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받이가 아니다”…‘악성민원’ 대책서 제외된 콜센터 노동자들의 울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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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받이가 아니다”…‘악성민원’ 대책서 제외된 콜센터 노동자들의 울분

투데이신문 2024-06-05 14:38:31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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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공공운수노조가 5일 오전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악성민원에 시달리는 콜센터 노동자 실태조사 및 정부대책 촉구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투데이신문<br>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공공운수노조가 5일 오전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악성민원에 시달리는 콜센터 노동자 실태조사 및 정부대책 촉구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박효령 기자】 #. 공공기관 콜센터 노동자 A씨는 해결할 수 없는 제도적인 문제를 건의하는 고객과 1시간 30분가량 통화를 이어갔다. 그 고객은 자신이 원하는 대답을 못 듣지 못하자, A씨에게 “뭐하러 거기(콜센터) 있냐”, “적성에 맞지 않는 것 같은데 다른 일 찾아봐라” 등의 비아냥과 조소를 쏟아냈다. 그 이후로 A씨는 자존감 하락과 스트레스로 한동안 전화 벨소리만 들어도 심장이 두근거리고 울렁거림을 겪었다.

#. 체납보험료에 대한 상담을 해결하던 콜센터 노동자 B씨에게 한 고객이 죽이겠다고 협박하는 데 이어 하대하고 욕설을 가했다. 욕을 하지 않아도 답변에 꼬리를 물고 책임지라며 B씨에게 “예”, “아니요”로만 대답하라며 심리적으로 압박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공공운수노조는 5일 오전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악성민원에 시달리는 콜센터 노동자 실태조사 및 정부대책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이 같은 사례를 공개했다.

이날 현장에서는 실제 일선 현장 노동자들이 등장해 생생한 현실을 증언했다. 이들은 ‘욕받이’가 아니라며 모든 콜센터 노동자들에게 악성민원에 대한 보호대책을 마련해 줄 것을 촉구했다.

경기지역지부 국민권익위원회 공무직분회 이선명 분회장은 “최근 행정안전망 오류, 정부24 개인정보 유출, 위택스 개편에 따른 오류 등 문제들이 연이어 터졌는데, 이 문제에 대한 안내는 모두 정부 민원 안내 콜센터의 몫이었다”며 “정부는 이를 은폐하기에 급급했고, 상담 노동자들은 정부의 욕받이로 전락하기에 이르렀다”고 지적했다.

이어 “민원인들은 ‘시키면 시키는 대로 연결해라’, ‘무식하게 세금만 축내고 있다’ 등의 말과 함께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저급한 욕설도 서슴없이 한다”며 “심지어 인격적인 모욕까지 이어지며, 일부 민원인은 상담사를 직장에서 해고시키겠다고 위협하거나 상담사의 이름을 확인하며 보복하겠다고도 협박한다”고 호소했다.

상담사를 보호하기 위한 관련 규정과 전화 차단 프로세스가 내부에 마련돼 있지만, 점점 더 교묘해지고 지능화되는 악성민원 앞에서는 해당 조치들마저 무용지물된다는 것이 이 분회장의 주장이다.

지난 5월 초 행정안전부 등 관계부처가 민원공무원을 보다 근본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방안을 담은 ‘악성민원 방지 및 민원공무원 보호 강화 대책(이하 종합대책)’을 발표했는데, 이 종합대책에 공무원·공무직을 넘어 모든 콜센터 및 상담 노동자에게 적용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국민건강보험 고객센터지부 김금영 비대위원장은 “악성민원에 대한 사회적 논란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일부 특정 계층만 보호하는 것이 과연 민원 대응 노동자 모두를 위한 종합적인 대책이 맞냐”며 “현재 대한민국 고객센터 상담 노동자들의 현실은 화장실 가는 시간, 물 먹는 시간, 통화 후 감정을 추스리는 시간까지 통제받는 노동 착취와 강도 높은 악성민원에 늘 노출돼 있어 상담사들은 대부분 우울증 고위험군에 속해 있다”고 꼬집었다.

