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 송진현]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간의 이혼 소송 항소심 결과가 영화 ‘서울의 봄’을 소환하고 있다.
‘서울의 봄’은 지난해 11월 개봉한 뒤 1300여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히트작이다. 이 영화는 박정희 대통령 서거 후 1979년 12월12일 일어난 군사 반란을 조명해 국민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1212 군사반란’의 주역은 육군 내 비밀 사조직이었던 하나회 멤버인 전두환과 노태우다. 당시 보안사령관이자 합수부장이었던 전두환이 정승화 참모총장을 불법 체포하고 9사단장이었던 노태우는 9사단 병력을 마음대로 이동시켜 중앙청을 점령, 전두환의 군사반란에 가세했다.
이후 전두환은 12대 대통령, 노태우는 13대 대통령으로서 대한민국 최고 통수권자의 지위를 누렸다.
하지만 김영삼 대통령 당시 검찰의 수사 및 기소로 전두환과 노태우는 법정에 섰다. 전두환은 1212 반란 수괴, 노태우는 반란모의 참여 등의 혐의를 받았다. 이들은 또한 대통령 재직 당시 수천억원의 불법 뇌물을 수수한 혐의로도 기소되었다. 1997년 대법원에서 전두환은 무기징역에 추징금 2205억, 노태우는 징역 17년에 추징금 2628억원의 형이 확정되었다.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기존 관념을 깨고 대법원이 우리 나라 역사의 정통성을 바로잡은 세기의 판결이었다.
그런데 군사반란을 일으킨 전두환과 노태우의 자손들은 부귀영화를 누리며 산 반면, 쿠데다 군에 맞섰던 의인 가족들은 삶 자체가 처참히 무너지기 일쑤여서 대조를 이뤘다.
‘1212 군사반란’ 당시 정병주 특전사령관의 비서실장이었던 김오랑 소령의 예를 들어보자. 김오랑 소령의 당시 상황은 영화 서울의 봄에서도 잘 표현되었다.
김오랑 소령은 정병주 특전사령관을 제포하러온 3공수 반란군의 총탄을 맞고 사망했다. 김 소령의 노모는 아들의 죽음에 큰 충격을 받고 2년 뒤 사망했으며 큰 형 역시 울분을 참자못한 채 술로 세월을 보내다가 1983년 명을 달리했다. 김 소령의 부인은 전두환 노태우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준비하다가 1991년 의문의 실족사했다. 군사반란으로 가족이 풍비박산 난 것이다.
김오랑 소령 유족 측은 지난 5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 국가를 상대로 5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김오랑 소령 케이스 뿐만 아니다. 역시 군사반란에 맞섰던 장태완 수경사령관의 아들은 서울대 재학 중 자살하는 등 군사반란의 피해자들은 고통속에서 삶을 살아가야 했다.
이런 관점에서 '1212 반란군'의 핵심이었던 노태우의 장녀 노소영 관잠이 최 회장과의 이혼 고등법원 항소심에서 부친의 비자금 30억원이 SK그룹에 지원되었다는 것을 명목으로 현금 1조3800억원의 천문학적인 재산분할금을 받게된 것이 역사적 맥락에서 봤을 때 과연 합당한 것인이 묻지 않을 수 없다. 노 관장은 1심 법원 판결에선 재산분할금으로 665억원을 받기로 돼있었다.
반란군에 맞섰던 사람들은 어려움에 처하고 반란군 2세들은 부친의 후광으로 떵떵거리며 살아도 되는 것일까? 대한민국의 역사가 이렇게 전개되어도 장차 후손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것인지 우리 국민들은 곰곰히 따져봐야 할 것이다.
최 회장과 노 관장의 이혼 상고심을 담당할 대법원은 1997년 군사반란 주인공들에게 자신들이 내렸던 판결을 되짚어봐야 할 것이다. <한스경제 발행인> 한스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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