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우당(友堂) 이회영 선생의 6형제와 그 자손들
[1] 엄청난 가문 내력
ㆍ 10대조 : 이항복(임진왜란 당시 병조판서, 후일 영의정)
ㆍ 8대조 : 이시술(이조참판)
ㆍ 7대조 : 이세필(형조참판)
ㆍ 6대조 : 이태좌(좌의정)
ㆍ 5대조 : 이종성(영의정)
ㆍ 증조부 : 이석규(이조판서)
ㆍ 조부 : 이계조(이조판서)
ㆍ 백부 : 이유원(영의정)
ㆍ 부친 : 이유승(예조, 공조, 형조, 이조판서를 두루 거쳤고, 을사조약 당시 체결 반대의 소를 올림.)
[2] 가문의 재력
ㆍ 이회영 선생이 태어난 명동 일대 6천 평이 모두 집안 소유의 땅이었음.
ㆍ 특히 큰아버지이자 둘째 이석영을 양자로 삼은 이유원은 '남양주 자택에서
ㆍ 훗날 만주로 건너가기 전에 독립자금으로 쓰기 위해 재산을 현금화했는데
ㆍ 이 분들이 처분한 재산은 경학사, 신흥무관학교 창설 및 운영 등으로 쓰였음.
[3] 신흥무관학교
1919년에 세워진 신흥무관학교는 1911년에 설립한 신흥강습소가 확대된 것으로
졸업생들은 봉오동 전투, 청산리 전투에도 참여했는데 패전한 일본이 봉천군벌에
[4] 6형제의 고난
ㆍ 이회영 선생의 아들인 이규창의 회고록에 따르면 '짜도미'라는 품질 낮은 쌀로
ㆍ 시장바닥에 떨어진 배추 쪼가리를 주워서 부친에게 죽을 쑤어드린 적도 있다고 함.
ㆍ 심산 김창숙 선생의 회고로는 이회영을 만났을 때 이틀 동안 굶고,
ㆍ 그 와중에도 이회영 선생은 묵란을 그려 팔면서 독립운동 자금을 마련함.
[5] 6형제 중 5명이 순국
ㆍ 첫째 이건영 : 병사
ㆍ 둘째 이석영 : 아사
ㆍ 셋째 이철영 : 병사
ㆍ 넷째 이회영 : 중국 뤼순 감옥에서 순국
ㆍ 다섯째 이시영 : 광복 후, 초대 부통령
ㆍ 여섯째 이호영 : 만주 ~ 북경 등지에서 실종
[6] 후손들의 고난, 애국 활동
ㆍ이건영의 차남 이규면 : 신흥무관학교 설립 후, 독립운동 과정에서 병사
ㆍ이건영의 3남 이규훈 : 독립운동가, 한국전쟁 당시 국군 공군 대위로 복무하다가 실종됨.
ㆍ이회영의 장남 이규룡, 차남 이규학, 3남 이규창, 이시영의 장남 이규창 : 국가로부터 독립유공자로 인정, 등록됨.
ㆍ이회영의 딸 이규숙 : 독립운동단의 무기 공급책으로 활동, 일본 밀정을
ㆍ이시영의 3남, 4남 : 이시영이 임시 정부를 따라 떠날 때, 생이별해서 2, 3살의 나이로 만주에서 아사
ㆍ이호영의 두 아들인 이규황, 이규준 : 아버지와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함께 실종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국사편찬위원회 등
군사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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