이어 “대국민 서비스와 공공성 강화는 정부의 책임 있는 보호에서부터 비롯된다”며 “정부는 반쪽짜리 정책을 철회하고 허위뿐인 대책과 면피로 일관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이고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간기업 노동자의 목소리도 나왔다. 금융권에서 근무 중인 든든한콜센터지부 김현주 지부장은 “청년도약계좌 등 국가가 국민들을 위해서 지원하는 대책인데 이를 모두 은행이 대신 안내 및 상담하고 있다”며 “새로운 것이 생겨날 때마다 노동자들은 공부를 해야 하고 그 민원에 대해서 대책을 마련해 고객에게 최선을 다해 설명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런 상황에서 수조원대의 영업이익을 누리는 은행사가 이제는 콜센터 지점을 계속해서 없애고 있다”며 “이에 더해 이제 노동자들은 대체제로 지목된 AI하고도 경쟁하고 싸우고 있다”고 규탄했다. 

‘감정노동자보호법’이 실효성이 없다는 의견도 존재했다. 감정노동자보호법은 근로자의 건강장해에 대한 사업주의 예방조치를 골자로 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으로, 지난 2018년 10월 18일부터 발효됐다.

김 지부장은 “감정노동자 보호법이 유명무실해진 이유는 원청-용역 구조 때문”이라며 “노동자의 목소리가 담겨 있는 콜이지만 그 콜에 대한 권한은 원청사가 가지고 있다. 즉, 용역회사는 아무런 권한이 없는 셈이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5일 오전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열린 ‘악성민원에 시달리는 콜센터 노동자 실태조사 및 정부대책 촉구 기자회견’에서 참여자들이 손 피켓을 들고 있다. ⓒ투데이신문<br>
5일 오전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열린 ‘악성민원에 시달리는 콜센터 노동자 실태조사 및 정부대책 촉구 기자회견’에서 참여자들이 손 피켓을 들고 있다. ⓒ투데이신문

이들은 792명의 콜센터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그 결과, 노동자들은 장시간 응대(90.9%), 폭언(77.9%), 업무와 관련 없는 민원(54.5%), 반복 민원(60.1%), 보복성 행정 제보 및 신고(15%), 성희롱(12.8%) 등을 경험한 것으로 파악됐다. 

성희롱, 폭언 등 악성민원이 3회 이상 반복 시 상담사 스스로 판단으로 전화를 끊을 수 있도록 교육은 하고 있지만, 정작 노동자들은 현장 적용이 어렵다고 말한다. 더욱이 그외 장시간 응대, 반복 민원, 업무와 관련 없는 민원 등에 대해서는 먼저 전화를 끊을 수도 없어 헤드셋 너머의 언어폭력에 고스란히 노출돼 있는 실정이다.

계속되는 악성민원으로 인해 노동자들은 업무 몰입 및 효율성 저하(76.8%), 직무 스트레스 증가(94.7%), 자존감 하락 (78.7%), 이직이나 사직 고려(55.4%), 수면장애(43.1%), 심리상담 및 병원 치료(17.5%) 등에 시달리고 있었다.

악성민원 피해를 입은 뒤 휴게시간 부여와 조퇴 같은 보호 조치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었다. 응답자들이 악성민원에 대응한 방법으로는 개인적으로 참음(91.2%), 주변 동료와 상담 (57.6%), 상사에게 도움 요청(32.5%) 등으로 제도적인 휴식과 상담이 후속되지 않아 스스로 인내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공공운수노조 김선종 부위원장은 “콜센터 노동자들은 감정노동자보호법이 마련됐을 때 매일같이 반복되는 폭언과 악성민원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수년이 지난 지금까지 달라지지 않고 있다”며 “이에 더해 정부의 악성민원 대책 적용 대상에 콜센터 노동자들이 소외됐다는 박탈감으로 좌절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헤드셋 너머 공포의 목소리로 기억되는 수많은 악성민원에 시달리는 상담사가 통화를 마치고 업무에 다시 투입되기까지 잠시 쉬고 마음을 가다듬는, 그 짧은 여유조차 허락되지 않는 것이 바로 오늘날 감정노동의 실태”라고 덧붙였다.

아울러 이들은 이 같은 일선 현장의 목소리를 토대로 고용노동부에 감정노동자보호법이 왜 현장에서 제대로 적용되지 않는지 살피고 이에 대응할 수 있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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