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글라데시 민주화의 아이콘 셰이크 하시나는 어떻게 독재자가 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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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글라데시 민주화의 아이콘 셰이크 하시나는 어떻게 독재자가 됐나

BBC News 코리아 2024-08-06 17:00:33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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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이크 하시나 전 총리
Getty Images
셰이크 하시나 총리는 방글라데시의 경제 발전에 기여했다고 인정받기도 하나, 권위주의적인 독재자로 변했다며 지적하는 이들도 있다

셰이크 하시나 와제드(76) 방글라데시 총리가 결국 6일(현지시간) 사임 의사를 밝히며 국외로 피신했다. 현재 방글라데시에서는 학생 주도로 일어난 시위가 몇 주간 이어지며 전국에서 사상자가 발생하는 등 불안한 정국이 이어지고 있다.

하시나 총리는 수천 명 규모의 시위대가 수도 다카의 총리 관저를 습격하자 헬리콥터를 타고 인도로 도피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지난 20여 년간 남아시아의 방글라데시를 통치해 온 최장수 총리의 시대는 예상치 못하게 끝을 맞이하게 됐다.

방글라데시가 보여준 경제 발전을 이끌었다고도 평가받는 하시나 총리는 과거 민주화의 아이콘으로 부상하며 정치계에 발을 들였다.

그러나 최근 몇 년 동안 권위주의적인 독재자로 전락했으며, 반대파들을 탄압한다는 비난을 받아왔다.

하시나 총리는 올해 1월 총선에서도 승리하며 4연임에 성공했는데, 조작됐다는 비난이 일었던 선거였다.

어떻게 권력을 쥐게 됐나?

하시나는 1947년 방글라데시(동벵골)의 무슬림 부모 밑에서 태어났는데, 정치인의 피가 흐르는 집안이었다.

그의 아버지가 바로 1971년 파키스탄으로부터 방글라데시의 독립을 이끌었던 초대 대통령이자, ‘방글라데시의 국부’라고도 불리는 민족주의 성향의 지도자 셰이크 무지부르 라흐만이다.

독립 당시 이미 하시나는 다카대학교에서 학생 운동 지도자로 명성을 쌓고 있었다.

그러던 1975년, 군사 쿠데타가 일어나며 아버지 라흐만을 비롯한 가족 대부분이 암살당하게 된다. 당시 해외에 체류 중이었던 하시나와 여동생만이 목숨을 건졌다.

인도에서 망명 생활을 하던 하시나는 1981년 방글라데시로 돌아와 아버지가 속했던 정당인 ‘아와미 연맹’의 지도자가 됐다.

후세인 무하메드 에르샤드 장군의 군부 통치 기간 하시나는 다른 정당들과 손을 잡고 거리로 나와 민주화 시위를 벌였다. 이러한 반정부 투쟁이 인기를 끌면서 하시니는 이내 국가적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1996년, 처음으로 총리직에 당선된 하시니는 인도와 강물 공유 협정을 체결하고 남동부 지역의 부족 단위 반란군과 평화 협정을 체결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하시니 총리 내각은 사업 거래 시 엄청난 수의 부정부패를 저질렀다는 의혹에 휩싸였을 뿐만 아니라, 인도에 지나치게 종속적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후 2001년 총선에선 한때는 동맹이었으나 정적이 된 ‘방글라데시국민당(BNP)’의 베굼 칼레다 지아에게 밀려 총리직을 내줬다.

유명 정치인 집안의 후계자로, 지난 30여 년간 방글라데시 정치계를 지배해온 이 두 여성은 ‘다투는 베굼들’로도 알려져 있다. ‘베굼’이란 높은 지위에 있는 무슬림 여성을 뜻하는 단어다.

관측통들은 이들의 경쟁으로 인해 버스 폭탄 테러 사건, 실종, 사법 절차에 의하지 않은 살인 등이 만연하다고 말한다.

결국 2009년, 과도 정부 하에 실시된 투표에서 하시나는 다시 한번 정권을 잡게 됐고, 오늘날까지 통치했다.

