다. 지금 인터뷰를 나누는 공간 뒤에 걸린 그림이 제가 한국에 와서 작업하고 있는 페인팅 작품인데요. 자세히 보면 그림 속에 말 두 마리가 있어요. 두 마리 말이 서로 마주하고 있는데 안개처럼 자욱한 무언가 때문에 서로 보지 못하고 있죠. 제 삶도 그런 것 같아요. 안개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지 못하고 그저 계속 진행하다 보면 어느 순간 반대편에서 무언가 다가와 나 자신을 발견하는 거죠.
맞아요. 우리 모두의 인생이 이 그림 같아요. 그럼에도 당신을 도와주는 좋은 인연이 정말 많아 보여요. 비즈니스라고 하기엔 동화 같은 관계이기도 하고요. 무슨 비결이 있는 걸까요?
처음 2년 동안은 월급을 한 푼도 못 줬어요. 나중에 자리 잡으면 지금까지 밀린 월급을 다 주겠다고 했더니, 직원들이 그것을 더 필요한 사람에게 주라고 했죠. 이런 좋은 인연이 모여 지금의 미나 페르호넨이 존재하게 됐습니다. 지금은 시대가 많이 바뀌어서 딱 잘라 얘기하기 어렵지만 일본에서는 전체적으로 행복을 우선순위로 추구하는 것 같아요. 다른 사람이 즐거워하는 것을 같이 즐거워하는 문화도 있고요.
이번 전시를 통해 국내 작가들과 협업도 하셨어요. 한국의 미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특별히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나요?
일본과 한국의 미의식은 닮은 지점이 많은 것 같아요. 완벽한 형태를 추구하기보다는 어떤 불안정함 속에서 아름다움을 찾는 것을 느낍니다. 사람이 손으로 만든 형태, 조금 울퉁불퉁해도 그것에서 아름다움을 찾는 거죠. 시간과 물, 바람이 흐르는 걸 느끼며 만들고 보는 이들도 이를 알고 즐기는 민족이라고 생각해요. 일본 도자기는 한국을 통해 배워서 발달했어요. 한국에 온 김에 조선시대 도자기 문화를 배워보고 싶어요.
여전히 꾸준히 달리기를 하나요?
요즘은 전력 질주하는 것이 조금 힘들어서 주로 걷습니다. 가볍게 자주 몸을 움직이려고 하죠. 가끔 수영을 하는데요, 물속에 들어가 수영을 하다 보면 때때로 그림 그리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interviewer Seo YoungHee
더네이버, 라이프스타일,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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