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14일(현지시간) “새로운 시작”이 필요하다며, 다음 달로 예정된 집권 제1당인 ‘자민당’의 총재 선거에 불출마하겠다고 밝혔다.
자민당 소속으로 오랫동안 정치계에 몸담아온 기시다(67) 총리는 오는 9월 자민당의 새 총재가 선출되면 총리직에서 물러날 것으로 예상된다.
2021년부터 일본의 총리로 활동하고 있는 기시다 총리 내각 지지율은 최근 자민당 관련 부패 스캔들, 고물가, 엔화 약세 등으로 인해 곤두박질쳤다. 기시다 총리의 지지율은 지난달 15.5%로 조사됐는데, 이는 지난 10년간 일본 총리 지지율 중 최저치였다.
기시다 총리는 14일 불출마 의사를 표하는 기자회견 자리에서 “다가오는 총선에서 국민들에게 자민당이 변할 것임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투명하고 공개적인 선거, 자유롭게 열려 있는 토론이 중요하다. 자민당의 변화를 가장 쉽게 보여줄 첫 번째 단계는 바로 나의 퇴임”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앞서 자민당 내부에서는 기시다 총리가 2025년 차기 총선에서 자민당의 다수당 지위 유지를 끌어낼 수 있을지 의문을 표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자민당은 지난 1955년 거의 계속 집권당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자민당 지도부는 기시다 총리의 이번 불출마 선언에 충격을 받은 모양새다.
한 고위 당 대표는 현지 ‘NHK’와의 인터뷰에서 기시다 총리의 연임을 설득하고자 했으나, 기시다 총리가 이는 “무책임한 일”이 될 것이라고 했다고 전했다.
자민당 내 기시다 총리 파벌로 분류되는 한 의원은 이번 결정에 대해 “매우 유감스럽고 불행한 일”이라면서 기시다 총리가 “외교, 국방, 국내 정치에선 좋은 성과를 보였으나, 정책과 돈 관련 문제로 인해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고 덧붙였다.
한편 전문가들은 BBC에 여당이 이미지 쇄신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가운데 일본 사회가 “한세대에 한번” 나올법한 정치적 위기를 겪고 있다고 분석했다.
지난해 12월, 자민당 내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자랑했던 파벌이 연루된 모금 행사 비자금 스캔들로 인해 2주 만에 내각 각료 4명이 줄줄이 사임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가 이끌던 같은 파벌에 속한 수석 차관급 5명과 정무 차관 1명도 사임했다.
일본 검찰은 수백만달러가 공식적인 당 기록에서 누락된 모금 행사를 통해 자민당 의원 수십 명이 부당한 이익을 챙기는 범죄를 저질렀는지 수사에 착수했다.
그러나 기시다 총리는 해당 비자금 스캔들을 다루는 과정에서 대중의 비판에 직면했으며, 이로 인해 지지율은 더욱더 곤두박질쳤다.
게다가 거의 반세기 만에 가장 빠르게 식료품 가격이 치솟으며 일본 가계 사정이 어려워진 것도 지지율 하락에 한몫했다.
이렇듯 경제적 불만과 정치 스캔들이 겹치면서, 비록 야당이 약하고 분열된 상태임에도 여당에 대한 불신이 커졌다.
한편 기시다 총리의 불출마 발표 이후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의 아즈미 준 의원은 NHK와의 인터뷰에서 “이제 전반적으로 정치 상황이 유동적으로 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기시다 총리는 누구인가?
기시다 후미오는 정치인 집안 출신으로, 부친과 조부가 모두 중의원(일본의 하원의원) 직을 지냈다.
1993년 중의원 선거에서 처음 당선된 기시다 총리는 2012~2017년까지 외무대신으로 활동하며 일본 최장수 외무대신 기록을 세웠다.
그러던 2021년 10월, 취임 1년 만에 사임한 스가 요시히데 총리의 후임으로 총리로 선출됐고, 같은 해 직후 열린 총선에서 자민당을 승리로 이끌었다.
지난 3년간 기시다 내각은 치솟는 생활비 위기 속 임금과 가계 소득 증진을 위한 정책을 추진했다.
기시다 총리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일본의 경제 회복을 이끌었으며, 2022년 7월 아베 전 총리의 암살이라는 일본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정치적 순간에도 총리로서 나라를 이끌었다. 아베 전 총리의 장례식은 국장으로 진행했는데, 이에 대해선 논란이 있었다.
한편 기시다 총리는 일본 국내에선 낮은 지지율로 어려움을 겪었으나, 외교 행보와 관련해 종종 언론의 관심을 받았다.
공세적인 태도의 중국 및 핵으로 무장한 북한이라는 위협에 직면하며 문제투성이인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일본은 오랫동안 미국의 핵심 동맹국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리고 기시다 총리는 일본의 국방 예산을 확대하고, 전후 평화주의적 이상에서 신중히 한 걸음 더 내딛는 데 성공했다.
기시다 총리 집권 이후 미국과의 국방 협력을 더욱 강화했으며, 윤석열 대통령의 역사적인 일본 방문을 끌어내며 한국과의 관계도 개선했다.
또한 한국, 미국, 일본 3국이 지난해 8월 미국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담을 통해 공동 성명을 발표하며 3국 간 협력 강화를 논하는 전례 없는 일도 있었다.
추가 보도: 치카 나카야마, BBC News, 도쿄
- 부패 스캔들로 위기에 놓인 기시다 총리 내각
- 차기 일본은행 총재가 일본 경제를 개선할 수 있을까?
- 한일 관계 회복 통해 기대하는 경제적 효과는?
- 치솟는 물가가 일본 국민들에게 큰 충격이 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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