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이라는 장르 – 비켜가는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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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이라는 장르 – 비켜가는 시선

문화매거진 2024-06-10 13:55:54 신고

[문화매거진=MIA 작가] “인생을 한 권의 그림책으로 만든다면 어떨까?”, 특별한 질문은 아니다. ‘인생은 한 권의 책'이라는 비유가 더 이상 새롭지 않듯이. 

톰 오고마(Tom Haugomat)의 그림책 ‘Through a life’도 이와 비슷한 맥락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했으리라 예상한다. 질문은 좀 더 구체화했을 것이다. 예상해 본다. 아마도 ‘일 년에 결정적인 한 장면을 모아 인생을 담는다면, 어떻게 포착할까?´와 같은 내용이 아니었을지.

▲ Through a life 표지, 톰 오고마
▲ Through a life 표지, 톰 오고마


이 그림책은 누군가의 인생 축약본이다. 한 사람이 태어나 어린 시절 품었던 꿈을 장성하여 이루고, 사랑을 하고 가정을 꾸리고 살다가 마지막에는 혼자가 되어 생을 마친다는 그런 이야기. 내용은 보편적이라는 인상을 준다. 그러나 이 그림책은 일 년에 한 장면씩 담는다는 독특한 기획과 장면을 포착하는 아름다운 관점 및 표현을 통해 자신만의 고유한 문법을 만들어냈다.

좌우 페이지 역할은 구분되어 있다. 왼쪽 페이지에는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는 주인공의 모습을, 오른쪽 페이지에는 주인공이 시선을 둔 대상을 묘사하는 식이다. 예를 들면 왼쪽 페이지에 주인공이 돋보기를 들고 땅을 쳐다보는 그림이면, 오른쪽에는 돋보기에 확대된 땅의 곤충이 그려진 식이다. 이러한 구성은 펼친 면 전체에 그림이 나오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처음부터 끝까지 동일하게 이어진다. 

주인공이 시선을 두는 대상과 상황은 다양하다. 문틈 사이로 빨래하는 엄마를 보고, 돋보기와 현미경으로 하늘이나 땅을 확대하여 본다. 옆에 있는 사람과 함께 같은 곳을 바라보거나, 혼자 가족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볼 때도 있다. 페이지 하단에는 연도와 장소가 기록되어 있을 뿐, 대사나 설명을 위한 다른 텍스트는 없다. 그림이 보여주는 장면이 내용의 전부다. 

이때 독자는 두 가지 측면의 관찰자가 된다. 하나는, 주인공이 보는 장면을 그림책이 묘사한 대로 똑같이 본다는 점에서, 나머지 하나는 어딘가 시선을 둔 주인공의 모습 자체를 본다는 점에서. 그리고 나는 그런 주인공이 시선을 둔 방향이 어딘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드는 장면에 눈길이 멈추곤 했다. 그건 어떤 기준에서 ‘비켜가는 시선’이었다.

 

▲ Through a life 중 한 장면, 톰 오고마
▲ Through a life 중 한 장면, 톰 오고마


종종 주인공은 ‘봐야 할 곳이 아닌’ 다른 곳을 본다. 가령 엄마와 아빠가 함께 있는 병실에서 혼자 떨어져 앉아 책에 있는 우주 관련 자료를 보고, 사람들이 모인 파티에서는 외딴 곳에 시선을 둔다. 공식적인 방송 인터뷰 자리에서 무대 뒤편의 사랑하는 사람을 흘깃하거나, 장례식에서 자기 앞에 놓인 엄마의 관이 아닌 창밖의 새를 보기도 한다. 주인공 입장에선 찰나였을 수 있다. 중요한 건 작가는 바로 ‘그렇게’ 보여주기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우주는 어릴 적 주인공을 불현듯 찾아 온 꿈이자 그림책을 관통하는 소재다. 파란 하늘 너머 있어서 도구를 통해서만 볼 수 있고 쉽게 갈 수도, 만질 수도 없는 곳. 항상 멀리 있는 대상을 동경하는 주인공의 기질과 비켜가는 시선은 서로 대척점에 있는(혹은 그렇게 여겨지는) 꿈과 현실의 은유처럼 보인다. 꿈은 언제나 현실을 외면해야만 가능하다는 점에서, 꿈꾸는 사람은 현실의 관찰자가 된다는 점에서. 차갑고 납작한 현실과 달리 꿈은 빛이 나며 풍성하고 아름답다. 아름다움의 이유는 오직 비켜섰다는 것, 그것뿐일지도 모른다. 바라보아야 할 것을 보지 않았기 때문에 받는 벌의 존재는 모르는 척해야 가능한 시선일지도, 모르겠다. 

바라보기 때문에 다행인 것처럼 느껴지는 장면들도 있다. 실의에 빠진 아내의 모습이나 혼자 밖에 있는 아버지의 뒷모습처럼. 이런 장면들은 비켜선 시선과 의미가 대비되며 이야기를 입체적으로 축조한다. 이 그림책은 시선이 가진 당연한 속성-우리는 한 번에 하나의 장면밖에 보지 못한다-을 그대로 활용해 인생의 면면을 보여준다.

‘본다는 것’, 시선은 극히 주관적이거나 모호한 주제일 수 있다. 어딘가 눈길을 두는 행위가 의식에 앞서 이뤄지고 너무나 자연스러울 때, 주체와 관찰자는 그 의미를 뚜렷하게 알 수 없어진다. 나무가 바람에 나부끼는 풍경을 뭐라고 더 설명할 것인가.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도 미묘한 순간들로 이야기를 전달하는 건 글이 하지 못할, 그림만이 가능할 영역이란 생각도 한다. 상황을 그림으로 보여줄 때, 독자는 그 의미를 적극적으로 엮어가야 한다. 이 과정에서 독자는 필히 각자의 경험을 이야기에 녹여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책을 다 보고 나서 삶의 끝에 남는 건 처연하고 쓸쓸한 풍경이며, 외로움은 인생에 본질적으로 녹아 있다는 감상을 지우기 힘들었다. 표정 묘사가 따로 없이 실루엣만을 단순하게 표현했기 때문인지 그런 감정이 더 부각되는 기분이었다. 아무리 아름다워도, 찬란하게 빛나도, 소중하고 잊을 수 없는 존재가 가득하더라도. 삶의 속도는 너무 빠르고, 순식간에 흘러가 버린다. 그럼에도 우리는 지금을 반드시 살아내야 한다는 사실엔 변함이 없겠지만.

이 칼럼의 제목을 책 제목과 연관 지어 ‘통과하는 시선’이라 해야 할지, 아니면 ‘비켜가는 시선’이라 하는 게 좋을지 고민했었다. 칼럼의 목적은 그림책 구조와 시각적 표현에 초점을 맞춘 비평이기에, 처음엔 전자가 더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좌우 페이지에 부여된 역할은 틈 사이를 통과하는 시선 자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그림책은 최초의 기획에서 한발 더 나아간다는 발견의 기록으로 후자의 제목을 택했다. 형식적 기획이 충분히 독창적이어도, 그림과 표현의 디테일에 작가의 의도를 담는 행위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면 의미의 레이어는 한층 두터워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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