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로환동이 너무 많다"wow

실시간 키워드

2022.08.01 00:00 기준

"반로환동이 너무 많다"wow

유머톡톡 2024-07-17 19:42:51 신고

bte7c144d880c4d6ebf7c7660dbb7f4f67.jpg

천순天順 8년, 개봉부 무림맹에서 열린 용봉지회는 연꽃이 가득 핀 연못 옆 누각에 자리잡았다. 뜻 모를 난감한 미소를 머금은 무림맹주가 짧은 축사를 하고 원로들을 몰아 사라진 자리에는 스무 명 남짓한 후기지수들이 각자 화려한 주안상을 한 상 씩 받고 앉아 있었다.

 
하늘은 이미 어둑해졌고, 화려한 개봉부의 불야성이, 무림맹 본단이 위치한 언덕의 비탈길 아래로 길게 내 뻗었다. 그리고 수많은 등불로 치장된 연못과 누각은 그 스스로도 밝게 빛났다. 바야흐로 태평성대의 밤이었다.
 
"다 아는 사람들이구먼."
 
그리 짧지 않은 침묵 끝에 옥관에 푸른색 장포를 두른 준수한 용모의 청년 무사가 술잔을 들며 침묵을 깼다. 그는 알려지기를 무당파 속가제자로 이번 비무 대회에서 우승한 방년 스물 넷의 곽청선이라 했다. 그러나 현기 가득한 두 눈동자는 고작해야 스물넷 나이라면 응당 품고 있을 방약한 혈기를 눈꼽만큼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오히려 세상풍파에 지친 노인네 같다고 해야 할까.
 
"그러게나 말이우. 어째 20년 만에 나와봤는데 얼굴들이 달라진 것이 없누."
 
옆 자리에 앉아있던 차분한 인상의 젊은 여무사가 곽청선의 말을 외모에 어울리지 않는 늙은 말투로 받으며 흑단같은 머리칼을 쓸어 내렸다. 그녀는 곽청선과 결승전에서 매우 훌륭한 비무를 펼친 끝에 한 끝 차이로 패배를 시인한 방년 스물 한 살의 검각 속가제자 양령이었다. 그녀의 출중한 무위에 더해 단아한 미모는 이번 비무대회의 크나큰 화제거리 중 하나였다.
 
"검후劍后. 어째 실망한 듯 하외다?"
 
"그럼 실망 안 하게 생겼소, 검선劍仙? 항상 보던 쭈그렁방탱이들 말고 풋풋한 후기지수가 있지는 않나 기대했는데 어찌 실망하지 않을까?"
 
곽청선의 말에 양령이 한심하다는 듯 답했다. 둘이 서로를 지칭하는 별호인 검후와 검선은 이들의 표면적인 배분으로는 입에 함부로 담을 수도 없을 지고한 무림명숙들의 별호였으나, 이들은 상대를 그렇게 불렀다.
 
검후. 여천령. 방년 구십팔세. 전전대 검각주.
 
검선. 운선 진인. 방년 구십구세. 이미 은퇴해 은거에 들어간 무당파의 전설적인 전전대 고수.
 
농이라면 과하다는 수준을 넘어서서 간이 배 밖으로 튀어나왔다고 밖에 볼 수 없겠으나, 이들을 포함한 장내의 모든 인물들은 그 호칭을 매우 당연한 것인양 아무렇지도 않게 넘기고 있었다.
 
"......결국 이렇게 될 줄 알았어. 너도 나도 반로환동 해대면 자기 문파 이름세 떨치려 튀어나올게 뻔했지. 에잉."
 
한쪽에 물러나서 술을 마시고 있던 종남검귀 청무가 한심하다는 듯이 투덜거렸다. 그는 이번 비무대회에는 종남파 속가제자 류고성이라는 이름으로 참가했었다.
 
과연 그의 말대로였다. 사십년 전 종결된 정마대전의 끝에 구파일방과 오대세가, 그외 명문대파에는 상례를 벗어난 고수들이 그야말로 마구잡이로 튀어나왔다.
 
그들 중 반로환동의 경지에 닿은 이는 또 얼마나 될 것인가? 그리고 그들이 신분을 속이고 출도해 활약하며 자파와 자기 가문의 명예를 드높인다면? 이런 의심이 고수들의 부동심을 뒤흔들었고, 거기에 더해 "그 동안 죽어라 싸웠는데 반로환동으로 젊어졌네? 이제 슬슬 인생을 즐겨도 되지 않을까...?" 라는 사욕이 한 숟갈 더해진 결과물이 바로 작금의 용봉지회였다.
 
