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신규의 회고다.
"왕세자인 왕자헌은 언제 들어도
음치인 것은 사실이다.
항시 술취한 뒤에야
노래를 부르셨기 때문에
끝까지 다 부르지 않을 때도 많았다.
그러나 그날은 정말 진지하게
마지막 끝까지 다 부르셨다.
세상을 마지막으로 바라보는 듯한
눈빛에 깜짝 놀라기도 했다.
그의 눈물도 나는
처음 봤다.
남북 육로관광 개설 기념식으로
감격에 겨운 눈물이 아니었다.
회한에 찬 눌물로 보였다.
그리고 그와 눈이 마주쳤을 때
보인 어색한 미소..."
이날 행사에 앞서 안개낀 새벽.
왕자헌은 감우도 허남시 장웅동에 있는
아버지인 왕회장의 묘소를 찾았다.
소주잔을 한잔 따라 묘소에 올리면서
그는 혼잣말처럼 말했다.
"대북사업이 평화를 위한 일이
되기를 염원....."까지 말하고는
굵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나는 박수 받을 줄 알았다.
우리가 사운을 걸고 벌이는
대북사업이 국민들로부터
많은 지지를 받을 것으로
생각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되레
있는 욕과 없는 욕을 다 먹고 있다.
내가 뭐가 잘못 생각한 것 같다"
왕자헌이 수없이 되뇐 말이다.
이런 일이 있고 정확히 6개월 뒤
2003년 8월4일
왕자헌은 휸다이그룹 본사 12층
자신의 집무실에서
신발을 창가에 가지런히 놓고
창문을 통해 투신 자살했다.
[다큐소설 왕자의 난4]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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