그는 진정한 정치적 생존자다. 2004년 청력 손상으로 이어진 암살 시도를 포함한 여러 차례의 암살 시도뿐만 아니라, 자신을 국외로 망명 보내려는 시도, 부정부패 혐의로 기소된 수많은 법적 다툼에서도 살아남았다.

하시나 총리의 과거 사진
Getty Images
1980년대~1990년대 초 민주화 운동에 힘입어 하시나 전 총리는 방글라데시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하시나 전 총리의 업적은?

하시나의 집권 하에 방글라데시는 대조적인 모습을 모두 보였다. 무슬림이 대다수인 이곳은 한때 세계 최빈국 중 하나였지만, 2009년 하시니의 집권 이후 안정적인 경제적 성공을 거뒀다.

이젠 역내 최대 성장률을 자랑하는 국가 중 하나로 발돋움했으며, 심지어 이웃에 자리한 거대한 국가인 인도의 경제성장률도 앞질렀다.

지난 10년간 방글라데시의 1인당 GDP는 3배 늘어났으며, 세계은행은 지난 20년간 무려 2500만 명 이상이 빈곤층에서 벗어난 것으로 추정한다.

이러한 성장은 대부분 의류 산업에 바탕을 두고 있다. 방글라데시에서 의류는 전체 수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품목으로, 최근 수십 년 동안 빠르게 성장하며 유럽, 북미, 아시아 의류 시장에 물건을 공급했다.

하시나 정부는 방글라데시의 펀드를 통해 대출, 개발 지원 정책을 펼치며 갠지스강의 주요 지류를 가로지르는 29억달러(약 4조원) 규모의 파드마대교 건설 등 여러 대규모 인프라 프로젝트도 실시했다.

하시나 전 총리에 대한 논란은?

최근 발생한 시위는 하시나 총리의 취임 이래 그리고 논란이 많았던 지난 총선에서 무려 4연임에 성공한 이래 직면한 가장 심각한 도전이었다.

앞서 총리 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상황에서도 하시나는 선동자들은 “테러리스트”라고 부르며 강경한 태도로 맞섰다. 그는 “테러리스트들을 단호하게 진압해야 한다”며 지지를 호소했다.

최근 수도 다카를 비롯한 여러 지역에서 이어지는 시위는 공무원 할당제 폐지 요구에서 시작했으나, 점차 더 광범위한 반정부 운동으로 심화했다.

코로나19 팬데믹의 여파로 방글라데시 국민들은 갈수록 높아지는 생활비에 허덕이고 있다. 물가상승률이 계속 치솟고, 외환보유고는 급격히 감소했으며, 2016년 이후 대외 채무는 2배 이상 늘어났다.

이에 비평가들은 하시나 내각의 실정을 지적하며, 방글라데시가 과거 이룩한 경제적 성공의 결실은 뿌리 깊은 부정부패로 인해 총리 및 여당과 가까운 이들에게만 분배됐다고 말한다.

또한 방글라데시의 경제적 발전은 민주주의와 인권을 희생하는 대가로 이뤄졌으며, 하시나 총리의 집권 하에 정치적 반대파, 언론 등을 탄압하며 억압적인 권위주의가 이어졌다는 비판이다.

정부와 하시나 전 총리는 이러한 비난을 전면 부인한다.

그러나 최근 몇 달간 반정부 시위로 야당인 BNP의 많은 고위 지도자들이 지지자 수천 명과 함께 체포됐는데, 이는 한때 다당제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던 지도자가 보여준 충격적인 반전이었다.

인권 단체들은 2009년 이후 방글라데시 보안군에 의해 자행된 것으로 의심되는 강제 실종 및 사법 절차에 의하지 않은 살인 사건 수백 건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한다.

하시나 정부는 이러한 범죄의 배후라는 주장에 대해 전면으로 부정하고 있으나, 이에 대해 조사하려는 외국 언론인의 방문도 엄격하게 제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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