"그래도 이건 좀 심하지 않나. 어떻게 새로운 얼굴이 하나도 없을 수가 있냐는 말일세. 다들 싹수 보이는 녀석이 있으면 살살 물러나기로 암묵적으로 동의했던 거 아닌가?"
 
곽청선, 아니 검선의 말에 다들 한숨을 푹 쉬었다. 정마대전이 끝난지 사십 년. 투쟁심을 잃은 젊은 무인들 중에 싹수가 보이는 자가 드물어 진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잠시 여러 감정이 섞인 침묵이 내리 앉았다.
 
"에잉. 이게 다 당신들 같은 노괴물들 탓 아닌가! 용봉지연이고 용봉지회고 간에 늙은 할아방탱이, 할망구들이 비무대회를 다 씹어 처먹고 용봉이랍시고 거들먹거리고 앉아있는 게 정상인가, 그럼?"
 
비무대회에서 삼위를 차지한 화산파 삼대제자 비성조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장내에 아무렇게나 삿대질을 해댔다.
 
그런 비성조를 보며 곽청선이 혀를 끌끌 찼다.
 
"저게 감 잃었네. 현천아. 너랑 나랑 나이가 20살이 차이가 나, 이놈자식아. 배분만 따져도 내가 네 사부 뻘인거 잊었냐? 으데 강호초출 때 눈도 못 마주쳤던 놈의 새끼가. 하여간에 화산파 놈들은 이게 문제야, 위 아래가 없어. 어휴 진짜, 무량수불......"
 
그의 말에 당대에 화산파 삼대제자 비성조라는 신분으로 강호에 재출도한 매화검존 현천이 뜨끔한 표정으로 쭈굴거린다.
 
"거 참, 같이 늙어가는 처지에 나이로 밀지 좀 맙시다, 진인. 안 그렇소, 천마天魔?"
 
비성조의 옆에 앉아 있던 날카롭고도 차분한 인상의 무사가 한숨을 푹 쉬더니 방금과는 달리 매우 털털한 태도로 푹 퍼져 주저앉아버렸다. 그리고는 술병 채로 목을 낚아 채 입에 꼴꼴꼴 쏟아 붇는다.
 
"어휴. 본교도 항상 보던 놈들이 그놈이 그놈이라 정파는 좀 다른가 하고 찾아 와봤는데, 여기도 마찬가지네 그려."
 
아...... 마교도 마찬가지였구나.
 
장내의 인사들이 안도감과 한심함이 뒤섞인 표정으로 다시 한숨을 쉬었다.
 
"자자, 왜들 그리 죽상이오? 음식 다 식겠소. 그럼 나 먼저 듭니다. 홀리씨에! 내가 이 맛에 성불 못하지!"
 
저기 끝에서 괴상한 감탄사를 내뱉으며 양하대곡(洋河大曲)을 한 잔 입에 털어 넣는 긴 머리의 미청년은 소림사 전전대 방주 혜능이었다.
 
"땡중도 이런 땡중이 없구먼. 저게 개방 일결개야, 소림활불이야?"
 
혀를 끌끌 차는 곽청선의 말에 옆에서 차분히, 그러나 쉴 새 없이 음식과 술을 입으로 밀어 넣고 있던 귀여운 인상의 여인이 버럭 화를 냈다.
 
"아니, 진인! 거기서 우리 개방은 왜 끌고 넘어져요?"
 
"......걸선녀, 배는 대충 채운 모양이구려. 아까부터 무슨 말을 해도 듣는 시늉도 않고 먹을 것을 밀어넣더니만."
 
"헤헷. 거지는 목에 칼이 들어와도 일단 차려진 밥상은 먹고 봐야하는게 문규라서."
 
귀엽게 혀를 내밀며 웃는 걸선녀. 전전대 개방 방주. 방년 여든 셋.
 
"에휴. 그래. 일단 듭시다, 그려. 맹주와 맹도들이 우리 대접한답시고 천하구주의 명숙수들을 반강제로 납치했다니까 그 성의를 봐서라도."
 
곽청선의 말에 장내에 자리잡은 스무 명 가량의 젊지만 늙은 무사들이 한숨과 함께 젓가락과 술잔에 손을 가져가는 순간이었다.
 
