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로 당시 일본은 식민지 조선 방방곡곡에 쇠말뚝을 막아놨었음
이것은 일본이 토지측량을 위해 쇠말뚝을 박아놓은것인데
이것이 당시 식민지인들에게 정기를 끊기위함이라고 와전된 것으로 보임
쇠말뚝은 삼각점의 오해다. 삼각 측량을 할 때 기준으로 정하는 세 점 말이다. 1895년 일본은 200여 명의 측량사를 보내 조선 땅을 측량한다. 이에 대한 반발로 많은 조선인이 희생된다. 망국의 슬픔이다. 1912년 조선총독부가 “삼각점 표석 밑에 마귀를 묻었기 때문에 재액이 닥칠 것이라는 유언비어에 속지 마라”고 시달할 정도였다. 일본이 조선을 강탈하였으나 풍수 침략은 하지 않았다.
이 토지조사사업이 일제가 조선에서 토지수탈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했던 것으로 보았을 때
당시 그러한 풍문이 나왔던 맥락을 알 수 있음
일제가 토지 측량을 위해 삼각점을 박는 걸 보면서 한국인들이 '민족정기를 말살하려고 쇠말뚝을 박고 있다'고 소문을 낸 이유를 우리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삶의 터전인 토지를 빼앗기는 상황에서 누구라도 '저놈들이 우리를 말살하려고 저런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토지조사사업은 한 사람의 인생 정도가 아니라 한 민족의 전체 삶이 걸린 중대 문제였다. 그로 인해 땅을 빼앗기고 삶의 터전을 잃게 된 한국 민중이 "토지를 측량하려고 일본인들이 쇠말뚝을 박고 있다"고 정확히 말하지 않고 "우리 혼을 말살하려고 저놈들이 쇠말뚝을 박고 있다"고 말했다고 비난하는 게 과연 타당한지 의문이다.
한민족의 땅을 빼앗기 위해 쇠말뚝을 박는 것(A)과 한민족의 정기를 말살하기 위해 쇠말뚝을 박는 것(B) 중에서 어느 쪽이 더 중하다고 말하기는 쉽지 않다. 한국 농민들은 A와 같이 객관적으로 말하지 않고, B와 같이 주관적으로 말했을 뿐이다. A 역시 중대 범죄이고 B 역시 중대 범죄다. 어느 쪽으로 말하든 간에 일본의 약탈성은 희석되지 않는다.
실제로 토지조사사업 이후로 조선인 간도 이주가
10만명에서 60만명으로 급증했고
평화적인 운동이었던 3.1운동이
농촌지역에서는 폭력저항운동으로 전환된 것이 이런 맥락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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