"저, 송구하오나 소인이 자리를 잘못 찾은 듯 합니다......"
 
"잉?"
 
연회장 한 쪽 구석에서 들려오는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에 장내의 참가자들이 일제히 그쪽을 돌아보았다. 분명 비무대회에서 20위에 겨우 들었던 청년, 도철민이었다.
 
건장한 체구에 긴 머리를 묶어 내렸고 태양혈이 불룩한 것이 적잖은 수련을 거친듯 했으나 표정은 패기를 잃었고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무림의 고인물들만이 모인 이 자리에서 이런 표정을 보기도 쉽지 않으리라.
 
장내의 시선을 한 몸에 받게 된 청년이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포권을 해보였다.
 
"무림말학이 어리석어 여러 고인들의 즐거움을 방해한 듯 합니다. 저는 이만 물러가 보겠습니다."
 
청년의 말에 곽청선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대가 만투검노萬鬪劍老가 아니란 말인가?"
 
"그, 그렇습니다......"
 
"허나 자네의 정순한 내력과 호흡, 보법을 보면 자네는 분명 검노가 맞는 듯 한데?"
 
비성조가 눈빛을 날카롭게 빛내며 질문을 이었다. 청년은 침을 꿀꺽 삼키며 대답했다.
 
"그, 소인의 왕고王考(자신의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높여 부르는 말)께옵서 만투검노라는 별호를 쓰셨사옵니다. 왕고께옵서 저를 아끼시어 이것저것 가르치셨고, 소인이 부족하나마 그 분의 진전을 이었다 자부하고 있습니다마는......"
 
"......조부장祖父丈께서 만투검노시었다...? 허면 그는 언제 타계하신겐가?"
 
"그, 한 다섯 해 전입니다. 친우분들께 소식 알릴 것 없이 저 혼자서만 장례를 모시라는 신신당부가 있으셔서......"
 
청년의 말에 장내의 분위기가 일순간 확 뒤바뀌었다.
 
그렇다면.
 
이 어린 녀석이 스물 다섯살의 나이로 강호초출해서,
 
고인물들이 즐비한 비무대회를 뚫고,
 
용봉지연에 참석했다 이 말인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곽청선이 다시 입을 열려는데, 옆자리에 앉아있던 비성조가 먼저 선수를 치고 나갔다.
 
"......켈켈켈. 그렇다 이거지. 스물 다섯...... 좋은 나이로고. 자네 결의형제에 관심없는가?"
 
"오호호호, 소협. 이 자리에서 다들 한 바탕 농담을 한 것이어요. 소녀가 검후라니, 어찌 그것이 사실이겠어요."
 
단순호치를 드러내며 고혹적으로 웃어 보이면서 슬금슬금 엉덩이를 움직여 앉은 채로 옆으로 다가오는 검후와.
 
"소협. 이거 닭다리 맛있는데 먹어 볼래요?"
 
아예 쟁반째 들고 사뿐사뿐 걸어오는 걸선녀와.
 
"비켜! 다 늙어 빠져 가지고는 으데 순진한 어린 놈 한 번 꼬드겨 볼려고! 거기 자네, 우리 증손녀랑 맞선 한 번 아니 볼랑가?"
 
청년보다 서너 살은 어려 보이는 주제에 눈이 뒤집어져서 증손녀딸 팔이에 나서는 남궁세가주에.
 
"쓰읍, 하. 이 신선한 냄새....... 크르르르, 못 참겠다. 대련, 대련을 하자!"
 
무공광 천마까지.
 
"저 그냥 가면 안 될까요......?"
 
뉴비를 보는 고인물들의 흉악한 눈빛에 청년이 건장한 체구에 어울리지 않게 울상이 되어버렸다.
 
- fin -
 
 

Copyright ⓒ 유머톡톡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

다음 내용이 궁금하다면?
광고 보고 계속 읽기
원치 않을 경우 뒤로가기를 눌러주세요

실시간 키워드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0000.00.00 00:00 기준

이 시각 주요뉴스

알림 문구가 한줄로 들어가는 영역입니다

신고하기

작성 아이디가 들어갑니다

내용 내용이 최대 두 줄로 노출됩니다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이 이야기를
공유하세요

이 콘텐츠를 공유하세요.

콘텐츠 공유하고 수익 받는 방법이 궁금하다면👋>
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
유튜브로 이동하여 공유해 주세요.
유튜브 활용 방법 알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